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걷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출발한 야간 페리를 타고 이탈리아 바리 항구로 가고 있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는 좌석이 중요했겠지만 지금은 어떻게 하면 편히 잘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자세를 바꿔도 불편함에 금세 잠이 깬다.
자세마다 30분씩 쪽잠을 잘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거대한 피로에 눈이 쉴 틈 없이 감겨온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밑에서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 안에 있으면 왠지 그리운 감정에 휩싸인다.
수영을 잘 못하기 때문에 바닷속에 잠긴 발은 늘 사력을 다해 움직여야 하지만 바닷물에 뛰어드는 것에 겁은 없다.
수영 실력과 상관없이 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세계여행 중에 일어난 변화다.
이전까진 물이 좋다거나 그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필리핀은 섬으로 된 나라였고 바다가 늘 가까웠다.
물에 들어가는 것이 그 나라를 즐기는 방법이었기에 배를 타고 나가는 일이 잦았고 나의 세상은 육지에서 해상으로 넓어졌다.
바다는 움직이고 있지만 그 속은 고요하고 공기가 아닌 물에 둘러싸인 몸은 유영하며 자유로웠다.
이따금 뭍으로 나와 쉴 때면 동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누군가가 부르는 노래가 들려왔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늘어지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여행자가 되기로 한 선택이 며칠 만에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왔다는 것이 실감 나 황망하고 아찔했다.
결심을 해야 갈 수 있는 바다나 옷이 물에 젖을까 전전긍긍하는 일상은 여행자에게 없었다.
여행하는 동안 물은 어디에나 있었고 언제든 빠질 수 있었다.
모든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성벽에 붙은 바위 위에서 몇 차례 다이빙을 하면서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우리는 돌아가면서 묘기를 펼쳤다.
성벽 밑을 내려다보며 다이빙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연신 환호했다.
그들이 떠난 후에는 한국인들이 그 장소를 찾아왔다.
몇몇이 수영을 즐기는 동안 뭍에서 구경하던 여성이 혼자 여행하는 중이냐며 말을 건넸다.
세계여행 중이란 이야기에 그녀는 몹시 놀라며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호기심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은 맑았다.
대화하는 내내 내 결단과 혼자 세계를 여행하는 용기를 연신 놀라워했는데 그 표정과 말은 모두 진심이어서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실로 내게 큰 용기가 필요했기에 그 말들이 위로가 됐다.
여행 중 한국인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런 작은 만남에도 풀어질 내 마음 탓이었다.
여행 중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한국인은 스치는 인연에도 접점이 생긴 기분이 든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곳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잠시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수영을 마친 뒤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로 떨어지는 석양을 낙조 때까지 지켜봤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안 주황색 지붕들과 성벽 너머로 지는 해의 장관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다 담아내지 못한 채 그저 눈을 들었다.
수십 컷 사진에 이 장관을 담아보려 했지만 사진 속 아름다움이 내가 보고 느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없었다.
빨래를 널기 위해 창문을 연 이와 눈이 마주쳤을 땐 날것의 마음을 들킨듯해 멋쩍게 웃었다.
이들의 일상이 이방인인 내게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해가 넘어갈수록 세상은 다르게 물들고 그 변화에 따라 마음이 일렁였다.
한시도 눈을 떼고 싶지 않았다.
그 아름다움이 내 안에 박히지 않았다면 이 야밤의 불편함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페리 지정된 좌석에서 연신 몸을 뒤척이다가 깊은 잠을 자고 싶은 욕구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나는 몸을 일으켜서 누울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바닥에 누운 사람들 틈에 들어가 배낭을 베개 삼아 베고 누웠다.
이후로는 추위와 싸웠다.
바닥에서 전해지는 냉기와 졸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싸우는 동안 페리는 계속해서 바리로 가고 있다.
밤새 이동한 배는 아침 아홉 시 반 이탈리아 바리 항구에 도착했다.
도보 여행을 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왔다.
여행을 마치고 도보 여행을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왜 고생을 사서 했냐며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계여행 자체가 타인을 이해시키고 인정받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었기에 그저 웃어넘겼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헝가리에서 그리스까지 16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 했다.
좁은 4인실 칸에 각기 다른 여행 중인 4명의 청년이 모였고 밤이 될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위아래 4개의 침대를 간신히 펴고 잠든 밤엔 기차가 발칸반도 여러 국가의 국경을 넘었고, 그때마다 누군가 다가와 손전등을 흔들며 말을 걸면 화들짝 놀라 일어나 여권을 확인받고 다시 잠들었다.
