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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곰돌이 Sep 16. 2021

비로소 지나야 보이는 것들

눈가리개를 쓰고 살아왔던 지난날

경주마(馬)들의 눈가리개를 본 적이 있는가?

당근처럼 긴 얼굴 양쪽에 위치해 넓은 곳을 바라보는 경주마들의 시야를 가려 오로지 앞만 보게 만드는 경주마들의 눈가리개는 좌우 또는 뒤를 보지 말고 오직 전진하라고 달리라고 실체 없이 채찍질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렇게 달리고 달려 결승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그 후에 남는 것들은 오로지 등수라는 숫자뿐이다.

기수에 움직임에 맞춰, 그저 좁은 시야에 갇혀 내달릴 뿐이다.


말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숫자들을 얻으려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앞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듯 달려 나간다.




우리의 인생도 경주마들과 같지 않았는가?

숫자라는 틀에 자신을 맞추고자 1점 1점을 올리려고 주의를 보지 못한 채 책상만 바라보진 않았는가?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였던 그 시절 좋은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중학생 때부터 하루 12시간을 책상에 앉아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를 쳐다봤고,

대학이라는 간판을 달기 위해 '나'가 존재하지 않는 모의고사 점수로 매겨진 명찰을 달고 3년을 내달렸다.


대학에 와서는 숫자가 아닌 A+, A-의 등급이 매겨지는 돼지고기처럼 등급이 매겨져 회사의 간택을 받기 위해 아등바등 그 어떤 나이보다 찬란하게 빛나야 할 20대를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살았다.


영혼이라도 팔아서 얻고 싶었던 사원증을 목에 걸었어도 등급과 숫자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초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약 20년, 아니 그 이상을 '나'가 존재하지 않는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하고 언제 다다를지 모르는 결승 지점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누구나 바랬던 파란피를 수혈받아 파란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가 '나'가 존재하지 않아 '나'를 찾기 위해 사원증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그때 비로소 '내'가 보였다.


그제야 눈가리개를 벗었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주변에 인색했는지, 얼마나 불효를 했는지, 작디작은 사회가 규정한 숫자의 틀에 내 몸을 구겨 맞추기 위해 얼마나 내 몸을 혹사시켜 이곳저곳 멍을 들게 했는지 보였다.


이 모든 것이 청춘이 지나고서야 보였다.


지나기 전에는 주변의 온갖 조언과 격언이 그저 관중들의 의미 없는 함성소리 같았다.

그리고 지나고서야 그 소리들이 나를 위한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인생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지나고서야 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족의 소중함도,

친구의 고마움도,

사랑의 존재도

이별의 아픔도

나라는 존재도

모두 지나고서야 깨닫는다.


무심코 지나가기 전에 눈가리개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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