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으로 단단해지는 방법 1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핀볼보다 더 치이는 회사원의 삶

by 초곰돌이

취준생이 되면서 가장 간절하고 유일하고 염원하고 희망하고 원했던 일은 바로 취업이었다.

수십 개의 원서를 쓰고 수십 개의 탈락 메일을 받고 수십 번의 술로 나 자신을 위로하던 그 시절 어디라도 좋으니 취업만 시켜달라고 빌었던 적이 있었다.

2년간의 노력과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원하는 회사에 합격하는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취업만 하면 내 인생의 모든 일이 다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또 다른 전쟁터로 재입대하는 것임을...




대학생 때 그래도 남들보단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봤다고 자부했던 나는 어떤 상황이 와도 잘 해결하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사원증을 목에 걸기만 하면 어떤 일들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일(work)이라는 것은 시베리아 칼바람보다 더 혹독한 것이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은 야생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적용되었다.

도태되지 않고 짓밟히지 않고 떠밀려 다니지 않으려면 1분 1초 정신을 단디 차리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신입이라는 노란 명찰을 단 나와 같은 사회초년생들은 초원의 초식 동물이었고 자신을 방어할 제대로 된 수단도 갖지 못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의 나는 그저 모든 일에 먼저 굽히고 들어갔던 것 같다.

신입이니까, 잘 모르니까, 배워야 하니까

주변 선배들의 말에 건전지가 끼워진 인형처럼 머리를 반복적으로 끄덕였고 이해하는 척 받아들이는 척을 했다.

그렇게 초원의 초식 동물은 피라미드의 제일 아래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회사에 점사 적응할수록 몸과 마음은 반비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배니까 또는 관행적으로 원래 이렇게 하니까 조용히 하고 따라오라는 말에 부당함과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반항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내가 이러려고 취업을 했는지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너울거렸다.


힘들게 취업한 곳이니 참고 견디며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성적 감정과, 이렇게 힘들고 더럽게 굽신거리며 일을 해야 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그래서 이 충돌을 다스리기 위해 선택한 가장 빠르면서 미련한 방법인 알콜로 정신을 안개처럼 뿌옇게 만드는 것이었다.

너무나 미련하고 1차원적인 방법이었다.

술은 마음을 위로해주고 다스리기엔 한계가 있었고 술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몸이 더 힘들었다.


일에 대해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그다음 선택한 방법은 스위치를 끄는 것이었다.

직면한 문제에 회피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퇴근과 동시에 일에 대한 생각을 1도 안 하려고 했다.

그래서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운동을 하든, 책을 읽든, 게임을 하든 또는 그저 하루 종일 잠만 자든지 해서 머릿속을 다른 무언가로 채워 일이 들어올 방이 하나도 없게 만들었다.


무작정한 도피의 삶은 월요일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일요일 저녁 전까지 정신을 편안하게 하는데 효과적이었다.

마치 최면을 건 것처럼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개그콘서트의 '빠바밤~'하는 음악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회사원이 아니었고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처럼 일과 철저히 주말을 분리시켰다.

일요일 저녁엔 댐이 무너지듯 일에 대한 온갖 감정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흘러나왔지만 이전보다는 견딜만했다.


그리고 이 스위치 전략을 모터로 삼아 회사를 잘 버틸 수 있는 몇 달간의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저녁까진 나는 회사원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고, 나는 지킬과 하이드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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