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를 넘어 변기처럼.
“책인사님. 이게 말이 됩니까?”
“책인사님, 이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회사에서 내가 많이 듣는 말이다.
나는 직원들의 고충을 접수하여,
이를 개선하는 역할도 한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회사이다 보니,
직원들의 연락은 야간, 주말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계속 회사 생각뿐이다.
수도꼭지에 관한 글을 읽는데,
회사에서 나의 역할이 마치 수도꼭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곳이 어디든 가서 군말 없이 치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만 정작 제가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수도꼭지를 닮았습니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저) -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수도꼭지는
정작 본인은 씻지 못한다.
나 또한 직원들의 어려움과 고충은 해결해 주지만,
나의 고충은 해결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수도꼭지 같은 나의 모습에,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는 또 다른 조언을 들려주었다.
지상의 그 어떤 더럽고 난처한 것도 군말 없이 받아주는 한량없이 너그러운 존재가 있다면 바로 변기일 것이다.
-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저) -
수도꼭지가 남들 좋은 일만 시켜준다고 투덜거릴 때,
수도꼭지 옆에는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주는 변기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화장실 변기에서 본인만의 온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회사에서 나의 역할은
수도꼭지를 넘어 변기가 되었으면 한다.
수도꼭지가 ‘치유’라면,
변기는 ‘포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