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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보는 것으로 하는 것에 뒤지지 않으려면

시선이 변하는 것만으로도

 ‘색이 있을까. 색이 있다면 대체 무슨 색일까.’

 하늘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누군가는 어리석다 하겠지만 파란색으로만 생각하던 하늘이 실상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는걸 눈으로 보고 머리로 깨닫노라면 자연스러운 의문이다.

 하늘이란 색이 없는 도화지와 같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당장 글을 쓰면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심지어 희다.

 밤하늘은 또 어떤가 검다.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되면 밤하늘은 검게 낮은 파랗게 색칠했지만, 하늘을 흰 공간으로 내버려 둘 수 있다는 것을 다 크고 성인이 되어야 알았다.

 실은 광활한 공간을 색칠하기 귀찮아 둔 공간이었으나 다른 곳을 먼저 채우고 보니 그렇게 두어도 하늘 인 듯했다.

 그렇게 도화지와 같은 공간이어서 석양이 질 때 그 빛에 하늘이 물든다고 표현하나 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희다.

 희다는 것에 채도의 구분이 있다는 사실을 젖혀두더라도 늦은 밤에 쌓인 눈은 낮과 다름없이 희다.

 냉동실에서 얼린 얼음과 시냇물가의 고드름은 투명하고, 냉장고 어딘가에 서린 성에는 희다.

 물이 언 것과 대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은 것의 차이인가 생각해볼 따름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녹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쌓여 얼음이 되고, 그 얼음 덩어리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빙하라고 한다.

 저마다 설명이 미묘하게 다르지만 위와 같이 받아들였다.

 서울에 내린 눈이 자고 나면 녹아 사라져 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눈이 쌓이고 견뎌서 압축돼야 빙하가 되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빙하라는 단어 탓에 얼음을 먼저 연상했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본 빙하는 냉동실에서 꺼낸 얼음의 매끈한 표면과 달리 아주 단단한 눈에 가까웠고, 누군가 만들어둔 눈사람 몸뚱이가 다음날 쓰러진 채 햇볕에 녹고 있는 질감과 닮았다.

 물론 이 또한 얼음과 다름없겠지만 적어도 표면의 질감에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눈은 희고 눈을 뭉쳐 만든 덩어리와 두텁게 쌓인 눈 또한 희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눈이 쌓여 만들어진 빙하의 표면 또한 이런 이유 탓인지 대체로 희다.

 우리가 눈을 희게 보는 이유는 복잡한 눈의 결정이 빛을 투과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표면과 달리 깊숙한 곳의 눈은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이고 압착되면서 밀도 높은 얼음층을 형성하고, 다시 짜인 결정 구조속에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빛이 투과되어 블루 아이스라 불리는 맑고 아름다운 푸른빛을 띤다.

 냉동실의 얼음은 투명하지만 거대한 빙하는 푸른색을 띠는 것은 밀도와 빛이 투과하는 경로의 차이라고 하는데 크기 차이로 받아들였다.

 우리가 빙하처럼 거대한 얼음을 만들 수 있다면 그 또한 푸른빛을 띠는 걸까.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은 투명하다 여기지만 바다는 푸른 이유도 여기에 있으니 실상 물의 본질은 푸르고 컵에 담긴 소량의 물은 아주 옅게 푸르러서 투명한 것이 된다.

 이런 이치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지 물방울을 그리는 이들마다 단 한 방울이라도 푸르게 그린다.

 사람은 스스로 아는 것만큼 보고 나는 본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하고 설명했으니 구태여 과학적인 해석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답답하게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나는 보이는 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자면 빙하도 밖에 있는 탓에 때가 많이 탔다.

 목욕재계하고 돌아다니는 북극곰이 없는 것처럼 그런 티 없이 맑은 색을 가진 빙하는 코카콜라 CF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빙하에도 모양이 있어서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처럼 반듯함이 있는가 하면 기괴한 모양으로 제각각 갈라진 것들이 작은 등성이를 이루며 모여있기도 하다.

 빙하의 모양새가 독특하고 장엄하기까지 하여 유명한 것이 아이슬란드에 있는 스카프타펠 빙하가 되겠다.