그리스 여행을 마치고 크로아티아로 가는 길에는 지로카스에서 버스가 고장으로 멈춰 섰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봉고차에 16명이 빼곡히 앉아 티라나로 향하는데 서로 어깨에 기대어 잠든 채로 흔들거리는 봉고차에 앉아 있으니 흡사 피난민의 야반도주 같았다.
이전 여행에 비해 그리스에 다녀오는 여정은 힘들었고, 이때 얻은 것이 많았다.
여행을 지속하면서 여행의 이유와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는데 이 경험을 통해 내가 기대하던 세계여행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난과 모험, 도전을 자청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바리 항구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삼삼오오 사라졌다.
두브로브니크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어디로 가는지 묻자 ‘나는 거리가 예뻐서 걸으려 해’라고 했다.
그의 여행을 응원하고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배낭을 들쳐 메고서 도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거리가 예뻐서 걸으려 한다는 말이 맴돌았다.
도보 여행을 결심했을 때 바다 건너 이탈리아가 보였다.
이탈리아 서북쪽,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훌륭한 도보 여행 장소가 있었지만 고민 끝에 대상에서 제외했다.
오늘날 여전히 도전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당시에도 영화와 책, 예능 프로그램 등으로 홍보되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역설적이게도 도보여행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기에 제외했다.
때론 스스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으나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여행을 이어가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결심하고 난 후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이탈리아에도 순례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비아 프렌치제나(Via Francigena). 영국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영국까지 이 길을 따라 걷진 않겠지만 순례길이 있는 만큼 도보 여행을 하기 적합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 남쪽 아말피 해안에서부터 밀라노까지 4개의 구간을 나누어 도보 여행을 계획하고 크로아티아에서 아드라아 해를 건너왔다.
이탈리아 도보 여행의 출발지로 선정한 아말피 해안은 포지타노에서 시작되고, 포지타노는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에서 발목쯤에 해당한다.
시칠리아와 코센차 같은 곳이 남쪽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지만 첫 도보여행을 앞두고 극심한 남쪽을 시작점으로 삼기는 어려웠다.
낯선 국가, 낯선 도시를 두발로 여행한다는 것은 미지의 경험에 대한 두려움과 조금의 흥분을 낳았다.
포지타노에서 살레르노까지 42km 아말피 해안선을 따라 첫 도보 여행을 하며 하며 체력과 여행 방법을 시험한다.
도보 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 방법에 관심이 쏠려있는 탓인지 바리 항구에서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길도 도보여행의 일부로 느껴져 마음이 즐거웠다.
처음 발견한 이탈리아 국기에 기뻐하고, 별것 아닌 건물 양식과 지나가는 차, 피어난 꽃 한 송이에서도 이국적인 것을 발견했다.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와 관련된 것을 보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이 즐겁다.
서울 명동과 종로는 곳곳이 중국어와 일본어로 물들었고, 이제 서울 사람들은 명동에 가지 않는다.
한국인이 안 가는 곳에 외국인도 가지 않는다.
한때 명동역 6번 출구를 나와 밀리오레 앞으로 가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앞으로 떠밀려 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불과 10여 년 전 일이다.
명동뿐만이 아니라 도심의 상인들은 관광객을 잡기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를 남발했지만 여행자는 타국에서 이국적인 것을 찾기 마련이다.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금세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말피 해안으로 직행하는 버스가 없어서 나폴리행 티켓을 구매했다.
탑승한 버스 창밖으로 이탈리아 풍경을 보다가 버스에서 제공하는 Wifi를 통해 교통편만을 재확인 한 뒤 곧장 눈을 감았다.
창문으로 비추는 햇살은 따스했고 야간 이동으로 누적된 피로에 온몸이 나른했다.
바리는 크로아티아에 가까운 동쪽 해안(장화 모양의 이탈리아에서 발뒤꿈치 부근)에 있고 나폴리와 아말피 해안은 그 반대쪽에 있다.
버스로 꼬박 세 시간 걸렸다.
나폴리에서 곧장 기차로 갈아타고 소렌토까지 이동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아말피 해안으로 가고 있다.
새로운 지역에 도착할 때마다 탐방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지만 해가 저물기 전 아말피 해안에 도착하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다.
굽이굽이 가던 버스가 언덕을 넘는 동안 목적지를 지나치지 않기 위해 지도와 버스 창밖을 연신 번갈아 봤다.
버스가 내리막에 접어들었을 때 비로소 사진으로 본 아말피 해안이 보였다.
