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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답은 오직 내 안에서 나와야 했다

자발적 외로움

 노르웨이 정부는 관광으로 갈 만큼 아름다운 길을 선정해서 노르웨이 관광청에 공유해뒀다. 

 거대한 빙하지역을 빙 돌아서 숙박 목적지인 utvik까지 가는 동안 이 길(내셔널 투어리스트 루트)를 지나간다.


 여행을 마친 입장에서,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어딘지를 묻는다면 258 도로라고 할 수 있다.

 strynefjellet이라고 표기된 이 길은 보물처럼 아름답다. 

 누구든 캔버스가 있다면 그림을 그렸을 것이고 텐트가 있다면 야영을 했을만한 장소다. 

 이때만큼은 화각이 큰 렌즈를 가진 이들이 부러웠다. 

 노르웨이는 시야가 사방으로 뚫려있고 모든 것이 거대하다. 

 작은 부분도 아름답지만 눈에 보이는 전체가 만드는 풍경은 놀랍다. 

 작은 프레임에 담을 수 없는 것을 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담기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아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진을 담아야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랬다. 


 메모장에 258 도로에 대해 할 수 없는 설명을 애써 적어두었다.

 일단 노르웨이에서 대단하다고 느끼는 풍경의 태반은 외계 행성 같은 분위기가 기본이다. 그러한 분위기를 전제로 상상해야 한다. 시야의 먼 쪽에 바위로 된 대지가 솟아 올라 낮은 언덕을 형성하고 있다. 시야 좌우로 전체가 그러하다. 중간중간 높고 뾰족한 산이 솟아 있고 언덕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산의 꼭대기 부분은 고스란히 눈이 덮여있어서  파라마운트 영화사 오프닝 장면에 나오는 산과도 같다.
 앞쪽에는 소다 색 강이 흐르는데 그 색이 매우 아름답다. 곳에 따라서는 에매랄드 빛을 띠기도 하지만 대체로 하늘색에 가깝게 푸르다. 강은 폭이 아주 넓진 않다. 이 강은 나중에 절벽을 만나서 폭포로 떨어진다.
 강과 산 사이에 넓은 공간은 모두 드러나 있다. 노르웨이의 풍경을 경이롭게 하는 많은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야를 막는 것이 하나도 없다. 노르웨이 지도의 좌측을 따라서 여행한다는 것은 피오르드이거나 그 영향권을 이동하기 때문에 바위로 된 땅이 많다. 나무가 없고 짧은 잔디와 이끼, 돌덩이 등이 대다수 조화를 이룬다. 고지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어김없이 눈이 쌓여있다. 경사면이 옆으로도 앞으로도 모두 보이기 때문에 모든 게 흘러내릴 듯 한 느낌이다. 능선을 보고 있으면 그 너머에서 누군가 등장할 것만 같은 판타지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와 로한 기마대가 등장할 때처럼 말이다.
 258 구간은 길다. Grotli 쪽에서 시작해서 꽤 먼 거리를 가다 보면 내리막이 시작된다. 이때는 양쪽에 높은 산을 연속으로 두고 좁고 구부러진 길을 내려가는데, 양쪽 산비탈을 타고 구름이 흘러내린다. 하늘의 구름이 흘러내려 땅에 고이기 때문에 고리 형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리의 가운데 부분, 즉 뚫린 시야로는 먼 곳의 설산이 서있다. 반대쪽에서 출발했다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우연히 Grotli 쪽에서 출발하면서 해당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날씨가 흐려졌으나 그 신비로움은 감춰지지 않았다. 캠핑카를 가져온 사람들은 그곳에 머물렀고, 자전거를 가진 사람은 페달을 밟아 달려왔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며칠째 듣고 있는 유럽 top 20 라디오 만을 반복적으로 틀어둔 채 넋을 잃고 풍경을 감상했다.


  이렇게 메모장에 글을 쓰면서 추후에 이 글을 읽으며 258 내셔널 루트를 상상하는 게 사진보다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표현력의 한계만을 느낀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차를 한편에 주차해두고 안에서 과자를 먹으며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비가 멈출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 고개를 쉬이 넘고 싶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숲>을 쳐줘요."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레이코 씨가 부엌에서 고양이 모양의 저금통을 들고 오자, 나오코가 지갑에서 100엔짜리 동전을 꺼내어 거기에 넣었다.

 "뭡니까, 그건?" 하고 내가 물었다.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신청할 땐 여기에 100엔씩 넣게 되어 있어."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이 곡을 제일 좋아하니까, 특별히 그렇게 정했어. 마음을 담아 신청하는 거야."

 "그리고 그 돈이 내 담뱃값이 되는 거지."

 레이코 씨는 손가락을 잘 주물러 풀고는 <노르웨이의 숲>을 연주했다. 그녀가 치는 곡엔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럼에도 감정에 치우치는 적이 없었다. 나도 주머니에서 100엔짜리 동전을 꺼내어 저금통에 넣었다.

