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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맘 Nov 16. 2023

 멧비둘기가  돌보는 집


멧비둘기 가족은 나의 암과 함께 찾아왔다.

작년 4월 나는 건강검진으로 암을 만났다.  내가 암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 앞 목련나무에 멧비둘기 가족이 둥지를 틀고  나를 반겼다.


나에게 찾아온 낯선 암이라는 손님을 우리 가족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집은 나에게 필요한 일상으로 세팅이 되었다.

서울로 학교를 다녀야 하는 두 아이들은 학교 근처에  집을 구했다.  집에서 통학을 해도 되지만, 남편과 나는 나의 항암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아이들은 주말에만 집으로 오기로 했다.



나는 70% 위절제수술을 했다. 수술 후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나의 암기수는  3기라고 했고, 항암치료를 할지 결정을 해야 했다.

8번의 항암치료는 옥살린플라틴 주사제와 젤로다 구강항암제를 함께 사용한다.

위암 3기 생존율은 40% 정도다. 8번의 항암치료를 하면 생존율이 10% 증가할 수 있다.

남편과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항암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수술한 날 저녁부터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퇴원을 하고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수술을 한 부위는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나는 복강경수술을 했다.


70% 절제 수술을 한 나의 위는 회복이 되려면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했다. 수술 후 금식- 미음- 흰 죽으로 시작된 나의 음식 먹기는 퇴원을 하고도 흰 죽이나 야채죽을 먹어야 했다.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물기가 많은 진밥을 먹어야 했다. 나를 위해 한동안 꼼지파파도 물기가 많은 진밥을 먹여야 했다. 물기가 많은 진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반찬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면서 또 나의 위는 힘들어했다.  그리고 위가 채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첫 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멧비둘기 가족과 함께 시작한 항암치료

항암부작용으로 미각과 후각의 변화가 가장 먼저 찾아왔다.

집에서는 음식을 하기 힘들었다. 흰 죽냄새도 맡기가 힘들어  한동안은 근처에 사는 동생이 죽을 만들어 이유식그릇에 한번 먹을 양을 담아왔다. 내가 먹는 양은 아기들의 이유식양보다 작았다.

남편이 식사를 하거나 나의  음식을 데워야 할 때면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활짝 열고, 거실과 베란다의 문을 꼭 닫고 있었다. 그것도 힘들 땐 수영장에서 사용하는 코마개를 하고 있었다.

음식냄새를 맡으면 구역감으로 음식을 먹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베란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열어놓은 베란다의 창문으로 멧비둘기가 둥지에 앉아있었다. 멧비둘기는 알을 품고 있다.

두 마리의 멧비둘기는 돌아가며 24시간 정성껏 알을 품고 있다. ( 비가 올 때도 비를 맞으며, 꼼작하지 않고 알을 품는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베란다에 앉아 있는 멧비둘기가 왠지 나와 닮은 것 같다.

"우리 잘 견뎌보자"

맷비둘기에게 말했지만 나에게 하는 말이다.


매일 아침이면 꼼지파파가 묵은쌀, 뻥튀기를 베란다 창틀 위에 올려둔다.  알을 품고 있느라 비가 와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멧비둘기가 혹시라도 배가 고플까 봐서다.

멧비둘기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가족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 꼼지파파와 나는 멧비둘기들을 살폈다.

주말에 돌아온 아이들도 멧비둘기들이 놀래지 않게 조심해서 창문을 연다.

나는 하루의 절반이상을 베란다에서 보냈다. 책을 보거나 힘들면 누워있거나. 음식을 먹을 때도 대부분 베란다에서 먹었다.  힘들면 깔아놓은 이불 위에 누워서 잠을 자기도 했다.

베란다에 누우면 멧비둘기의 둥지가 잘 보인다. 멧비둘기도 나를 보고, 나도 멧비둘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는 많은 시간 멧비둘기 가족의 건강과 나의 건강을 기원했다.

우리, 건강하게 이 시간을 잘 견뎌낼 거라고...



탄생

얼마뒤 둥지가 소란스러워졌다. 드디어 새끼가 알을 깨고 나왔다.

멧비둘기 새끼들은 모두 건강했다.

나도 항암치료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매일 산책을 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체력도 좋아졌다.  항암치료를 하고 있지만 체중유지도 잘 되고 있다.

멧비둘기도 나도 잘 이겨내고 있었다.


