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갈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우리가 처음 담을 넘어 걷기 시작했을 때는 앞으로 걷기만 하면 됐다.
한참을 걸어 뒤를 돌아봤을 때 차는 아주 작아져있었고 사방이 지평선으로 광활했다.
이젠 방향을 잡기 어려워서 핸드폰으로 목적지를 살피며 걸어야 했다.
지평선 위로 새파란 하늘은 유독 높고 넓었고 구름 하나 없었다.
계속해서 검은흙과 자갈로 이뤄진 땅을 밟으며 걸었고 3km 즘 위치에서 낮은 구릉을 만났다.
그 구릉 너머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개울이라 칭해도 될만했으나 단숨에 뛰어넘을 만큼 그 폭이 좁진 않았다.
폭이 더 좁아지는 구간이나 징검다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개울을 따라 하류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누구도 말이 없었다.
상류로 간다는 것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탓이다.
차로 내달린다면 반나절 안에 레이캬비크에 갈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여행도 딱 그만큼 남았다.
남은 경로 위에도 다양한 관광 명소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간에 본 풍경을 넘어설 만큼 기대되는 것은 없었다.
누군가의 욕심도 없었다.
다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끝이라는 아쉬움만을 붙잡고 있다.
전날 큰형이 외쳤던 외침이 마음 어딘가에 걸려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전날 오로라 아래서 모두가 취해가던 밤에 막내가 말하길 남부 어딘가에 불시착한 전투기가 있다고 했다.
책 어린 왕자의 불시착처럼.
책 속의 비행기는 뜨거운 사막으로 불시착했고 아이슬란드의 비행기는 얼음의 지평선으로 불시착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이 여행의 끝자락에서 일행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든 좋았다.
어느 곳이든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불시착한 비행기는 하나의 관광지처럼 위치가 표시되어있고 그에 관련된 정보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찾은 정보를 애써 깊게 탐독하진 않았다
비크를 떠나서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길목 어딘가에 있다는 구글 지도만을 보고 차를 멈춰 세웠다.
철조망 너머 광활한 대지 어딘가를 가리키는 지도를 보며 우리는 헛웃음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이견 없이 그곳을 가로질러 일직선으로 걷기로 했다.
어떤 여행자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부터 우리 넷이 그 대지를 가로지르며 남쪽으로 향했다.
차가 아주 작게 보일 때쯤엔 동서남북 시선을 어느 곳에 두어도 지평선이었고 불시착한 비행기 라거나 엉뚱한 방향에서부터 걷기 시작한다는 이 특이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곳엔 파란 하늘과 평평한 땅 위를 걷는 우리만 있었다.
누군가가 남긴 사진에도 그러했다.
사진 속에 대부분은 하늘이었고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땅이었다.
강을 따라 하류로 걸어가다가 끝내 아이슬란드 남부 해안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흐름을 발견하고서 우리는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일행들이 구릉 위에 서서 망설이는 동안 비탈을 내려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었다.
물은 무릎에서 허벅지 정도의 깊이였으나 바닥에 큰 바위를 밟으면 그보다 얕았다.
겨울의 아이슬란드 강물은 얼음이나 빙하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몹시 차가웠다.
강을 건넌 직후 땅에 앉아 시린 발을 움켜쥐고 실없이 웃었다.
땅바닥에 닿은 엉덩이도 이내 시려웠다.
일행들도 하나 둘 양말을 벗고 강으로 발을 디뎠다.
막내는 그 차가움에 비명을 지르며 뛰었고 둘째는 조심스럽게 건너와 별것 아니었다며 흡족해했다.
그 모든 것이 즐거워 웃었다.
행운과도 같은 순간들은 의도치 않은 엉뚱함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맏형은 강을 건너지 않았다.
그간 나누던 대화를 통해 그가 나름대로 여행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선 다녀오겠단 인사를 전하고 셋이서 다시 길을 나섰다.
가는 동안 또 한 번 강을 만났지만 이번에는 셋다 망설임 없이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 또 다른 구릉을 넘어갔을 때 우리는 불시착한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황량한 대지에 불시착한 조종사의 마음으로 비행기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가 몸을 돌렸다.
다시 돌아오는 길엔 강의 상류 부분에서 폭이 좁은 구간을 발견하고 그대로 뛰어넘었다.
발끝이 간신히 건너편 돌 위에 닿았다.
내가 건너편에서 만세를 부르는 동안 막내도 망설임 끝에 제자리 뛰어 안착했다.
얼싸안고 비명을 지르는 그때 올려다본 하늘은 몹시 푸르렀고 여행 중 또 다른 즐거움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정해두지 않은 길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기분, 모험이었다.
불시착한 비행기는 나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았지만 그 여정은 어느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에 가까웠다.
지도에서 비행기 위치를 볼 수 있던 것과 달리 주차해둔 차량의 위치는 지도에서 알 수 없었다.
지평선에서 그저 비행기의 반대방향으로만 향했다.
어느 지점에 맏형이 서있었다.