 영화 <인터스텔라> 촬영지로 영화 이후에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수없이 많은 결대로 갈라진 빙하가 마치 물결치고 부서지는 파도와 같아서 바라보는 내내 장관이었고, 인류가 빙하시대에 접어들어 모든 것이 얼어붙으면 마치 이와 같을 것만 같아 두려움이 일었다.

 갈라진 틈마다 도사린 어둠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고 희고 검은 것들의 조화로 이뤄진 거대한 빙하지역은 삭막함과 숨 막히는 구석이 있어서 올라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두려움이 아니더라도 일행들은 빙하 하이킹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왠지 빙하를 올라간다는 것보다 빙하 지대를 넓은 시야로 눈에 담는 것이 경이로웠기 때문이다.

 대신 빙하 동굴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하는 여행의 태반이 눈으로 보는 것이다.

 봤다고 말하는 것과 무언가를 했다고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보는 것과 하는 것을 두고 어느 것이 더 낫다 말하긴 어려우나 하는 것이 아무래도 조금 더 적극성을 띄고 있다.

 보는 것으로 하는 것에 뒤지지 않으려면 단순히 일견 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히 더듬어 살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아이슬란드 편에서 말하는 핵심에 닿아있지만 이 본다는 행위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아서 가진 바 지식과 사고를 확장시키지 않으면 어느 정도의 선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빨주노초파남보 7개의 무지개색만을 아는 자와 그 외 158가지 색상표를 아는 이는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내뱉는 표현도 다른 법이다.

 아이슬란드 국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화산지대와 그 화산지대마다 빙하지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것과 가장 차가운 것이 공존하는 것을 보는 눈과 마음이 호기심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투어에 참여하는 여행자가 많은지 여행자 사무실 앞 넓은 주차장에는 차들이 빼곡했다.

 여태껏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본 여행자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이곳에 있는 듯했다.

 둘째 날 골든 서클이라 불리는 지역을 벗어난 이후론 줄곧 여행자들을 만나지 못했고 우리 넷이서만 여행을 연속해왔다.

 긴 시간과 많은 이동을 필요로 하는 링로드 여행보다 삼사일 이내의 짧은 여행을 계획한 이들이 많기 때문에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가깝고 코스가 알찬 남부 쪽에 사람들이 몰렸으리라 생각하니, 문득 수도와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실감돼 조금 마음이 울적해졌다.

 1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링로드 여행이 남부 쪽 구간만을 남기고 있다.


 결론적으로 투어는 경이로움을 바라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그런 순간이 여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경험이 귀하고 값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빙하 동굴은 한 사람씩 줄지어 서야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고 길이가 짧아서 상상하던 빙하 동굴의 체험판 같았다.

 투어를 신청할 때 사진에서 본 거대하고 아름다운 빙하 동굴은 안전상의 이유로 진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긴 겨울의 강추위속에 충분히 견고해져야만 진입이 허락된다고 한다.

 그래도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며 빙하 위를 걸어보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빙하 동굴을 통과하며 얼음으로 된 벽을 세심히 더듬어 기억했다.

 개인적으론 신발과 헬멧 등 장비를 착용하고 다큐멘터리에서 볼법한 멋진 오지 탐험용 차에 탑승한 채 탐험대원의 기분을 만끽하던 때와 동굴로 가기 위해 짧은 빙하 트레킹을 하는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빙하지대를 올려다보던 순간이 좋았다.


 보는 것이 대단한 경지에 이르면 어쭙잖은 경험쯤은 당장에 뛰어넘을 것이다.

 그럼 어떤 것을 한다는 행위도 저마다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여행도 그 방법을 고민하면서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기간 같은 지역을 여행하더라도 저마다 여행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다른 것처럼 저마다 다른 가치를 지니는 탓에 어느 것이 더 낫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개인의 여행이 편차를 가질 순 있는 것이다.


 빙하 체험을 마치고 곧장 몸을 움직여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트레킹을 다녀왔는데 왕관 형태의 주상 절리를 양쪽 벽에 두르고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해가 뉘어가는지 세상이 노랗게 물들었다.

 우리는 해가 지는 곳을 바라보며 한동안 서있었다.

