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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삶의 모든 순간들이 그런 부모님의 마음으로 인도됐기 때문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빙하를 보기 위해 Nigardsbreen로 갔다.

 빙하는 거대한 소다맛 아이스크림이다. 

 나보다 크고, 차보다 크고, 아파트보다 크다. 아파트 단지 보다도 넓다. 

 망원동 면적이 1.14 km², 강남구 면적이 39.55 km²인데 Nigardsbreen빙하는 48 km²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노르웨이 총 빙하 면적은 3,400 km² 다. 

 대체 저 거대한 얼음은 언제, 어떻게 얼어서, 아직까지 있는 걸까 의문을 가져보면 자연이 신비롭기만 하다. 

 가까이 다가간 빙하는 끝없이 녹고 있었고 빙하가 녹은 물은 강 줄기를 이루며 세차게 내려갔다. 

 빙하가 녹은 물 또한 소다맛 아이스크림 색과 같아서 강물도 소다 색으로 새파랗게 흘러간다. 

 겨울이면 다시 얼어붙을까. 겨울에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적어도 녹은 양만큼 다시 얼어붙어서 후대의 사람들도 이 빙하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빙하 위로 올라가 보고 싶은 정도의 호기심은 없어서 빙하 트레킹은 신청하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빙하를 만질 수 있는 곳까지 걸어오는 길이 쉽지 않아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숙소는 오래된 카페나 경양식 집으로 착각할만한 외관이었고, 내부는 빈티지 가구로 꾸며서 굉장히 멋스러웠다. 

 빙하 지대 근처에는 크게 발달한 도시나 마을이 없고 국립공원 초입에 숙소만 덩그러니 서있어서 3층짜리 목조 건물인데도 안에 있으면 캠핑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빙하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6시가 지나자 주변이 매우 적막해졌다. 

 너른 들판과 소다 색 빙하만 있다.


 방안에 있는 홍차 티백을 뜯어 우리고 <노르웨이의 숲>을 꺼내어 읽었다. 

 책의 흡입력이 강해서 한번 잡으면 몇십 장을 넘길 때까지 눈을 떼기 힘들다. 

 노르웨이에 온 뒤로 책을 펼칠 때마다 그랬다.

 그렇게 읽다 보면 책장이 너무 빨리 넘어가서 금방 봐버릴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따뜻한 차를 마시는 동안 몸이 이완되는 것이 좋아서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에 보이는 들판 어딘가에 누가 모닥불을 피워줬으면 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장작이 타는 것을 보고 싶은 밤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도 캠프파이어 같은 것이 시작되면 한참 그 불을 보면서 인생을 되돌아봤다. 

 그때는 되돌아볼 인생이 짧아서 금세 가족, 친구들,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으로 넘어갔지만, 지금은 되돌아볼 인생이 길어서 차마 다 떠올리지 못하고 불만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왜 불이 타오르면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될까. 불은 그런 위력이 있나 보다. 

 타는 장작은 불꽃을 위로 올려 보내서 반딧불 같은 불의 잔재가 하늘로 튀기듯 올라 나풀거린다.

 수련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의 대미는 늘 캠프파이어였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보이스카웃에 가입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캠핑을 할 때도 운동장 한가운데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옷이 멋져 보여서 가입했기 때문에 다른 것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그 불꽃만 기억난다.


 초등학교 때 사회성을 길렀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계획으로 YMCA를 통해 수련회 비스무리 한 걸 여러 차례 갔다. 

 그때도 매번 캠프파이어가 있었고, 종이컵 가운데 구멍을 뚫어 초를 꼽고 촛불 의식 같은 걸 했다. 

 멀리서 보면 원주민과 다를 바 없는 그 의식은 늘 뻔하면서도 늘 가슴이 뭉클했다.

 당할 수밖에 없는 감동이 그 자리에는 있었다.

 커서 참가자가 아닌 기획자 입장이 돼보니 이때를 위해 준비하는 게 많았다.

 몸을 고되게 하고, 가족의 편지나 영상, 감성적인 음악, 사회자의 멘트 등이 그렇다.

 참여자는 감동과 감성에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마의 원대한 계획은 행사 진행자에 적합한 사람으로 연결된 것이다.

 아빠가 교복도 안 벗은 나에게 마이크를 쥐어 배추를 팔게 한 것도 다 연결돼 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대학교 동아리 활동과 회사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마이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래서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스티븐 잡스의 말처럼 커넥팅 닷(connecting dots), 모든 인생의 점들은 연결돼 있다.


 Twinings 홍차 티백을 색깔별로 하나씩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당장 먹지 않을 것을 챙기는 것이 미안했지만 가난한 여행자의 뻔뻔함으로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호스텔에 숙박할 때는 저녁에 차 한잔하고 싶어도 물 한잔으로 달래야 했다. 

 홍차에도 많은 카페인이 추출되지만 카페인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밤 11시가 넘어 사위가 어두워질 때까지 홍차를 마셨다.




