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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좋아하십니까?

저는 여행가는 거 별로 안좋아합니다만.

by 분홍빛마음

처음 에세이를 시작할 때는 재미있고 가벼운 이야기들로 글들을 채워가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때론 진지해지고 저의 사적인 부분들이 드러나는 거 같습니다. 작정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는 걸 느끼는 중네요.

이번에는 여행 이야기에요. 여행 좋아하십니까? 다들 여행 참 좋아하는 거 같더라구요.

요즘, 아니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여행을 그렇게들 많이 다니더라고요. 다들 어딜 그렇게 가는건지.

저는 사실 여행.. 별로 안 좋아합니다. 굳이 새로운 낯선 환경에 처하고 싶지 않달까요. 저는 익숙하고 아는 것을 좋아하고 반복하는 사람이거든요.


자랑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제주도 수학여행 이후로 스스로 가까운 기차여행이나 부산도 한 번 못가본 듯. 떠나고 싶다던가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으나, 혼자 멀리 갈 자신(?)이 없었달까.

저는 참 겁이 많은 사람이라 남들 다하는 여행조차 그 젊은 날 동안 시도조차 안 해봤답니다. 이렇게 답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세상은 다들 하루라도 젊을 때 떠나보라고 경험하라고 하는데 저는 그냥 집에서 혼자 엄마랑 있었어요.

낯선 곳에서 들이닥칠 상황들을 상상만으로 지레 겁을 먹고 그저 익숙하고 안전하다 느끼는 곳에서만 머물렀어요. 제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렇게까지 다들 여행에 진심인 이유가 뭘까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지금 여기 머물고 있는 이곳이 그리도 떠나고픈 곳인건지 아니면 그렇게도 새로운 퐁경과 세상을 갈망하는 건지.

저는 해외여행을 생각하면 일단 제가 외국어가 꽝이기 때문에 소통도 안 될뿐더러 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국제 미아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겁 많고 소심한 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새로운 퐁경을 보고 싶은 마음보다 크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나라들이나 지역들의 영상을 내가 굳이 직접 가지 않아도 편히 방구석에서 세상의 이곳저곳을 구경할 수 있죠. 물론 그것은 직접 체험하고 바라본 풍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서 여행은 힐링에 가깝다기 보다는 도전과 모험에 더 가까운 일이기에 영상을 통해 간접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더라고요.

그리고 애초에 여행에 관심에 없어서 그런가 여행하는 영상 자체도 잘 안봅니다.


저는 긴 시간 혼자 머물러 있었고 그저 이동 범위라고는 동네 그 언저리에서 맴돌고 마을버스타고 가면 금방 갈 수 있는 곳도 가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쓰러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사로잡혀서 나가지 못하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다가 마흔이 다되가서야 동생이 저를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로 불러내 주어 저는 오로지 동생을 보러 가다는 목표 하나로 그렇게 조금씩 홀로 슬슬 서울로 외출을 시작하였습니다. 종로도 가고 시청역도 가고 경복궁, 안국, 서촌의 까페, 광화문 까페도 한 주에 한 번꼴로 다니기 시작 했달까요. 동생이 아니었으면 혼자서는 그렇게 외출하지 못했을거에요. 동생을 만나러가는 즐겁고 고마운 약속이어서 그렇게 저는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또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볼 수 있고 이동 범위도 넓어지더라고요. 이래서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떠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좀 더 익숙해지고 훈련(?)이 되면 저도 언젠가는 다른 지역도 가고 제주도에 혼자 여행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저는 다른 곳보다 제주도에 혼자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혼자가 아니라 동생과 가도 상관은 없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을 날이 오기 바랍니다.

제주도에는 아빠의 납골당이 있습니다. 스무살. 아버지를 고향인 제주도로 보내드리고 너무나도 나약하고 가난한 큰 딸은 그렇게 20년 가까이 제주도 한번을 못 내려가 보았습니다. 무심한 딸이라 생각하겠지만 제 마음 상태는 남들보다 건강하지 못하여 제주도를 한 번도 못가봤어요. 저도 제가 참 답답하지만 그게 저였어요. 그 작은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 뿐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제가 썩 재미없는 사람인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 나약한 정신상태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있네요.

여행이 언제쯤 저에게도 하나의 이벤트가 될 수 있을까요. 저에게도 몇 가지 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긴 합니다. 하나는 말했듯이 제주도에 가보는 것, 그리고 캐릭터와 문구가 아주 발달한 일본에 가보는 것, 디즈니 랜드에 가보는 것. 그 정도가 있겠네요.


제가 의외로 유럽이나 스위스, 아름다운 풍경, 휴양지의 투명한 바다, 황홀한 석양 같은 모습들은 로망이 없습니다. 아마 제가 그 아름다움을 다 느끼지 못할 것 같거든요. 직접 안 봐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라고 하신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근데 제가 언제인가부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흥이 잘 오지 않더라구요. 구름이 두둥실 흘러가는 푸른 하늘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음이 꽉 차서 충만하던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그냥 그런가보다 그 정도의 느낌밖에 느끼지 못하는 썩 감흥 없는 제가 있습니다.


다들 계획하고 계신 여행이 있으신가요? 휴가를 벌써 계획 중이신가요.

다들 용감한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시길.

저도 언젠가는 여러분들처럼 자유로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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