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은 축복인가
앞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이유가 죽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불사인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지만, 죽지 않는다 하여도 삶의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대의 과학과 의학 기술의 발전을 보면 불사도 꿈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어떤 연구실에서는 젊어지는 약을 개발하여 임상 실험 중이라는 소식도 들릴 뿐만 아니라, 인간의 Data를 모두 컴퓨터에 전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지금은 허황된 소리로 들리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일상적으로 쓰이는 핸드폰도 과거에는 허황되었을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미 개발 중인 기술에 대한 상용화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의 발전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이 발전은 기하급수적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는 특이점 이론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빠른 시점에 개발이 끝나 불사의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뇌에 모든 것을 컴퓨터에 담을 수 있다면 그 컴퓨터의 정보는 내가 맞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의식에 대한 어려운 주제이므로 쉽게 얘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여하튼 지금의 발전으로 볼 때 20~30년 내에 죽지 않는 사회가 올 수도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과연 일이 벌어질까요?
죽지 않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소설이나 신화에 그려져 있으니 크게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에서 불사는 생각보다 비참하거나 힘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고통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어찌 보면 그렇게 살아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인생이 짧기에 의미를 찾지 못하여도 열심히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의미 없는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죽음을 바라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의미 없는 삶이 반복되고 있고,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합니다. 하지만 또 이런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한 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짧게 살고 죽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도 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이 삶의 의미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우리는 죽기 때문에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무엇일까요? 유전자를 계속 남기는 한 우리의 존재는 죽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도 나의 세포는 계속 변하고 있다면, 1초 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나이고,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의식도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해 마치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 머리의 알고리즘을 컴퓨터에 심으면 그것이 나일까요? 그 존재는 컴퓨터가 고장 나지 않는 이상 죽지 않을까요? 삶의 의미만큼 이나 죽음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답 없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사실 과거의 철학자들도 이러한 질문을 많이 하고 나름의 답을 하고 반박하는 것을 반복한 듯합니다. “이거 흥미로운데?”는 정도의 답은 많았지만, “이게 정말 맞는 것 같다”는 정도의 답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앞에 어디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진리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면 삶의 의미를 가져다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가치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