마무리하며
각 세대를 특정 지을 수 있는 대표 콘텐츠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처음 상영된 영화는 기차가 들어오는 장면을 찍은 짧은 필름이라고 합니다. 카페에서 그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놀라서 다들 자리를 피해 도망갔다고 하네요. 지금 들으면 우스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보다 윗세대 사람들은 처음 출시된 TV를 보고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하며 신기해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갓난아기 때부터 핸드폰 화면에 익숙하기 때문에 놀라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죠.
제 세대부터 시작된 콘텐츠는 전자오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전 세대 사람들은 이미 어른이 된 상태에서 접한 전자오락이 익숙지 않다 보니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관심이 크지 않고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 이후 세대는 새로운 플랫폼인 스마트폰을 어릴 적부터 접해온 세대죠.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스마트폰을 접했기 때문에 아직도 신기한 느낌이 남아있습니다. 스마트폰만 보게 바뀐 인류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주로 제 세대죠.
시대는 점차 급격하게 변하고 때문에 자신의 세대의 대표 콘텐츠에 대한 기억은 점점 잊힐 것입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토토즐이나 응답하라 시리즈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 못지않게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추억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라떼 콘텐츠를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영향받은 대표적인 콘텐츠들에서 많은 분들이 추억을 떠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라떼 콘텐츠의 마지막으로는 제가 말하고 싶은 콘텐츠를 써보려 합니다. 제 세대 대표 콘텐츠인 전자오락을 접한 것은 생각보다 저의 생각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슈퍼마리오를 하면서 게임 속에 캐릭터가 나인 것처럼 몰입하여 플레이했던 것 같습니다. 게임 속의 나는 계속 죽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점점 실력이 늘면서 더 많은 판을 소화해내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적어도 그 게임 속의 주인공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슬램덩크를 보면서 주인공 이외에도 많은 주변 캐릭터에도 관심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주인공만을 바라보았던 나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살아가며 많은 대단한 사람들과 콘텐츠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그다지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는 엄마는 나의 엄마일 뿐이고, 내 친구는 단지 내 친구일 뿐이었습니다. 엄마 NPC, 친구 NPC처럼 단지 내 주위에 그 임무를 맡은 주변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NPC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철학과 과학에 대해 읽고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렵고 복잡하게 서술된 내용은 매우 싫어하지만 철학의 영역을 많이 잡아먹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 과학에 대해 쉽게 설명한 콘텐츠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양자 역학을 알아보다 보면 우리가 사는 우주는 마치 게임 속 캐릭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컴퓨터 화면에는 픽셀이라는 최소 크기로 화면이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사는 우주 역시 플랑크 길이라는 최소 길이로 픽셀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컴퓨터 화면이 구성되는 원리와 비슷하게, 우리가 보는 것들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던 것들이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계산이 돼서 구현이 되었을 뿐이고, 상호작용이 없는 지역은 스타크래프트 미니맵의 검은 부분처럼 실제로 돌아가고는 있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2진법으로 돌아가는 컴퓨터와 비슷하게 4진법으로 구성된 DNA라는 정보 보관소에 코딩이 되고, 이를 구현한 생명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이나 현대 뇌과학을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나마도 조종에 의해 늘 바뀔 수 있는 마리오가 아닌,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을 반복하는 NPC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마 배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버섯 정도의 존재일 것 같네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으면 망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의 화면을 보시죠.
한쪽은 실사고 한쪽은 게임 속 화면입니다. 게임 속 그래픽은 점점 발전하여 실사와 구분을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존재가 매우 빠른 양자 컴퓨터를 통해 지금처럼 상당히 넓고 고화질의 세상을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개소리 같지만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명한 일론 머스크도 비슷한 말을 하죠.
https://www.youtube.com/watch?v=3Ge8dhkbOSA
우리를 만든 존재 역시 어쩌면 어떤 존재가 만든 가상현실 속의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세상은 가상현실 속 가상현실 속 가상현실일지도 모르죠. 어쩌면 우리가 그 가상현실을 만든 첫 번째 존재일 가능성도 있지만, 점점 생각하다 보면 확률이 높진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TV 속의 존재나, 스타 크래프트 속의 존재나, 소피의 세계의 주인공이나 우리는 별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과학과 철학이 발달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점점 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강해지게 됩니다. 특히 말도 안 되게 넓은 우주에서 말도 안 되게 많은 진화를 거쳐 복잡한 몸을 만들어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과학은 이 모든 것을 확률과 우연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자유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며, 아직도 인간은 서로 영향을 받으며 자유의지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되게 됩니다. 우리가 설사 가상현실 속의 NPC와 같이 정해진 공식에 따라 구현된 존재일지라도 서로 간의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누군가가 저의 글을 보고 영향을 받기를 기대하며 계속 글을 던져보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죠, 제 글을 읽고 영향받은 누군가가 저의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풀어주게 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