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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현실

2023년 9월 15일 (D-90)

by 김부경

미국 연수 생활 동안 많은 것을 회복한 나는 다시 일터로 돌아오면 이전과는 다를 줄 알았다. 이전과는 다르기를 결심했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원래 우리 병원의 내분비내과에는 4명의 교수가 있었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병원들도 최소한 3명에서 7-8명의 교수가 있다. 그런데 내가 연수를 가기 전에 내 밑의 교수가 병원을 떠났다. 그래서 내가 연수를 가는 문제가 남아계신 교수님들께 무척 죄송하고도 감사한 일이 되었다. 결국 막내가 자리를 비우고, 내 환자들을 위의 교수님들이 다 받아주셔야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마도 내 위의 교수님들이 좋은 분들이 아니셨다면 나는 결국 연수를 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감사하게도 교수님들의 격려를 받으며 연수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제일 위의 교수님이 병원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결국 우리 병원 내분비내과에는 K교수님 한분과 펠로우 선생님 한 명만 남게 된 상황이 되었다. 이 펠로우 선생님은 레지던트와 군의관 시절에 내가 내분비내과를 전공하라고 지속적으로 권유를 해서 내분비내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나의 연수가 연기되면서 내가 떠난 직후에 병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니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는데, 병원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하던 그 많은 일들을 갑자기 도맡게 된 상황이었다.


병원으로 돌아온 첫날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던 K 교수님마저도 병원을 떠나시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돌아오자마자 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니 12월까지만 있어주시고 나가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의과대학 학생들 내분비학 수업이 9월부터 11월까지 있는데, 이제 막 도착한 내가 갑자기 모든 환자들 다 받고, 학생들 수업까지 모두 도맡는 것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내가 미국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혼자서 그 모든 일을 다 떠안아주신 K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앞서긴 했지만 정말 앞날이 막막했다.


그래도 내가 미국에서 재충전을 하고 돌아왔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인사과를 통해 전국에 구인 광고를 내었다. 그리고 한 명 남아있는 펠로우 선생님을 내년에 어떻게든 남겨야 했다. 나는 이 친구에게 밥도 사주고, 이것저것 그동안 못 가르친 것들도 알려주고, 학회도 같이 데리고 가고 하면서 교수로 남을 것을 부지런히 권유했다. 나 혼자 남으면 죽음이니까, 그 친구를 남기는 데 사활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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