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2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는 집에 새 여자를 들였다. 아버지는 항상 새것을 좋아했다. 물건도 그렇고, 사람도 그랬다. 아버지에게 오래된 건 돈과 나뿐이었다. 흔히들 여기서 그 여자가 나를 구박하거나 미워할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여자는 너무 착했다. 어려 보였고 엄마와는 다른 의미로 예뻤다. 엄마라기보다는 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아버지가 없을 때에도 항상 나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나는 그런 게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미워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든 저 여자가 나를 미워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왔다. 내 생일이 얼마 안 남은 어느 날, 그 여자는 나에게 말했다. “소희는 이번 생일에 뭐가 가지고 싶어? 뭐든 원하는 걸 줄게.” 원하는 거? 나는 언제든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 다만 내가 원하지 않을 뿐이다. 거짓말이다. 내가 원하는 건 엄마였으니까.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말해주었다. “살아있는 거. 살아있는 게 가지고 싶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살아있는 거.”
그 여자는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걸 알겠다는 건가? 죽은 엄마를 무슨 수로 나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내 생일에 그 의문이 풀렸다. 제법 덩치가 큰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 여자는 나에게 진진한 표정에 소중한듯한 눈을 하고 말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키우던 개가 처음으로 새끼를 낳다가 죽었어. 다른 새끼들은 태어나지 못하고 죽고 이 아이 혼자 살아남았어. 아마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강아지일 거야. 그 모든 죽음사이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 그만큼 나에게는 소중한 아이니까 너에게 선물로 줄게.” 그 여자는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작은 캐리어 하나와 강아지 한 마리만 데리고 들어왔었다. 어차피 나에게 주지 않아도 이 집에서 키우는 건데 이게 선물이 될 수 있나? 하지만 난 결국 그 차이를 알아냈다. 내 거라면 버리는 것도 내 마음아냐? 엄마도 항상 내가 가진 건 전부 자기 것이라 했었다. 난 엄마로부터 나왔으니까.
처음 그 강아지를 봤을 때는 그 까맣고 커다란 코밖에 보이지 않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집안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다가오지 말라고 말해도 녀석은 알아듣지 못하고 나를 귀찮게 했다. 이 집에 온 첫날부터 그 큰 눈으로 나에게 다가왔었다. 마치 그 여자와 한패를 먹고 이 집을 접수하러 들이닥친 정복자들 같았다. 그 여자는 자기 마음대로 내 동생이라며 이름도 ‘다애’라고 말해주었다. 다만 나는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난 동생이 없었으니까. 내 가족이 아니니까.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 여자가 웃는 게 싫었다. 나를 보며 따뜻하게 웃는 걸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사랑받는 것처럼 느끼게 했으니까. 그래서 그 여자가 나를 미워하길 바랐다. 결국 모든 건 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아직 학교에 등교하기 전인 이른 아침에 일어나 그 여자가 한눈판 사이에 그 강아지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녀석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나이다. 나도 그랬고 녀석도 그랬다. 나는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도착하기 전에 녀석이 갑갑해하는 거 같아 잠시 목줄을 풀어준 것뿐이다. 목줄이 풀린 녀석은 신이 난 듯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나는 잽싸게 전봇대 뒤에 숨어 녀석을 지켜봤다. 문제는 녀석이 너무 빠르다는 걸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녀석은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겁이 났다. 내가 저 녀석을 버린 걸까? 어린 녀석은 나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나는 순간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미친 듯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녀석을 찾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름을 불러줄걸. 찾고 싶어도 녀석이 자기 이름을 기억할까? 그래도 나는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에 나는 다애를 찾았다. 내가 하루종일 학교도 못 가고 찾아다니느라 고생하고 있었지만, 다애는 어떤 남자아이에게 간식을 받아먹으며 세차게 꼬리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나는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 질투였다. 나는 다가가 그 남자아이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다애는 내 거야. 네가 뭔데 먹을 걸 주는 거야? 너 우리 학교 다니는 애 맞지? 빨리 나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해!” 그 남자아이는 감정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니 엄마가 죽기 전에 보여주었던 그 영혼 없는, 죽음마저 삼킬듯한 공허한 눈을 하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당황해서 말했다. “너.. 너 왜 아무 말도 없어? 넌 내 말을 거부할 수 없어. 내 말은 너보다 강해. 그러니까 넌 나를 해칠 수 없어. 맞아. 넌 내 말을 들어야 해. 그러니까 너... 그 사과하라고!” 그 남자아이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슬로 모션의 한 장면처럼 천천히 일어나서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애도 그 남자아이를 쫓아가고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원할수 없었다. ‘나는 너를 버렸으니 너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둘은 천천히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갔고, 나는 주변이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우리 학교 아이였으니까. 내일 만나서 돌려달라고 말하면 되었으니까. 왜 처음에 내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마 두 번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다애는 나보다 그 아이를 좋아하는 거 같았다. 나보다도 그 아이를 선택했으니까. '내가 돌려달라고 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이런 고민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내가 없어진걸 안 어른들로 인해서 잠시 소동이 있었던 듯하다. 나는 필요 없어진 개를 버리러 나갔다 왔다고 말했고, 그 여자는 성큼성큼 다가와 나에게 따귀를 날리고는 이내 눈물을 흘렸다. 역시 내 예상대로 그 여자는 그날 이후로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모든 건 나의 계획대로 되었다. 딱 두 가지만 빼고는 말이다. 그날 이후로 다시는 학교에서도 공터 어디에서도 그 남자아이를 볼 수 없었다는 사실과, 그날 사라져 가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후로 지금까지 다애를 그리워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빼고는 전부 계획대로였다. 이 일로 인해 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버려질 수는 있어도 버릴 수는 없는 그런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번 가지면 버릴 수 없으니 가지면 안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수의대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의대를 가라고 했고, 난 처음으로 아버지 말을 거역했다. 아버지 말을 거부한 대가로 나는 운명처럼 새벽의 공원을 거닐다 다애를 보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애를 알아본건 아니다. 저 영혼 없는 눈을 가진 그때 그 남자아이를 알아본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내가 어떻게 저 눈을 잊을 수 있겠나...
[ 05화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