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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Jun 23.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04화)


세이렌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2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는 집에 새 여자를 들였다. 아버지는 항상 새것을 좋아했다. 물건도 그렇고, 도 그랬다. 아버지에게 오래된 건 돈과 나뿐이었다. 흔히들 여기서 그 여자가 나를 구박하거나 미워할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여자는 너무 착했다. 어려 보였고 엄마와는 다른 의미로 예뻤다. 엄마라기보다는 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아버지가 없을 때에도 항상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그런 게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저 여자가 나를 미워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왔다. 내 생일 얼마 안 남은 어느 날, 그 여자는 나에게 말했다. “소희는 이번 생일에 뭐가 가지고 싶어? 뭐든 원하는 걸 줄게.” 원하는 거? 나는 언제든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 다만 내가 원하지 않을 뿐이다. 거짓말이다. 내가 원하는 건 엄마였으니까.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말해주었다. “살아있는 거. 살아있는 게 가지고 싶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살아있는 거.”


그 여자는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걸 알겠다는 건가? 죽은 엄마를 무슨 수로 나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생일에 그 의문이 풀렸다. 제법 덩치가 큰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 여자는 나에게 진진한 표정에 소중한듯한 눈을 하고 말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키우던 개가 처음으로 새끼를 낳다가 죽었어. 다른 새끼들은 태어나지 못하고 죽고 이 아이 혼자 살아남았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강아지일 거야. 그 모든 죽음사이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 그만큼 나에게 소중한 아이니까 너에게 선물줄게.” 그 여자는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작은 캐리어 하나와 강아지 한 마리데리고 들어왔었다. 어차피 나에게 주지 않아도 이 집에서 키우는 건데 이게 선물이 될 수 있나? 하지만 난 그 차이를 알아냈다. 내 거라면 버리는 것도 내 마음아냐? 엄마도 항상 가 가진 건 전부 자기 것이라 했었다.  엄마로부터 나왔으니까.


처음 그 강아지를 봤을 때 그 까맣고 커다란 코밖에 보이지 않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집안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다가오지 말라고 말해도 녀석은 알아듣지 못하고 나를 귀찮게 했다. 이 집에 온 첫날부터 그 큰 눈으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마치 그 여자와 한패를 먹고 이 집을 접수하러 들이닥친 정복자들 같았다. 그 여자는 자기 마음대로 내 동생이라며 이름도 ‘다애’라고 말해주었다. 다만 나는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난 동생이 없었으니까. 내 가족이 아니니까.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여자가 웃는 게 싫었다. 나를 보며 따뜻하게 웃는 걸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사랑받는 것처럼 느끼게 했으니까. 그래서 그 여자가 나를 미워하길 바랐다. 결국 모든 건 내 계획대로 되었다. 아직 학교에 등교하기 전인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여자가 한눈판 사이에 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녀석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나이다. 나도 그랬고 녀석도 그랬다. 나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도착하기 전에 녀석이 갑갑해하는 거 같아 잠시 목줄을 풀어준 것뿐이다. 목줄이 풀린 녀석은 신이 난 듯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잽싸게 전봇대 뒤에 숨어 녀석을 지켜봤다. 문제는 녀석이 너무 빠르다는 걸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녀석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겁이 났다. 내가 저 녀석을 버린 걸까? 어린 녀석은 나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나는 순간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녀석을 찾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름을 불러줄걸. 찾고 싶어도 녀석이 자기 이름을 기억할까? 그래도 나는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에 나는 다애를 찾았다. 내가 하루종일 학교도 못 가고 찾아다니느라 고생하고 있었지만, 다애는 어떤 남자아이에게 간식을 받아먹으며 세차게 꼬리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나는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 질투였다. 나는 다가가 그 남자아이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내 거야. 네가 뭔데 먹을 걸 주는 거야? 너 우리 교 다니는 애 맞지? 빨리 나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해! 그 남자아이는 감정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니 엄마가 죽기 전에 보여주던 그 영혼 없는, 죽음마저 삼킬듯한 공허한 눈을 하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당황해서 말했다. “너.. 너 왜 아무 말도 없어? 넌 내 말을 거부할 수 없어. 내 말은 너보다 강해. 그러니까 넌 나를 해칠 수 없어. 맞아. 넌 내 말을 들어야 해. 러니까 너... 그 사과하라고!” 그 남자아이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슬로 모션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일어나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애도 그 남자아이를 쫓아가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원할수 없었다. ‘나는 너를 버렸으니 너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둘은 천천히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갔고, 나는 주변이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다. 어차피 우리 학교 아이였으니까. 내일 만나 돌려달라고 말하면 되었으니까. 왜 처음에 내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마 두 번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다 다애는 나보다 그 아이를 좋아하는 거 같았. 나보다도 그 아이를 선택했으니까. '내가 돌려달라고 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이런 고민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내가 없어진걸 안 어른들로 인해서 잠시 소동이 있었던 듯하다. 나는 필요 없어진 개를 버리러 나갔다 왔다고 말했고, 그 여자는 성큼성큼 다가와 에게 따귀를 날리고는 이내 눈물을 흘렸다. 역시 내 예상대로 그 여자는 그날 이후로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모든 건 나의 계획대로 되었다. 딱 두 가지만 빼고 말이다. 날 이후로 다시는 학교에서 공터 어디에서도 그 남자아이를 볼 수 없었다는 사실, 그날 사라져 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후로 금까지 다애를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빼고 전부 계획대로였다. 이 일로 인해 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버려질 수는 있어도 버릴 수는 없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기로 다짐다. 한번 가지면 버릴 수 없으니 가지면 안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수의대에 진학다. 아버지는 의대를 가라고 했고, 난 처음으로 아버지 말을 거역했다. 아버지 말을 거부한 대가로 나 운명처럼 새벽의 공원을 거닐다 다애를 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애를 알아본건 아니다. 저 영혼 없는 눈을 가진 그때 그 남자아이를 알아본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어떻게 저 눈을 잊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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