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가 침몰하여 조난당한 사람이 작은 배에서 호랑이와 싸우면서 버텨가는 이야기...
이런 황당한 줄거리를 알았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설정도 어이없고, 게다가 주인공도 인도인이기에, 독특하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인도 영화처럼 갑자기 호랑이랑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올 것 같은 느낌에 걸렀을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TV에서 하는 이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영화가 끝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복잡하고 심오한 은유와 상징이 들어가 있지만, 놀라운 명작인 첫 번째 이유는 재미를 들 수 있습니다. 영화를 그다지 잘 모르는 저는 사실 심오하기만 한 예술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는 단지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작은 유머하나 없음에도 압도적인 화면과 연출로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신기한 영화입니다. 영상미보다 스토리를 더 중점적으로 보는 저로서도 그 아름다운 화면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고, 두세 번을 보아도 곱씹을 수 있는 최고의 스토리까지 있기에 빠져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는 해석의 방법이 너무 다양해서 보는 사람마다 각자의 해석이 있을 것 같습니다. 대사 한마디, 장면 하나도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 없고, 모두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충격적인 반전은 물론, 심지어 바나나를 타고 온 원숭이에서도 논쟁 거리가 있었지만, 제가 크게 영향을 받은 부분은 종교와 과학, 이성과 본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 파이는 힌두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는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사상이지만, 저와 같이 일하는 인도 친구에게 물어보니 생각보다 두세 가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비슈누님,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대사는 실제로 서양 신부들이 선교를 통해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말을 해서 당황했다고 합니다. 끝나지 않는 무리수 파이의 숫자를 모두 외울 정도로 명석한 주인공은, 끝나지 않는 무리수처럼 계속해서 종교에 심취해갑니다.
파이의 부모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도인 답지 않게 과학을 종교로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는 과학은 어떤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 종교보다 우월하며, 그 덕분에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배가 난파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과학의 혜택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파이의 신앙은 시험에 들게 됩니다. 파이는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만든 신에게 투정도 부리고, 원망도 하지만, 거의 죽어갈 때 신의 뜻을 따르려 하고, 신은 그에게 죽음의 섬을 보여줍니다. 죽음의 섬은 그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그 희망은 벗어나야 할 희망이었고, 결국 파이는 고통스러운 항해를 다시 시작하다가 간신히 구조가 됩니다.
내용을 쓰면서도 수많은 곁가지 생각이 들지만 이 스토리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과학과 종교에 대한 생각입니다. 지금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고 저 역시 과학을 좋아합니다. 과학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면 위대한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합리적인 대답을 해줍니다. 하지만 반드시 막히는 지점이 생기게 됩니다. 빅뱅이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는지 놀라운 방식으로 설명을 해주지만, 빅뱅이 왜 일어났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 삶의 의미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과학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철학적 질문을 현대 과학에서 많이 설명하는 것을 보면, 과학이 더 발전하면 더 많은 대답을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과학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종교를 믿는 것은, 궁극적인 대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이는 이성을 상징하고,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본능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실제로 질풍노도의 상황에서 파이는 신을 의심하지만, 결국 그 본능과 동화되어 신의 뜻을 따르게 되죠. 파이를 위협하는 리처드 파커가 없었다면 파이는 죽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그의 본능은 계속하여 삶을 살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지만 삶을 계속 이어가는 이유는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본능이 유전자의 명령이든, 신의 명령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끈질기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과학이 무너지고 삶의 의미가 없어진 상황에서 그는 그의 이성과 본능의 대립으로 삶을 이어갑니다. 이성이 본능에 잡아먹힐뻔한 순간도 있었고, 본능을 죽일 수 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공존하였고,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인간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그의 본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숨게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본능에 기대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만든 영화는 처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에반게리온 해석을 분석하는 것에 빠진 적이 있는데, 삶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해석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면 상업성과 예술성을 모두 완벽하게 갖춘 이 영화는 제 인생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시겠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대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