 우리가 선 땅에서 국립공원을 등지고 바라보는 동쪽 남쪽 서쪽은 그저 평평한 땅으로 지평선이 아주 멀리까지 뻗어있고 그 끝이 분명하지 않을 정도로 멀어서 분명히 바다에 닿았을 것임에도 지평선과 수평선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저 하늘이 이렇게 넓고 높은 것이었음에 감탄했다.

 그때 햇볕이 아롱지는 그곳에 서서 각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차에 탈 때까지 우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는 국토의 10% 이상이 빙하로 덮여있다.

 바트나요쿨, 랭요쿨, 호프스요쿨, 미르달스요쿨, 외라이파요쿨 등 빙하 지대마다 붙은 이름조차 셀 수 없다.

 특히 아이슬란드 남동부 지역에 있는 빙하 바트나요쿨(Vatnajökull)은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로서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빙하설마다 이름이 따로 붙일 지경이다.

 이 바트나요쿨의 남단에 형성된 빙하호가 요쿨살론이다.


 빙하의 조각들이 떠있는 빙하호 요쿨살론에서 바다로 흘러가던 조각들은 다시 바닷물에 밀려와 검은 모래 해변 위에 흩뿌려지고, 바닷물에 씻기고 닦인 빙하 조각은 그 표면이 매끄럽고 순수한 얼음의 결정체와 같아서 검은 모래 위에서 세공한 보석처럼 빛난다.

 이곳이 다이아몬드 비치다.

 서쪽으로 많이 기운 해는 어둠과 함께 세상을 조금 더 짙은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그 탓인지 검은 모래는 더욱 짙어지고 그 위에 흩뿌려진 빙하의 조각들은 새하얗게 빛났다.


 빙하의 조각은 몸집만 한 것부터 성인 머리 크기 정도까지 다양했지만 개중엔 딛고 올라갈 수 없을 만큼 큰 조각도 있었다.

 이 조각들은 요쿨살론과 바다가 이어진 부분에 몰려있지만 바다로 떠내려갔다가 다시 밀려오는 통해 좌우 시야가 닿는 해변 전역에 고루 뿌려졌다.

 해가 기어이 바다에 맞닿으면서 풍경은 더욱 비현실적이 됐다.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해변에서 걷다 보면 도착하는 요쿨살론은 블루 아이스 색으로 시리게 빛나고 있었고, 전날 밤 오로라를 기다리며 본 어둠 속의 모습과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보고 또 봐도 질림이 없었다.

 빙하의 거대한 조각들 뿐만 아니라 그 조각이 떨어져 나온 빙하지대를 뒤편에 두고 있기 때문에 신비롭고 아름다움이 황망할 지경이어서 해야 지지 마라 소원하며 끝없이 눈에 담았다.

 그간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여행이 묘미라고 생각했지만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눈으로 담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여도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소유의 욕구가 어느 것으로도 품어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을 때 해는 졌다.


 이때까지도 우린 숙소를 정하지 않고 있었다.

 어제 숙소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꼬박 하루를 이 인근을 맴돈 샘이지만 이 아름다움을 이런 짧은 순간 일견 하는 것으로 지나치긴 아쉬웠다.

 맏형은 이곳에 더 머물며 한번 더 요쿨살론과 해변을 보고 드론도 날리고 싶다고 했지만 이내 한 발짝 물러섰고, 막내는 늘 그렇듯 일정을 맡기고 어느 쪽이든 저렴한 곳이면 좋다고 했고, 둘째는 빨리 결정하길 원했다.

 나는 잠시 고민 끝에 이곳 근처에 숙소를 잡고 한번 더 요쿨살론과 다이아몬드 비치를 보고 이동하자고 했다.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을 나와서 링로드를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던 차가 요쿨살론으로 가기 위해 뒷걸음칠 때 세상이 파스텔톤의 무지개 빛깔로 물들었다.

 조금 전까지 서쪽으로 지는 해가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것을 바라보다 돌아선 길이건만 마치 누군가 세상이란 스케치북의 장을 넘겨 새로운 페이지에 새 그림을 그린 듯했다.