 "고마워." 하고 레이코 씨는 말하고 빙긋 웃었다.

 “이 곡을 들으면 난 가끔 무척 슬퍼질 때가 있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해” 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외롭고 춥고 그리고 어둡고, 아무도 도와주러 오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내가 신청하지 않으면 레이코 언니는 이 곡을 연주하지 않아”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비가 멈춘 뒤 내려가는 길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무지개가 떴다.

 끝까지 경이로운 풍경의 연속이었다.


 많은 시간을 길에서 소요한 탓에 어둠이 내리기 직전에야 Utvik의 Viking camping에 도착했다. 

 입구에 관리동이 있고 그 뒤의 언덕 경사면에 작은 오두막이 간격을 두고 여러 채 늘어서 있다. 

 바이킹 캠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통나무로 된 작은 숙소가 한 동씩 배정되는 곳이었다.

 나는 캠핑 장비가 없기 때문에 제공되는 동에 머물지만 아마도 이곳에 텐트를 치거나 캠핑카를 정박하는 구역도 있을 것이다.

 비를 맞은 탓인지 목이 잠겨서 조금 덥더라도 따뜻한 밤을 보내기 위해 히터부터 틀었다. 

 금세 포근하고 아늑했다. 

 문을 닫고 있으니 마치 숲 속 한가운데 지은 오두막에 있는 느낌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서둘러 재스민 쌀을 냄비에 담아 인덕션에 올렸다. 

 아침에 대용량 파스타를 먹고 출발했지만 이후로 종일 굶주렸다. 

 저녁은 쌀밥과 깻잎 통조림, 봉지라면이다. 

 라면과 냄비를 들고 문 밖으로 나와서 통나무 의자에 앉았다. 

 캠핑 중 식사는 이렇게 야외에서 먹어야 제맛인 법이다. 

 서늘한 공기에 라면에 밥을 말아서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면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였다. 


 캠핑장이기 때문에 화장실과 샤워장이 관리동 쪽에 별도로 있었다. 

 샤워장 문 옆에서 발을 먼저 씻고 샤워 부스로 들어갔는데 샤워 부스 안에서는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 

 부스 안에서는 특별한 코인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부스 밖에서는 따뜻한 물을 그냥 사용할 수 있는데 부스에서는 코인이 필요하다니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첫날 Lysefjord에서 처럼 찬물로 샤워를 할까 생각했으나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 부랴부랴 옷을 다시 입고 관리동에 갔다. 

 너무 늦은 시간 탓인지 아무도 없었다. 

 종일 경치를 즐긴다며 창문을 열거나 밖에 비를 맞으며 머문 탓에 몸에 한기가 맴돌고 있어서 정말 따뜻한 물이 간절했다. 

 급한 대로 냄비를 챙겨 왔다. 

 왔다 갔다 하면서 바가지 대용으로 뜨거운 물을 몸에 뿌리며 샤워를 했는데 그 물이 얼마나 귀하던지, 최소한의 물로 샤워를 해내고도 피로가 씻기고 몸이 가뿐했다.


 하루 여행이 크게 유별나거나 소란하지 않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있고 아침에 숙소를 떠나 또 다른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이동이 주된 여행이다. 

 혼자 자고, 혼자 차를 타고, 혼자 밥을 먹기 때문에 온종일 혼자 있다. 

 체크인/아웃때와 좁은 도로에서 서로 차를 비켜주며 건네는 인사 정도가 하루에 타인과의 유일한 접촉이다. 

 그런 접촉이 몹시 반가워서 나처럼 해맑게 인사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외로움이 수시로 다가오지만 세계여행을 하면서 선택한 자발적 외로움은 늘 곁에 있었다. 

 이 외로움 혹은 고독이라 부르는 것이 내게는 필요했다. 

 아무것도 강요되지 않은 자유 시간이 때론 막막하고,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정체모를 슬픔과 우울함이 수시로 찾아와 문을 두드리지만 괜찮다. 

 외롭고 싶어서 혼자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나밖에 없기 때문에 결정한 것이다. 

 어렵지만 나를 마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주해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직업이 이 질문에는 하위 개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동일한 선상에 있다면 앞으로도 노력하며 살 것이고 다른 방향이라면 전환을 위해 결심하고 도전하고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이 확실하다면 어느 것을 하고 하지 않아야 할지는 명확하고 쉬운 것이 될 것이다.


 이 답은 오직 내 안에서 나와야 했다. 

 타인의 가치관이 아니라 온전히 내 가치관에 맞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서울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 수 있었지만 어디에 있건 거대한 사회망 안에 얽혀있는 나와 이렇게 여행자인 나는 다르다. 

 서울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시간, 주말이나 휴일, 약속 없이 집에 들어온 저녁에도 나를 마주하고 이런 문답을 시도했으나 쉬이 되지 않았다. 

 막막하고, 실타래가 꼬이듯 많은 생각이 섞이고 꼬여있었다. 

