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셋째가 갖고 싶었다. 아이들이 벌써 7살 5살이 되었다. 시간은 왜 이리 빠른 건지.. 야속하기 그지없다. 그 와중에 셋째는 정말 천사 같다는 말을 듣고 욕심이 생겼다. 만약 정말 아이를 갖게 된다면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셋째가 급 갖고 싶어 출산 혜택을 찾아보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정보들을 찾아보고 또 찾아보았다. 그렇게 깊은 새벽 동트는 줄 모르고 나는 신랑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고 있었다. 생각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돈이 들어가는 거야 나중 문제이고 낳으면 더없이 사랑스럽게 배운 대로 배려 깊은 사랑을 실천하며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에 사로잡혀있다.
이렇게 나는 무언가 한 가지에 꽂히면 시작하기도 전에 늘 행복한 상상에 젖어들고는 했다. 정말 내가 아기를 갖고 싶은 이유는 뭘까?? 정부에서 주는 혜택을 누리고 싶어서?? 또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나? 하나 이 문제는 셋째를 가진 들 축하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이 더 생각나 아닌 듯하면서도 걱정도 관심이라면 기꺼이 받겠다는 에고일까? 아니면 주변에 아기 가진 사람들이 많다 보니 질투에 의한 내 욕망일까? 결론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그저 존재 자체로 처음서부터 환영해주고픈 아기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였다.
셋째를 가진다면 이제 두 번 다시 겪을 수 없는 일을 마지막에 정말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간절함이 느껴졌다. 신랑에게 셋째를 갖고 싶다 얘기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행복한 상상에 젖어 날을 꼴딱 새고 1시간 30분 정도 자고 일어났다. 신랑이 출근하는 길에 도라지차를 보온병에 담아 쥐어주고는 식탁에 앉아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다.
"셋째 갖자~"는 문자에 신랑은 50이라며 나이를 들먹인다. 셋째가 갖고 싶다 떼를 부렸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니 아들이든 딸이든 낳자고 했다. 안된다며 딱 잘라 거절하는 야속한 신랑. 늘 했던 패턴이 나온다. 밀어붙이기!!! '넌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기나 해!!' 하며 병원에 가서 날짜를 받겠다 엄포를 놨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바로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가는 길. 내 무의식은 나를 말리기라도 하는 듯 병원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오토바이와 사고가 날뻔하고 앞서가던 차가 비켜주지 않는다. 도착한 병원에서도 접수를 하기는 했으나 오전 진료가 끝나서 점심시간이 지난 후에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문진표 작성을 할 때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간호사에게 또박또박 대답하긴 했으나 무의식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마냥 기뻐할 줄 알았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밀어내는 듯 한 느낌. 그리고 단톡을 주고받는 중에 외로움이라는 단어에 탁 걸려버렸다.
어쩌면 '나는 내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 셋째를 갖길 원한 게 아닐까?' 하는 자각이 올라온다. 대화가 더 깊어졌다. 만약 내가 정말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면 나는 병원에 갈 것이 아니라 내 외로움을 대면해야만 하는 것이랴. 점심시간이 지나고 진료순서가 되었고 의사는 일단 산전 초음파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기다린 후 임신 계획이 있어서 배란일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둘째를 낳고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산전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며 의사는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를 한 후 다음 주쯤 다시 진료를 보자고 하셨다.
검사를 하기 전 수납을 하려는데 수납 대기자는 왜 이리 많은 것이며 어플 실행은 왜 되지 않는지. 한참을 헤매다 어플 결제시스템을 찾아 결제하려는 순간 결제금액을 보고 경악을 했다. 첫째 둘째도 모두 배란일을 받아 낳기는 했지만 굳이 이 큰돈을 들여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검사대기 순서가 되었음에도 차가 주차되어 있는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셋째는 의학의 힘이 아닌 내 외로움을 대면하고 내맡겨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음이 터져버렸다. "외로워~정말 외로웠다고.. 신랑 나쁜 새끼.."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 너무 힘이 들어 육아를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그때 생각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나는 그렇게 나를 또다시 육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으려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의 외로움을 대면하지 않으려고 또 그랬구나.. 한참을 울다 보니 "엄마 보고 싶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뿔싸.. 엄마였구나... 외롭게 홀로 지내야 했던 다섯 살 내면 아이가 한없이 불쌍하다. 불쌍한 아이를 위해 통곡하며 울어주었다.
12월부터 앞서 보여주었던 내 무의식적 행동 패턴. 혼자 스토리를 써가며 스토리가 오해를 불렀고, 생일을 기다리는 아들을 위해 달력에 x표시를 하는데 일주일 뒤처진 엉뚱한 곳에 x표시를 하는가 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모두 시간과 관련이 있었다. 이것은 무의식과 내면의 불일치를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만 받고 발길을 돌렸다 얘기했다. 부부로서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셋째라도 낳아서 외로움을 달래려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외롭지 않게 이제 우리 사랑하자고 했다. 의학의 힘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 되는 기쁨을 누렸을 때 셋째는 하늘이 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일을 크게 냈다.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좋아하고 기뻐했다. 그렇게 나는 외로움을 상상으로 대신했는지도 모르겠다. 멈추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신랑에게 요청했다. 퇴근해서 집으로 온다면 아이들보다 외로운 나를 먼저 안아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