 무지개 일곱 빛깔은 선명하고 원색적이지만 이것은 분홍빛부터 옅은 하늘색까지 색의 경계가 없이 모호하고 허공에 부유하는 무언가처럼 낭만이 가득했다.

 빛이 반사되는 탓인지 설산도 하늘과 같이 물들어 그 역시 흰 도화지인 듯했다.

 언제나 제자리에 서있는 사물과 내일도 변함없을 지형과 달리 이 풍경은 이 순간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자의 시야는 전체를 담을 수밖에 없는 탓에 다급히 운전대에서 한 손을 떼고 막내에게 폰을 건네며 영상을 부탁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하는 동안 해의 이동에 따라 하늘은 또 다른 색을 그리고 있었다.




 여전히 경이로운 다이아몬드 해변에서 맏형은 드론을 띄워 올렸다.

 프로펠러가 회전하는 소리에 사람들은 고개를 위로 올렸고 나는 드론이 송출하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드론을 따라 시선은 올라가고 이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됐는데 시선이 변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 사실이 매우 놀랍고 감명 깊었다.

 땅에서 수평으로 봐야 했던 지형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되자 내내 눈을 사로잡던 빙하의 조각들에서 벗어나 전체의 아름다움을 머리에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검은 모래와 청록색의 바다는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의 흰 포말로 인해 극명히 구분되고 있었고, 바다와 육지는 생각보다 더 먼 곳까지 그 영역을 갖고 있었으며, 육지의 먼 곳에서 피오르드와 빙하, 크고 작은 산들이 우두커니 선채로 이곳을 둘러싸고 있었다.


 높은 상공에서 360도 회전하며 주변을 둘러본 드론은 요쿨살론 상공에서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내려다본 호수는 그 자체로 다큐 영상에서 보던 북극과 같았다.

 큰 빙하 조각들로 인해 볼 수 없던 풍경을 위치의 제약에서 벗어나 가려진 것뿐만 아니라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자랑스러울 지경이었다.

 저마다 흩어져서 사진을 찍고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맏형은 드론을 착륙시키고서 비탈에 앉아 그 빙하 조각들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회픈(Höfn)을 떠나 비크이뮈르달(이하 비크)까지 가는 동안 남부의 지형들은 대부분 평지로 시야가 트여 있어서 눈이 편안했다.

 지명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누군가 차를 멈추고 싶어 하면 언제든 차를 멈춰 세우고 바닥에 앉거나, 앞으로 걷거나, 풍경을 보고 서있기 일 수였다.

 한 번은 다리 위에 차를 세우고 비탈길을 내려가 강가를 거닐었다.

 남부에 흐르는 강물은 빙하로부터 흘러오는지 그 색이 시리게 푸르렀고 파랑과 흰색, 남색, 보라색이 뒤섞여 오묘했다.

 우두커니 서서 강물을 보는 동안 마음이 평화로웠다.


 굉장히 안정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끝이 다가옴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이 다가오면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더 많이 인내하고 또 포기할 수 있게 된다.

 이전까지도 배려가 넘치는 여행이었으나 이제는 포기와 이해, 수용 등으로 마음이 넉넉해서 배려라는 노력조차 필요하지 않은 듯했다.

 마지막이란 그런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움켜쥐고 또 움켜쥐려 하는 많은 것들도 죽음이나 그와 같은 마침표를 앞에 두고서야 진정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누구나 죽는다는 것처럼 분명한 것은 없다.

 무엇보다 분명한 이 진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하루의 삶 중 가장 배척되어 있다.

 죽는다는 것과 그 순간은 예고 없이 닥쳐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이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고 멀게만 느껴지는 탓이다.  

 아무튼 우리는 마지막의 그 너그러움과 애틋함으로 좋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비크에는 검은 모래 해변과 주상절리 절벽이 있었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주상절리 육각기둥 위에 앉고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 명물보다 광활한 검은 모래 해변과 바다 풍경에 눈길이 갔다.

 큰 파도가 거칠게 밀려와 굉음을 내며 부서졌다.

 내 생애 가장 역동적인 바다였다.

