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1
난 태어날 때부터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그래서 어릴 때는 이쁘다는 게 그냥 누구에게나 하는 인사 같은 거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누구나 날 보면 예쁘다고 했고, 인형 같다고 했다. 처음 본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같았다. 모두 다 동공이 확장된 눈으로 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이 말을 내뱉었다. “예쁘네.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가 있지.” 난 언제나 말을 듣는 입장이었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점점 말수가 줄어들게 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항상 자신의 성공의 이유는 엄청난 노력과 열정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한강이 보이는 큰집, 값비싼 차들과 함께, 엄마를 자신의 성공의 대가처럼 이야기했다. 엄마가 가진 건 예쁜 외모 말고는 없다고 했다. 내가 아빠의 명석한 두뇌와 엄마의 아름다운 외모를 물려받은 건 축복이라고 나를 세뇌해 갔다. 언제나 그 가는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가며 평가했다.
난 언제나 조용한 아이였지만 그래도 친구들과 있을 때는 수다쟁이가 되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었다. 난 친구들과 있으면 언제나 쉬지 않고 말을 했다. 그게 이유였을까? 12살이 될 무렵에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서 진실을 듣게 되었다. 친구는 뾰로통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원한다고 다 가질 수는 없어. 그게 정상이야.” 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난 원하면 다 가질 수 있었다. 갖고 싶은 물건은 그저 주변에 말하면 되었다. 그러면 언제나 내 것이 되었다. 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그냥 내 친구가 되라고 하면 되었다. 누구도 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싫으면 그 친구에게 싫다고 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내 주변에서 없는 사람인 듯 사라지게 되었다. 난 그래서 항상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말하면 된다고 믿고 있었다.
난 그날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진짜 원하면 다 가질 수 없는 거야? 갖고 싶으면 그냥 가지면 되는 거 아냐?” 엄마는 다정한 얼굴로 말했다. 원래는 엄마도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내가 엄마의 젊음을 빼앗아 예뻐진다고 했다. 본인이 나이 들고 볼품없어지는 게 전부 내 탓이라고 했다. 아빠가 엄마를 두고 두 집 살림을 차린 건 순전히 내가 엄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훔쳐가서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커다란 거울 앞에 앉아 내 머리를 빗겨주며 늘 말했다. 엄마도 나만큼 예뻤었다고. 그래서 아빠도 엄마를 사랑했다고. 내가 태어나서 엄마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훔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엄마는 내가 보는 앞에서 자살을 했다. 더 이상 내가 훔칠 수 없게 모두 가지고 떠나겠다는 말과 함께 나를 떠났다. 그 뒤로 나는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뺏는 게 싫어졌다. 하지만 내가 말하면 누구든 나에게 가진 것을 내어주었으므로 난 더 이상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친구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말도록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나랑 함께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 이상 친구들은 나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굣길에도 더 이상 발을 맞춰 걷지 말라고 말했다. 이제 누구도 나와 함께 걸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난 말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유혹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였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친구를 사귀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 같았으니까. 그럴 바에는 집에 있는 인형이랑 노는 게 훨씬 좋았으니까. 나는 더 이상 친구를 만들지 않았다. 난 뭐든지 내 말대로 되는 세상에 싫증이 났다. 그저 말 한마디로 가질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 04화로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