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쉼과 영혼의 회복

23년 8월 6일 (D-130)

by 김부경

나는 대학병원의 내분비내과 의사다. 그리고 의과대학의 내과학 교수다. 또 나는 두 딸아이들의 엄마이다. 지금 이 세 가지의 타이틀을 가지기 위해 평생을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2022년 3월부터 2023년 8월까지 그 바쁜 삶에 대한 보상으로 나는 온 가족과 함께 미국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 근교로 연수를 다녀왔다. 미국으로 연수를 가기 전 피크로 바빴는데, 다른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의과대학 교수 일이라는 것이 해마다 하는 일이 누적된다. 특히 한 가지 일을 잘 해내면 잘 해낼수록 다음에는 더 많은 일이 주어진다. 그렇다고 못해낼 수도 없지 않은가. 환자들을 잘 보면 환자가 늘어나고, 강의를 잘하면 강의 요청이 많아지고, 논문을 잘 쓰면 더 큰 연구를 하게 된다.

2019년에 나는 이미 건강에 이상을 느꼈다. 매일 이렇게 살다가는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쉼을 위해 꼭 연수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출발하기 직전인 2020년 초에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그렇게 미국 연수가 무기한 연기가 되고, 일을 하면서도 매일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다. 당시 나는 두통, 불면증, 부정맥, 목디스크 통증으로 온갖 약을 먹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진료실에서는 환자를 보다가 정말 드러눕고 싶단 생각을 많이 했다. 한 열명쯤 보면 벌써 언제 진료가 끝나나 싶었다. 아직 대기 환자가 수십 명씩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한숨이 나왔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죽을힘을 다해 진료를 보고 있는 나에게 만약 어떤 환자가 친절까지 요구하기라도 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데도 계속 강의 요청은 들어오고 나는 매일 꾸역꾸역 그것들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2021년에는 교수가 된 이후 외부 강의를 가장 많이 했는데, 외래진료, 입원 환자진료, 학생 강의, 학교 관련 업무, 학회 임원 업무 등의 일을 하면서 수많은 강의들을 했다. 이 모든 것을 스스로는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 다행히도 2022년 초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회복하였다. 특히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나의 영혼이 크게 쉼을 얻었는데, 그제서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내 영혼을 돌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얼마나 나 자신과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괴롭혀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2023년 8월에 한국으로 다시 귀국하면서 다시는 이전처럼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keyword
이전 01화이야기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