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이 말하는 두 번째 만남
어떤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순간 일어난다. 같은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일어나 알람을 껐고, 리브와 같이 새벽산책을 나갔고, 운명처럼 잠시 리드줄을 놓친 것뿐이었다. 집에서야 늘 리브와 이야기했으므로 그 순간 잠시 이성을 잃고 리브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 것뿐이었다. 난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마치 홧김에 내지른 주먹에 누군가 맞아서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본 그런 사람의 얼굴을 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누군가 내가 리브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으면 어떻게 하지?'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브가 달려간 쪽에서 어떤 여자가 리브를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었다. 난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저 여자가 내 목소리를 들었을까? 거리가 먼데 못 듣지 않았을까? 만약 저 여자가 내 목소리를 듣고도 산다면 저 여자는 특별한 사람 이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더 이상 죽음을 흩뿌리는 저주에서 벗어난 것일까?’ 난 알아야 했다. 저 여자가 죽을지 아닐지 난 반드시 알아야 했다.
나는 그 순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내밀고 있었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설 용기도 없었다. 내 머릿속은 한 가지만 말하고 있었다. 난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리브를 여기저기 만져가며 이야기했다. “노견이어서 잘 관리를 해야 하는데 주기적으로 검사는 받으시나요?” 그녀는 내밀고 있는 나의 손이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에 한참을 방치되어 있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리브의 머리를 쓰다듬고 인사를 하더니 나에게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을 통해서 그녀가 수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 한번 저희 병원에 들러서 검사진행하시죠.” 그녀는 짧게 말했고, 난 말없이 명함을 받아 들었다. 어차피 난 그녀의 연락처만 알면 되었다. 그녀가 앞으로 죽을지 안 죽을지 난 알아야 했을 뿐이다. 왜 이렇게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건지 모르겠지만, 미쳐버린 심장박동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죄책감인가? 모르는 사람이 나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난 책임지고 저 여자가 죽을지 지켜봐야 했다. 나는 죄책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난 그녀 생각뿐이었다. 명함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진소희라.” 난 하루종일 명함을 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온통 그녀 생각뿐이었다. '지금쯤 죽었을까? 내 목소리를 들었던 걸까? 만약 내 목소리를 듣고도 살았을까? 만약 그렇다면 난 더 이상 이 지긋지긋한 죽음의 저주에서 벗아난 것일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난 점점 더 초조해졌고, 결국 참지 못하고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만났던 류지훈이라고 합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나요? 어딘가 익숙해서요. ㅎㅎ]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가고 있었다. 난 어질어질 식은땀이 났다. '혹시 죽은 건가? 난 누군가를 죽인 건가?' 갑자기 찾아온 불안과 공포에 점점 잠식되어가고 있을 때쯤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다.
[혹시 오해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전 수의사로서 개가 걱정돼서 명함을 드린 것뿐이여서요.]
난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안도가 되어 눈물이 났다. 정말 너무 걱정했으니까.
[아 그럼 제가 착각했나 봅니다. 예전에 잠시 봤었던 아이와 많이 닮으셔서요. ㅎㅎ 조언해 주신 대로 조만간 리브 데리고 병원에서 종합적으로 검진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을 할 수가 없어서요. 괜찮으시면 앞으로 문자로 궁금한 점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ㅎㅎ]
[네 잠시 살펴본 것뿐이지만 일단 귀 쪽에 조금 문제가 있는 거 같아서요. 병원 들러주시면 제대로 검사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짧은 문자 후에 나는 주먹을 있는 힘껏 내지르며 그 순간을 만끽했다. '아직 죽지 않았어.' 난 너무 기뻤다. 살면서 이렇게 흥분해 본 적이 또 있었나? 그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은 마치 내가 살아온 인생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길게 느껴졌으니까. 일단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건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 가능성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가능성은 내 목소리는 들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두 번째라면 나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저주에서 벗어날 기회일지도 모른다. 맞다. 소희 씨는 나를 구원해 줄 천사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가 천사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는 했다. 어쨌든 며칠 후에 리브를 데리고 병원에 방문해 볼 생각이다.
[ 06화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