멧비둘기 부부는 더 분주해졌다. 새끼들을 번갈아가며 돌보면서, 먹을거리도 구해와야 한다.

우리 부부도 하루의 루틴이 생겼다. 나는 항암부작용으로 불면증이 생겼고, 나는 새벽책 읽기를 시작했다.

식사 후에는 소화를 돕기 위해 항상 산책을 한다.

나는 매일 항암치료일기를 , 꼼지파파는 나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멧비둘기부부처럼 우리 부부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냈다.


멧비둘기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새끼들이 자라면서 둥지를 튼 목련나무에는 새똥이 쌓여갔다.

새똥이 덕지덕지 굳어있는 목련나무가 예뻐 보이다니 신기했다.

잘 먹고, 잘 싸는 걸 보니 새끼들은 건강한 것 같다.

나도 멧비둘기 새끼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멧비둘기새끼들의 성장모습이 나의 모습 같았다.



새끼들은 많이 자랐다. 날개도 튼튼해졌다. 조금씩 날갯짓을 한다.

푸드덕! 푸드덕!

멀리까지는 나는 연습을 하진 않고, 둥지 바로 옆가지로만 날아갔다 앉는다.

소리만 요란하다.

날갯짓하는 소리와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울음소리도 우렁차졌다.

태어나면서부터 봐서인지 우리를 경계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고, 갸우뚱거린다. 호기심 많은 새끼들이다.

혹시라도 집으로 들어올까 봐 방충망은 꼭 닫아둔다.

(멧비둘기가 알을 품고 있을 때는 종종 방충만을 열어두기고 했다. )


이별

며칠이 지나도 멧비둘기가 보이지 않는다. 종종 사라졌다 다시 보이곤 했는데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떠났나 보다.

나의 항암치료도 끝났다.

우리는 잘 견뎌냈다.

나도 건강하게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음 해에도 찾아올까 기대를 하며 아쉽지만 감사하고 고마운 이별을 했다.







새로운 이야기기 시작되려나?

멧비둘기 가족이 떠난 지 1년이 지났다.

꼼지파파와 카페로 가려고 주차를 해놓은 차로 가고 있었다.

주차장 앞에 새끼 멧비둘기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다쳤나?"

"춥겠다"

"혼자인 거야?"

"배고플 것 같은데"

우리가 다가가니 총총거리며 서두른다.  날갯짓을 하며 가까운 나무 위로 날아오르지만 날갯짓이 서툴고 힘이 없다. 아직 새끼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걱정이다. 밥은 먹었을까?

우리는 아침간식으로 먹으려고 준비한 견과류를 꺼냈다.

꼼지파파는 입으로 씹어 잘게 부수어 새끼 멧비둘기에게 손을 내밀어 보여준다.

나도 근처 깨끗한 바위 위에 잘게 부순 견과류를 놓아준다.


꼼지파파가 견과류를 내민 손을 작은 부리로 으려고 한다.

무서워한다.

" 이거 먹어!"

알아들지 못하겠지만 멧비둘기에게 말을 전하고 우리는 차로 갔다.


꼼지파파의 오늘의 그림일기는 멧비둘기 이야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추운 겨울이 오는 날이라 걱정이 된다.



나는 2005년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점자촉각그림동화책을 만들었다

나는 국내 최초  점자촉각그림동화책 작가이다.

글도 내가 썼다. 동화작가님의 검수를 받았다. 아기새의 이야기는 시각장애아동에게 용기와 꿈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엄마새가  비바람을 이겨내며 알을 품고 새끼가 태어났다.

아기새 중 한 마리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왜소하고 겁이 많다.

주변의 도움을 받고 격려와 사랑을 받으며 드디어 용기를 내어 힘찬 날갯짓을 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곳으로 떠난다는 내용이다.


동화의 글은 내가 2004년에 직접 썼다. 그 글의 내용과 바느질로 표현한 그림들이 내가 암을 만나 항암치료를 하는 힘든 시간 내 눈앞에 펼쳐 쳤다.

나는 멧비둘기가족을 지켜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함과 벅참을 경험했다.

나는 나의 암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고, 나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의 첫 점자촉각그림동화책 아기새처럼  결국엔 힘찬 날갯짓을 할 거라 믿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찾아온 멧비둘기 가족에게 너무 감사하고 고마웠다.


꼼지파파의 멧비둘기 이야기

01화 가을 하늘이 눅눅해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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