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이 기억하는 두 번째 만남-1
대학에 들어갔다. 입학하자마자 남자선배들로부터 고백을 받았다. 당연히 거절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의 어떤 면을 보고 고백하는 것일까? 어느 순간 거절하는 것도 귀찮아져서 난 여자가 좋다고 말했다. 이 일은 학교에 큰 소문이 되어 떠돌았고, 그 이후로 난 더 이상 귀찮은 일에서 벗어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자선배나 여자동기들로부터 고백을 받았다. 결국 또다시 거절해야 했다. 그래도 고백받는 횟수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날 대하는 차가운 시선은 나의 의도였으므로 괜찮았다. 다만 예쁘니까 용서된다는 등의 이야기는 나라도 참기 힘든 말이었다. 예쁘니까 용서된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긴 내가 달리기를 잘하면 ‘달리기도 잘하는 예쁜 애’가 되었고, 차갑게 거절하면 ‘예쁜 애들은 성격이 나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죽어도 그저 누군가에게는 "그 있잖아. 내가 예전에 말했던 그 예쁜 애. 그 애가 죽었대."라는 소릴 들을까? 난 죽어서도 이 예쁘다는 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가 엄마와 관련이 있는 거 같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나에게서 엄마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였으니까. 난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를 닮아간다. 마치 내 영혼의 빈자리는 떠나버린 엄마의 흔적인 거 같았다. 엄마는 아름다움과 젊음이 본인의 존재의 이유이자 가치였고, 그것은 영원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것을 지키려고 나를 버렸으니까.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축복이 나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마음의 감옥이 된 걸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나의 고집 때문일지도 모른다. 굳이 외모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웬만한 건 다 내 맘대로 되었지만 이건 도저히 안되었다. 무슨 짓을 해도 결국 난 외모의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나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현실을 알게 되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런 일상을 살던 나에게 큰 변화가 찾아왔다. 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우연히 걸었던 새벽시간의 공원에서 오래전에 내가 잃어버린 다애를 본 것이다. 다애는 제법 덩치가 큰 개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다애와 함께 걷고 있는 그 남자애를 말이다. 영혼 없는 눈을 하고 나에게 등을 보인 그 녀석을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그렇게 찾아다녔지만 정작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아마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새벽 별 같은 존재인가. 난 그날 이후로 공원이 잘 보이는 집을 구해서 독립했고, 아버지에게서 독립하고 나서야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독립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는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그래서 처음 아르바이트라는 것도 시작했다. 난 생각보다 일을 잘했다. 스스로 번돈으로 살아가는 삶에 만족하게 될 줄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오히려 더 많이 웃게 되었고, 잠깐 시간을 내어 마시는 차의 향을 즐기며 실없이 웃는 일도 생겼다. 작지만 취미도 갖게 되었다. 나의 취미는 건전했다. 새벽에 일어나 다애가 산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이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난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야 하루종일 남몰래 웃을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저기 저 건방진 녀석의 공허한 눈에서 엄마의 마지막 눈빛을 봤듯, 버려진 다애를 통해서 나 자신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다정히 걷는 모습을 보면 내가 엄마와 함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 녀석이 다애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쓰다듬는 모습을 본 날에는 하루종일 눈물이 났다.
난 대학을 졸업하는 그날까지 매일 새벽의 창가에 앉아 공원을 산책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첫 만남을 상상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까? 다애는 나를 기억할까? 내가 버린 다애를 다시 찾는 게 맞을까? 아니다. 난 다애를 버린 게 아니다. 난 어렸을 뿐이다. 저 녀석이 학교를 자퇴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 생각이 들 때면 난 마음에서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느꼈고,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난 적당히 웃고, 적당히 거절하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필요하면 내가 가진 조건들도 활용했다. 누구도 나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난 그렇게 태어났으니까. 그래 유일하게 거절한 인간은 저 녀석뿐이다. 내 말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돌아서던 어린 시절 그때 그 뒷모습을 가끔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한번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고, 온몸이 뜨거워졌다. 난 차가울 때 예뻤고, 뜨거울 때 추했다. 그래서 나의 이 추함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저 녀석이 조금 그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 07화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