 나는 바다를 향해 고함을 질렀지만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저마다 탐방을 마치고 곁으로 온 일행들도 그런 파도를 보며 소리 질렀지만 바로 옆사람의 외침 소리조차 아득히 멀게 들리다가 이내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파도에 휩쓸리면 당장 해변 위에서 사라져 바다로 끌려갈 것만 같았기에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 몸이나 발을 담글 엄두를 내지 않았다.

 부서진 파도가 모래사장의 깊숙한 곳까지 밀어 올리는 포말에 발을 가져다 대는 여행자들은 더러 있었다.

 이 검은 모래가 있는 해변(실은 자갈이 대부분인 해변)은 레이니스피아라(reynisfjara)라고 했다.


 어떤 걱정이나 마음의 티끌도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에선 부질없는 일이었다.

 정말 여기까지 와서 저 파도에 마음의 티끌을 털어버리지 못한 이가 있다면 참으로 한심하다.

 개운함으로 비워진 마음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해 지는 바다는 불 지핀 장작처럼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서 하염없이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렸다.

 파도가 부서지지 않는 틈 사이로 여행자들의 웃음소리와 비명이 뒤섞여 들리는 듯했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들판에 우리만 사용하는 작은 독채 오두막이 있었다.

 레이캬비크를 떠난 첫날 게르시 근처의 오두막에서 여행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보내던 날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인지 곧장 짐을 풀어두면서 부터 우리는 몹시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고 노래했다.

 여행이 링로드처럼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시작점에 선듯한 기분이 들었다.

 술이 돌고 꽤 긴 여행 동안 각자의 이야기를 꺼낸 만큼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었는데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산 사람들이 이십 대 초반의 막내에게 하는 말이 참 많았다.

 형들이 하는 말들이 무슨 말인지 왜 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나까지 말을 얹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 역시 삶을 고민하고 발버둥 치는 동안 이따금 내 이야기를 할 곳은 필요했지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럴싸하고 멋진 말들도 결국 그들의 의견이지 내 내면의 목소리는 아니었기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에게 또 다음 사람에게 넘어갔는데 그 무렵엔 얼큰하게 취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 속에서 나는 하나의 말을 정말 분명하게 듣고 기억했다.

 '똑같이 살 거면 왜 사냐 이씨'


 그날따라 취한 맏형이 한 말이다.

 모두 크게 웃었다.

 해변에 부서지던 집채만 한 파도처럼 왠지 시원한 말이었다.

 누군가들의 삶에 던지는 말이 아니면서도 누군가의 저항을 받을 만한 말이기에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이 아닌가.

 어쩌면 나 자신을 부정하는 말이어서 하지 못한 말 아닌가.

 내가 만든 틀, 내 주변이 만든 틀, 사회가 만든 틀, 나라와 국민의 틀, 이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둔 틈 속에서 끝없이 발버둥 치는 청춘 넷이 만나서 삶으로써 이런 말을 던지고 있으니 유쾌할 따름이었다.


 한국을 떠나고 관계와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후에야 나에게 온전히 시선을 둘 수 있었다.

 특히 태국 봉사를 마치고 유럽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눈을 떠서 다시 잠드는 순간까지 나에게 묻고 스스로 답하며 나를 벗 삼아 여행했다.

 세상의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긴 했으나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늘 시선이 나를 중심으로 온전했다.

 그런 시간 속에 놓아준 것과 자연히 소멸된 것이 많았다.

 내 안에 많은 것이 비워진 뒤에는 새로운 것이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여행은 삶과 닮아있어서 늘 방법을 궁리하고 도전하고 탐험해야 했고, 그런 여행 과정의 고됨과 낭만 속에서 나를 더 알게 됐다.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동행을 하고 이들의 삶과 고민을 듣게 되면서 오랜만에 시선이 나에게서 타인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고, 이내 타인에게 향한 시선을 통해 나를 보게 됐다.

 앞으로 길을 걷던 사내가 드넓은 광야에서 어느 순간 방향을 잃어버린 것처럼 나에게만 시선을 둔 시간 동안 방향과 내가 선 위치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일행들과 부대껴 다니면서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과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통해 지금의 나를 알게 된다.

 지금의 나와 나의 과거를 되짚고,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되짚고, 비교 아닌 비교 속에 내가 서있는 자리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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