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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달 Jun 02. 2024

사신과 세이렌의 이야기 (01화)


신(지훈) 시점에서연-1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서로 대화하고 교감하는 감정은? 이런 변변찮은 질문이나 던지고 있는 이유는 내가 한없이 한가하고 삶이 여유로워서 일수도 있다. 난 할머니가 물려주신 집에서 상속받은 유산으로 부족함 없이 생활하고 있다. 내 하루 일과를 설명하면 너무 단순해서 말하기조차 무안해진다. 하는 일이 없다고는 해도 사실 일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중에 하나로 나는 일어나면 가장 먼저 반려견 새벽산책을 한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야 밖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서 바뀌는 일출시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오늘 아침도 그렇게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에 일어나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알람을 끈다. 사람의 몸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신비로운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항상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내 머릿속에 타이머라도 달려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서 관심 가질 수 있는 대상이 나밖에 안 남아서 이렇게도 나 자신을 구속하는 것일까?


모르는 사람은 나를 외로운 사회부적응자 정도로 치부하겠지만, 사실 나에게도 나름에 사연이 있다. 이 말을 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므로 말할 수밖에 없다. 진실언제나 그 자체로 존재하는 법이니까.


"나는 말을 하면 안 된다. 누구든 내 목소리를 들으면 죽는다. 정확히 말하면 내 목소리를 들은 인간은 모두 다. 동물은 예외인듯하다."


말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말할 수 있어서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어서 진실이 된다는 것이.


그렇다면 누구든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증거를 내어봐.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지?”


증거야 차고 넘치지만 처음 이런 비밀스러운 능력을 알게 된 건 5살 때였다. 나는 조용한 아이였고,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서 안 가본 병원이 없다고 했다. 모든 신체기능은 정상이라고 했다. 원인은 심리적인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무서운 병원에 가면 갈수록 더 주눅이 들었다. 말을 해달라고 사정하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무렵 3살이 된 여동생은 나 대신 조잘조잘 잘도 떠들고, 나는 그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부모님이 모처럼 나와 동생을 태우고 함께 동물원에 가던 날이었다. 동생은 나보다 어렸지만 못난 오빠에게 모든 관심을 빼앗겼어도 항상 부모님을 웃게 만드는 아이였다. 여느 때처럼 동생은 신이 난 듯 노래를 불러댔고, 그런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난다.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던 아버지의 옆모습도 기억난다. 그 당시에 꽤 좋은 차를 탔으니 우리 집도 부족한 것이 없던 시이었다. 아버지는 서울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교수님이셨다. TV에도 몇 번 출연하셔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붙잡혀 인사하시곤 하셨다.


나의 능력이 처음 각성되었던 그날의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살가워서였을까? 나는 문득 말을 하고 싶어 졌다. “엄마 나 배고파.”


배고프다는 건 사실 핑계였다.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둘러댔을 뿐이었다. 배가 고픈 건 너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그런 일상의 행복이라도 느낀 것일까? 그래 나는 분명히 기억난다. 내 목소리를 처음 들은 어머니는 작지만 분명하게 소리를 지르셨고,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다. 나는 그 순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달려오던 차에 부딪쳐 날아다니는 유리조각들,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아버지, 손을 뻗어 나를 지키려던 어머니 그리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잠든 듯 눈감고 있던 동생까지. 난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고, 매일밤 그날을 다시 살고 있다.


내가 변덕을 부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냥 하던 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살아계셨을 것이 분명하다. 동생은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랑 수다를  있었겠지? 그러면 이 집안에서 나만 남아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그거야 우연히 일어난 사고에 불과하잖아.”


그렇다면 나는 다른 증거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부모님과 동생을 사고로 잃고 나만 홀로 그 사고에서 살아남았을 때, 내 곁에 남아있던 건 친할머니뿐이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참 교양 있고 멋진 분이셨다. 의사였던 할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심장내과 의사셨고, 할머니도 저명한 안과의사셨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낳아 고이 키우셨는데 나 때문에 그 소중한 아들을 잃으셨지만 할머니는 나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진실을 모르셨기 때문일 것이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나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래도 할머니는 나를 지켜주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이 기억난다. 이렇게 기억력이 좋은 건 내가 천재인  분명하다. 그날의 온도와 할머니방의 향기도 기억난다. 오래된 철봉을 만지고 나면 남는 그런 쇳조각 같은 차가운 향기가 났다. 서늘한 것 같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드러운 살내음 같은 냄새도 같이 느껴졌다. 그날 병원에서는 할머니에게 입원을 권했지만 굳이 집으로 퇴원하셨다. 하나뿐인 손자 때문이었을까? 난 링거를 팔에 꽂고 침대에 누워있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고, 그런 나를 말없이 쓰다듬어 주셨다. 난 할머니의 고통을 끝내 드리고 싶었다. 더 이상 할머니가 아픔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를 보내드리기로 했다. 나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어쨌든 진실을 숨긴 채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없었다.


“할머니 그동안 키워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사실 아빠와 엄마, 동생은 나 때문에 죽었어. 내가 그날 말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할머니에게 끝까지 진실을 숨길 수 없었어. 내가 아빠를 죽인걸 할머니가 알았어도 나를 사랑했을까? 할머니한테 너무 미안해. 그리고 할머니도 오늘 나 때문에 죽어. 내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거든.”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들을 수 없었다. 짧은 그 한마디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긴 말이 뭐였을까? 가끔 그때의 기억을 뒤져보지만 듣지 말아야 할 말이었던 듯 내 몸은 그 말을 거부했다.


그날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내 목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죽는다. 분명 의사 선생님은 할머니가 몇 달은 더 살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서 이 새벽에 브의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창한 선의는 아니지만 최소한 살인을 피하기 위함이니 이 정도면 내가 살아도 괜찮은 거 아닐까?


[ 02화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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