 미도리는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기분 좋은 듯이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알고 있는 노래를 한바탕 부르고 나더니, 이번엔 자신이 작사 작곡했다는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


 당신을 위해 스튜를 만들고 싶지만

 내게는 냄비가 없어

 당신을 위해 머플러를 뜨고 싶지만

 내게는 털실이 없어

 당신을 위해 시를 쓰고 싶지만

 내게는 펜이 없어


 "<아무것도 없어>라는 노래야." 하고 미도리는 말했다. 가사도 형편없고, 멜로디도 엉망이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북유럽으로 오기 전 동남아에 있을 때 이야기다.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갈 무렵 나는 동남아 여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수중에 만 원짜리 한국 지폐와 베트남 화폐만을 지니고, 달러나 라오스 화폐, 유심칩도 없는 채 루앙프라방 공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참 태평했다.

 "어디~이~ 보자아~ 여기가아 라오스로구나아~" 짧은 비행에도 깊게 잠든 탓에 몽롱하게 공항을 걸어 나오며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활력을 돋궜다.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한 것도 아닌데 공항 내의 가게 대부분이 닫혀 있었고 몇 개의 자판기와 ATM, 서성이는 택시 기사들만 있었다.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허어~ 돈이 돈이 필요하구나아~" 노래 부르며 ATM을 찾아갔다. 

 계속해서 입에서 알 수 없는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이것은 우리 민족의 혼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도, 엄마도 가끔 알 수 없는 노래를 불렀다.


 생각해 보니 보안이 철저하다며 좋아했던 우리은행 카드는 이곳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우리은행 체크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은행 어플을 통해서 ATM 사용 가능으로 체크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안되면 은행 어플을 사용할 수 없다.

 흥얼거리며 이미 출국 게이트 밖으로 걸어 나온 터라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와이파이가 없었다.

 믿을 것은 하나은행의 비바 체크카드뿐었다.

 어찌 된 일인지 각기 다른 세 종류 ATM기기를 시도했는데 인출이 되지 않았다.

 위기감과 함께 입에서 절로 나오던 노래도 절로 멈췄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은 삼삼오오 택시를 타고 사라졌고 공항에는 기사들과 나뿐인 듯했다. 

 낮이면 걸어서 시내를 가볼 염두라도 해보련만 낯선 곳의 어둠이 무서웠다. 

 베트남 사파를 여행하는 동안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겪었기 때문이다.


   멀리에 한국인  명이 기사 셋에 둘러싸여 어떻게 할지 망설이며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사람이 있다는 것도 반가운데 한국인이라니,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서 상황을 들어보니 한 친구는 기사들이 부르는 택시비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 친구는 비싸더라도 어서 택시로 시내에 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택시를 같이 타서 개인의 가격 부담을 낮추는 것이 어떤지 물었다. 

 다만 현재 내가 돈을 인출할 수 없는 상황이고, 시내에 도착하면 그곳의 ATM기에서 인출해서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내에 내리고 보니 환히 밝힌 불들 사이로 야시장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우선 각자 숙소로 가서 짐을 두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것도 인연이니 저녁을 함께 먹을 생각이다. 

 여전히 인터넷이 안되고 돈을 전달하지 않은 상태 건만 그들이 이렇게 믿어주니 감사하기만 했다. 

 서둘러 숙소로 가서 와이파이를 연결했다. 

 야시장과 더불어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던 터라 우리는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다시 각자의 숙소로 헤어졌다.

 1층에서 숙소 주인을 통해 꽝시로 가는 차를 예약하고 방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노래를 불렀다.

 "아이고오~ 조오오오타아~ 내일은 커어피나아~~ 한잔 해야 쓰것네에~"




 엄마의 사회성 증진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성장할수록 급속도로 사회성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를 보고 있으면 유전적인 요소인 듯도 하다.

 오랫동안 엄마가 키워주고 싶던 사회성이 숫기와 연관된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단체 생활에서 크게 숫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한정적이어서 우리 팀에 속한 사람들한테는 서슴없이 다가섰지만 그 외 사람에게는 낯을 가리고 부끄러워했다. 

 특히 각종 캠프와 수련회에서 무대 앞에 나가서 춤을 춰야 할 때, 노래를 불러야 할 때 몹시 부끄러워서 뒤로 숨기 일수였다. 

 실력과 상관없이 무대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말을 건네는 게 어렵지 않고, 연말 송년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만큼 뻔뻔하게 됐다.


 엄마가 생각하던 것은 '관계' 였을 것이다. 

 숫기와 무관하게,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과 무리 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더불어 살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사회성이란 말은 난해하다.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란 문장에서 끝나지 않고 호감을 얻는 기술이나 능력을 뜻하기도 하고 예절, 눈치, 인성 등 많은 요소를 포함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혹은 특정 집단에서는 처세술이라는 말과 은근슬쩍 연관되고 혼용 돼버린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것들과 상관없이 그저 원만하고 적절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기만을 단순히 바랐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여행지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 적절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예의를 잃지 않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 캠핑을 갈 때마다 캠프파이어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건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이 그런 부모님의 마음으로 인도됐기 때문임을 은연중에 알았기 때문이다. 

 세계여행이 나를 성장시켜 가는 것도 있지만 내가 이만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을 되짚게 한다. 

 감사하다. 

 내가 이런 사람으로 성장해서 세상을 누비며 사람들 틈에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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