 일을 하고 있고 달마다 들어오는 월급이 주는 안정성이 있어서 절박하기 쉽지 않았다. 

 절박하지 않으니 자신을 마주하는 것처럼 어렵고 괴로운 일도 쉽게 회피하게 됐다.

 일상의 폭이 한정되어 있어서 경험과 생각도 한정적이었다. 

 다양한 교육과 강의, 독서 활동에 달려들었지만 그마저도 한계가 있었고, 다양한 취미활동과 사람들과의 만남은 잠시 이런 복잡한 순간을 떠나게 해서 기분을 환기하는데 도움이 됐으나 근본적인 도움은 되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조금이나마 풀린 실타래는 금세 엉키거나 새로운 것에 뒤덮였다.

 잠깐 동안 모든 활동을 멈추고 쉬어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서울에서 쉰다면 끊임없이 현실의 파도에 흔들릴 것이 자명했다.


 세계여행을 하는 시간 동안에는 여행을 마칠 때까지 그 무엇에도 얽혀있지 않고 완벽하게 자유롭다. 

 누구든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선택과 결정, 시간, 과정과 결과에 대한 권한을 모두 자신이 갖고 있다. 

 그 권한으로 세계여행 이외에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다. 

 세계여행은 누가 이렇게 하라고 정해둔 게 아니어서 흰 도화지와 같다.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계획에 의해서 여행해도 좋고 즉흥적이어도 좋다.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럼 세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탐색하고 탐험하면 된다. 

 아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베트남과 태국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가 하고 싶었고함께 봉사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모두 서양 친구들이었다

 서구권에 청년들은 이렇게 특정 시간을 봉사하고 여행하며 경험하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이들 틈에 있는 것 자체가 내게는 도전이고 경험이고 기회였다. 

 경험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루에 보람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했고 친구들에게 몇 안 되는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며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알아갔다. 

 함께 여행하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나라는 사람의 세상은 내가 맺는 인간관계와 내가 겪은 것들, 내가 아는 것들로 구성된다고 생각하는데 그 세계가 이 여행 동안 계속 확장된다.


 외로움이 수시로 다가오지만 이 순간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나는 단단하고 외롭지 않다. 괜찮다.




 "아마도 우리는, 세상에 진 빚을 갚아야 했을 테니까." 하고 나오코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말이야. 우리가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렇게 되었고, 나는 이렇게 지금 여기 있는 거야. 우린 무인도에서 자란 벌거숭이 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따먹고, 외로워지면 서로를 품에 안고 잠들었던 거야. 하지만 그런 게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어? 우린 자꾸 자라났고, 사회 속으로 나가야 했어. 그러니까 자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거야. 자기는 우리 둘과 바깥세상을 이어주는 고리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어. 결국엔 잘 안 되었지만."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때부터 성장 통을 겪었어야 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진지하게 찾아보고 도전해봤어야 했다. 

 고등학교 때 잠깐씩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만 일단 수능이 끝나고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하기를 막막해서 미루고, 단순하게 생각했더니 수능이 끝나자 점수에 맞춰 전도유망하면서 다방면에 취업이 용이한 과를 결정했다. 

 직전까진 선생님이 되면 좋겠는 걸 이라고 생각했으면서 말이다. 

 담임선생님은 교육대학교 진학을 포기하라고 했고, 전도유망하고 취업이 용이한 과는 네이버가 알려줬다.


 이때도 일단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찾아보자고 안일했다. 

 1학년은 놀았고, 군대는 세상과의 단절이었고, 2학년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은 갔다. 

 하필 대학 과정의 2학년과 3학년은 전공의 중심이었고 한 학기에 세 번씩 시험 보는 과목이 많아서 거의 시험기간의 연속이었다. 

 차라리 시험기간이 마음 편하고 좋았다. 시험기간이니까 시험에만 몰두하면 됐다. 다른 생각은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원 없이 시험을 준비하고 나면 나에게 보상을 줬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에 대한 것임을 분명 알고 있었는데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쉬고 이런 시간을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없던 게 아니라 미룬 것이다. 접어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다시 시험기간이 찾아왔다. 방학도 왔다. 

 3학년이 되니 어느새 취업을 준비해야 되는 시간이 턱밑까지 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심 좋아하는 게 있으면 전과해야지 생각하다가 3학년이 끝났고 그 생각은 '일단 취업하고 그다음에 찾으면'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전의 반복이었다. 

 계속 치르지 못한 대가를 미뤄왔다. 

 포기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럼 포기라는 대가를 받아들이면 됐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늦게나마 성장통을 겪고 있다. 

 언젠가 꼭 치러야 했지만 단지 늦었을 뿐이다. 길게 본다면 다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모든 게 다 느렸다.

 여드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났고, 몸에 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났다.

 중학교 때 변성기는 오지 않아서 억지로 목소리를 굵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처럼 됐다.

 조금 느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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