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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도 Oct 22. 2023

광인


장렬히 전사

  데뷔 한 해에 나는 열심히 음악작업을 했다. 인디 뮤지션으로써는 유일한 홍보의 통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커버곡들도 틈틈이 불러서 올렸다. 마침 유튜브 커버곡이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큰 채널의 아티스트들을 벤치마킹 해보니, 양질의 영상이 필요했다.


  나름 사진 찍어서 돈까지 벌었던 사람으로서 사진기술을 응용하니 영상촬영은 금세 익혔다. 캐논 5D와 24-70 렌즈, 튼튼한 맨프로토 삼각대, 세 개의 장비로 제법 퀄리티 있는 커버영상을 찍었다. 원본 소스가 그럴싸해 보이자 욕심이 났다. 내친김에 영상편집에도 손을 댔다. 하필 적성에 맞아서 또 영혼을 갈아 넣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영상편집 실력도 급상승했다. 그에 비례하게 몸은 축났지만.


  자연스럽게 세 번째 싱글의 뮤비에도 욕심을 냈다.

  짐벌과 카메라를 대여하고, 레이블 사장님부터 소속 아티스트 들까지 몽땅 동원하여 일을 크게 벌였다. 그리고 거북목으로 편집만 일주일을 했다. 발매시기가 입시철이라 입시레슨을 병행했다. 몇 번의 라이브까지 소화했다. 체력이 달리고 힘들었지만 간신히 버티며 발매와 입시를 마쳤다. 그리고 당연히 병이 났다.



  나는 매우 지쳐있었다. 내 정신과 육체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까지 나를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몸무게는 인생 최저점을 찍었고, 우울감은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레슨은 다시 시작됐고, ‘이번엔 진짜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 현실을 벗어나리라’며 쫓기고 있었다. 작업에 몰두하면 우울감은 마법처럼 사라졌지만 작업을 중단하면 금단현상처럼 차올랐다. 이상한 자세로 웅크린 채 작업을 하고, 타르 6.0mm의 독한 담배를 성실하게 피워댔다. 레슨 외의 시간을 잘 써.야.만. 한다는 생각에 잘 쉬지도 못했다. 너무 힘들면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다시 작업을 했다. 도저히 배가 고파서 안 되겠다 싶으면 매운 닭발 같은 걸 시켜서 빈속에 때려 넣었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었고 자극적인 게 아니면 안 들어갔다. 탄산음료와 매운 음식 마니아가 되어갔다. 그렇게 새벽에 잠이 들면 꿈에는 그날 작업한 멜로디가 무한루프로 자동재생 됐다. 내 머릿속의 생각공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갔다. 매우 예민하고 강박적인 상태였다. 목의 커브는 사라져 가고 디스크가 도졌다. 체지방도 근육량도 심지어 체내수분도 부족했다. 원 헌드레드 퍼센트 쉬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들뜬 경주마 같은 상태였다.



  해내야 한다.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빨리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



  몸과 마음이 모두 고장 나 있었지만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모른 척했다. 쉬는 게 두려웠다. 쉬면 그대로 영원히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순간이 마지막 기회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치 ‘이대로 더 하면 죽는다’는 경고처럼 통증이 찾아와 준 것이다.  

  전신마취로 해야 하는 수술을 했다.

  나의 초조함과는 상관없이 수술 후 주의사항은 대부분 그렇듯 ‘절대안정’이었다. A4에 출력된 빼곡한 주의사항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지침으로 끝이 났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방법 따위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스트레스받지 말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쉬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환장하게 했다. 복부수술이었던지라 한 달간은 노래를 할 수 없었다. 초조함에 미칠 것 같았다.


  점점 광인이 되어가는 나를

  나의 구원자가 다시 한번 구원했다.


  연애 7년 차,

  사진 찍는 남자와 음악 하는 여자는

  이제 한집에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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