뱃일을 하고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눈에 잘 띄는 단색으로 외벽을 칠한 집들이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늘어서 있고, 색색의 집이 티레니아 해와 새하얀 모래사장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건물 외벽을 온통 흰색으로 칠한 지중해 푸른 바다의 그리스 산토리니와 달리 이탈리아의 낭만은 알록달록함에 있는 듯했다.
설레는 감정이 단숨에 치달아 마음을 채웠고, 발을 굴러 저 아름다움 속으로 빠지고 싶었다.
숙소를 찾기 위해 포지타노 메인 시가지에서 세정거장 전 언덕 상단에서 내렸다.
앞뒤 19kg의 배낭을 짊어지고 가파른 언덕 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쏠리는 몸을 지탱해야 하는 탓에 실제보다 경사가 더욱 가파르게 느껴졌다.
여차하면 배낭과 함께 넘어질 생각으로 몸을 뒤로 기울였다.
B&B, Hotel과 같은 숙박 간판이 있는 곳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서 빈방을 문의해보니 역시 숙박 어플에 표시되지 않는 방이 있었다.
세 번째로 방문했던 B&B가 가격과 경치 모두 훌륭했지만 마을을 구경할 겸 메인 시가지까지 내려가며 계속해서 숙박을 탐색했다.
해가 비추는 포지타노는 순백으로 빛나고 있었다.
배낭을 멘 어깨가 아프고 등에 잔뜩 땀이 배어 나왔지만 눈으로 보는 마을 전경이 천사들의 쉼터처럼 아름다워서 마음이 즐겁다.
해변과 인접한 시가지의 숙박 업소는 위치가 좋은 탓에 빈방이 없거나 터무니없이 비쌌다.
결국은 세 번째로 방문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체크인을 하고 가방을 내려놓자 내 몸안에서도 뭔가가 내려진 듯했다.
전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야간 페리를 타며 시작된 이동이 이제야 끝났다.
창문을 활짝 열고 폐 가득히 숨을 들이 마쉬며 포지타노 풍경을 바라봤다.
봄날 무더웠던 동남아에서 시작한 여행이 어느새 이탈리아에 이르러 또 하루를 감당하고 있는 내가 좋다.
세계여행은 여행이 연속되고 이 여행의 종점과 시간을 정해두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시간의 유한함을 매우 선명하게 느끼고 있다.
여행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더욱 그러했다.
여행의 유한함을 느낄 때면 내 삶 또한 유한하다는 것을 떠올렸고 결국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새로운 도시 새로운 나라의 정보를 탐색하며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지 결정하고 움직이는 동안 시간의 흐름은 선명하고 하루하루가 온전히 나에게 속해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무로 된 숙소 창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고 창가에 앉아서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석양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포지타노를 바라봤다.
잊고 있던 허기짐이 몰려왔을 땐 숙소 근처의 둔 파스타 가게에서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와 글라스 와인을 한잔 주문했다.
신선한 토마토와 상급의 올리브 오일, 바질 향이 입안에서 조화로웠다.
식사를 마친 뒤에 한잔의 와인에도 불콰해진 얼굴로 마트에 가서 도보 여행을 위한 생수 한 병과 수분이 가득한 복숭아와 자두를 샀다.
숙소로 돌아가는 언덕길에 참지 못하고 복숭아 하나를 베어 물었다.
달콤함에 웃음이 나왔다.
지도상으로 포지타노에서 19km 지점에 마을이 있다.
19km를 걸을 수 있다면 그 정도 간격으로 마을을 경유하며 살레르노까지 갈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모든 짐을 가방에서 뺐다.
등에 큰 여행용 배낭 15kg을 업고, 앞으로 보조 가방 4kg을 멘다.
여행용 배낭은 용량의 마법과 같아서 압축돼있던 짐이 끝없이 나왔다.
병에 든 화장품을 플라스틱 용기에 옮겨 담고, 그동안 잘 입지 않은 옷, 언젠가 입으려고 둔 옷, 없어도 되는 것을 선별했다.
기약 없이 나온 여행길에 나름 최선을 다해 챙긴 것이니 무엇하나 아깝지 않은 것은 없지만 그때의 최선이 지금은 욕심이다.
세계여행 중 이번이 세 번째 짐 정리다.
앞서 두 번을 덜어내고도 문제없이 여행하고 있고, 또 덜어낼 것이 있으니 얼마나 많은 욕심을 짊어지고 왔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깨끗한 바지와 반팔, 신발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책상 옆에 뒀다.
핸드폰과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까지 마치니 그제야 준비를 다 한듯해서 노트북을 들고 침대에 누웠지만 노트북을 펼친 채로 그대로 잠들었다.
일기를 적으려던 욕심이 잠자리까지 따라왔다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