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계속 시도해 보자.
사는 게 그게 그거 같고 그리던 그림도 재미없고 하기 싫고 글쓰기도 의무로 하는 시간이 계속 되다보니까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너의 로망 중의 하나. 기타치며 노래 부르기를 실현해 보고자 기타를 배울 수 있는 음악학원을 알아보기로 했다. 사실 예전에, 그니까 한 20년 전쯤에 기타가 쳐보고 싶어서 기타를 사다가 조금 혼자 쳐봤는데 조금 튕기다가 금방 실증이 나서 기타가 있어도 나중에는 안치게 되버렸다.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이제야 다시 또 통기타가 스멀스멀 다시 치고 싶어지는 거다. 그리고 요즘 밴드 데이식스에 빠져있어서 더 악기연주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다가 어떤 유튜버가 데이식스의 love me or leave me를 후렴부분만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 너무 멋있다고 느껴져서 반해버렸다. 그래서 나도 한번 그렇게 해서 영상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근데 이미 겪어 봤듯이 기타를 또 사면 잠깐 치다가 실증이 날 것이 뻔했으므로 학원에가서 기타를 빌려서 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는 기타를 구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모든 것들을 혼자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번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혼자하지 않고 전문가에게 배워보고 싶고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업료를 들여서라도 학원에 등록하기로 했다. 그리고 집이 아닌 새로운 장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달까.
그래서 학원을 알아보고 마음이 간 학원에 등록을 했는데 나는 내가 어렸을 때 거의 25년 전이긴 하지만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고 기타도 혼자 책보고 뚱뚱거린 적이 있어서 처음 수업부터 바로 노래 연주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근데 웬걸, 아주 기초. 기타의 용어에서부터 기본 코드 중 잡기 쉬운 코드 단 2개. 그거 배우는데 1시간 걸림. 수업을 한 번 하자마자 로망이었던 곡을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기에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리고 기타연주는 쇠줄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거라 조금 연주하다 보면 손가락이 무척 아프고 코드를 손가락으로 짚는 게 머리로는 되는데 손이 익지를 않아서 제대로 소리가 나지도 않았다. 이 부분은 당장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 손이 새로운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손에 익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첫 수업을 받고 그 기본 코드 2개를 혼자 1시간 동안 연습하는데 로망은 물건너 갔고 하나도 재미없고 손가락만 무척 아프고 재미와 로망을 누리기엔 나의 현실로부터 너무 먼 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나고 두 번째 수업은 리듬이라는 것을 배웠는데, 리듬이오? 그게 뭔데요. 진짜 난생처음 들어본 수업이었다. 낯선 손가락의 움직임과 박자를 알아가는 수업은 단숨에 나를 겸허하고 겸손하게 만들었다. 음악도 뭔가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면 마치 수학처럼 어려울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로망 찾아왔다가 수업 2회만에 숙연해짐...
혼자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시간에 선생님 몰래 쳐보고 싶었던 노래 코드를 몇 개 찾아서 대충 내 맘대로 손가락 짚어가면서 흥얼거려봤는데 제대로 치지도 않고 진짜 대충 쳤는데도 하 30분 치다 보니까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싶다는 로망은 충분히 충족되었고 로망에 대한 열정은 아주 차갑게 식어버렸다.
느낀 건 머릿 속 로망과 그것을 현실로 실행에 옮기다 보면 그 거리가 너무 크고 현실은 냉정 하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그럴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과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역시 쉽게 즐거워지는 건 없는 건가보다.
한 번에 쉽게 되는 건 없는 건가봐.
기타 수업 2회 만에 기타에 대한 로망은 모두 사라짐과 동시에 눈앞에 피아노가 있으니까 괜시리 스멀스멀 피아노가 또 치고 싶어지는 거다. 기타는 칠 때 손가락이 아프지만 피아노는 손가락이 아프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눈앞에 피아노를 자꾸 보니까 참 사람이 보는 게 무섭다고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사람은 좋은 거 보고 나쁜 건 가려보고 그래야 하나보다.
근데 피아노도 막상 배우면 기타랑 똑같겠지. 이것도 자기 혼자 계속 손으로 악기를 연주해가며 어느 정도의 익숙해지는 시간을 들여야 그 안에서 자유로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 무언가 재미있고 즐겁기까지의 지점은 왜 도달하기가 어려운가. 안 그래도 힘든 인생. 재미는 왜 쉽게 얻어지지 않는 걸까.
기타 수업 2회 만에 내 로망은 산산조각이 나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일을 현실로 가지고 왔을 때 느끼고 배우는 것들도 또 있다. 오랜만에 학원이라는 곳에서 공부한 선생님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 자체가 되게 좋은 경험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혼자 하는 것과는 또 다르고 내가 미처 몰랐던 세계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돈을 내고 학원을 가보길 잘했다 싶다.
앞으로도 또 관심 가는 분야가 생기면 또 배워보는 것도 그 자체로 되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건강하고 건전하고 시야도 넓어지는 느낌.
기타가 시작이었지만 드럼도 배워보고 싶고 노래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내 일상이 조금은 새로워 졌달까. 새로운 욕구들이 생겨난 거다. 단순히 배워서 무언가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경험해 보고 시도해보는 것 자체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몰랐던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새롭고 즐거운 일인 것 같다.
어렵고 힘들고 로망은 깨졌지만 일단 당분간은 내 기타 수업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