그 끝도 없는 지평선만을 동서남북으로 둘러보며 그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시 넷이 됐을 때 안정감을 느꼈다.
'스코가 포스(폭포)'가 우리가 방문한 마지막 관광 명소였다.
여행하는 동안 찾아간 수많은 폭포들은 모두 상단부에 서서 강이 흘러와 낙하하는 장면을 내려다봤는데 스코가 포스는 6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아래에서 봤다.
단절된 지반 위에서 물줄기는 60미터의 높이만큼 낙하하여 강하게 수면을 때렸고 사방으로 물방울을 흩날렸다.
폭포의 주변은 모두 폭포의 파편들로 얼어붙었다.
폭포 뒤로 지나갈 수 있다는 '셀야란즈 포스'도 위와 같은 현상으로 사방이 얼었고 안전을 위해 출입이 금지됐다.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대게 눈으로 뒤덮이거나 얼어있다.
폭포의 양옆으로 동산이 폭포를 감싸고 있는 형태의 아름다움은 겨울이 지나 신록이 푸를 때 만끽할 수 있을 듯했다.
그때가 되면 무지개가 걸린 스코가 포스의 모습이 전체와 어우러져 아름다울 것이다.
구름이 해를 가리지 않으면 대게 폭포 주변으로 무지개가 뜬다.
폭포의 상단부로 향하는 계단길에 나와 둘째, 막내만이 발을 디뎠다.
그곳에서 다시 기대하던 아이슬란드를 만났다.
여행자마다 어떤 장소에서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나의 기대는 거대한 자연 앞에 작아지는 것이다.
강물은 아주 먼 곳에서부터 거칠게 흘러와서 단절된 지반에서 속절없이 낙하해야 한다.
폭 25미터의 강물에도 끝이 다가오는 곳엔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힘이 존재했다.
아래에서 전경을 볼 때 작은 동산이라 여겼던 폭포의 양 옆은 위에서 하나의 대지임을 알게 된다.
거대함에 대한 자각은 나 역시 자연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나약한 존재임을 알게 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이를 숭고함이란 단어로 설명했으나 나는 끝내 적합한 단어나 표현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작은 존재로써 강가의 바위 끝에 걸터앉았다.
이제 남은 길 위에 우리가 가보기로 한 장소는 더 이상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틀어둔 채 핸들을 틀어 액셀을 밟았다.
집을 떠나온 것은 제각각으로 오래됐는데도 아주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연달아하면서 쌓인 피로 탓인지 아니면 보이는 풍경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던 것이 더 이상 무용한 탓인지 하나 둘 잠에 들었다.
운전하는 동안 고요함 속에 선명한 노래를 들으며 고요한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바라봤다.
많은 생각이 떠오를 듯하면서도 실상 아무 상념 없었고, 그저 시선을 앞에 둔 채 무의식적으로 액셀을 밟았다 떼었다를 반복했다.
날은 점차 흐려지더니 이내 사위가 어두워졌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링로드를 따라 수도와 멀어질 때는 손에 땀을 쥐게 하던 길 위의 폭설도 수도로 향하는 중에는 두려움이 되지 못했다.
수많은 차들과 함께 느린 속도로 산을 넘고 그들의 존재를 길동무 삼아 전진할 뿐이었다.
거주자의 퇴근길과 여행자들의 복귀가 아이슬란드 나름의 러시아워를 만드는 듯했다.
여행자에게 정체는 조급하지 않았고 여행의 끝이 아쉬운 만큼 목적지에 더디게 가는 것이 좋았다.
하루라는 시간의 끝자락이 남더라도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끝날 듯했다.
도착한 레이캬비크에서 각자 한 시간 정도의 개인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숙소에 짐을 풀고 곧장 밖으로 나와서 제각각 흩어진 동안 나는 중심가를 잠시 거닐다가 눈에 띄는 오래된 펍으로 들어가서 기네스 흑맥주를 시키고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여행일기에 첫 문장을 완성하기도 전에 첫날부터 여태까지 모든 기억이 물밀듯 밀려와 잠시 자판에서 손을 뗀 체 기억의 행복감을 느꼈다.
이내 쉴 틈 없이 자판을 두드려 모든 것을 낯낯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유한하지만 방대한 자연뿐만 아니라 여행이라는 무형의 경험까지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한 욕구는 여행의 만족과 끝의 아쉬움만큼, 기억의 잊힘이 두려운 만큼 강렬했다.
사실의 기록은 어렵지 않으나 감정은 쉬이 휘발되고 언어로써 표현이 어려워서 손가락을 멈춘 채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림과 사진, 영상으로 끄트머리라도 붙잡을 수 있던 풍경과 달리 감정은 오직 글로만 붙잡을 수 있는 듯했다.
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어느 것에나 자신의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데 내 어쭙잖은 실력으로 나마 할 수 있는 것은 글이 유일했다.
같은 곳에 가서도 다른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느끼는 탓에 나만의 시야를 담은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지만 그 순간에 떠올라 지나가는 감정은 그때가 아니면 잡을 수 없었고 언어로 내뱉거나 기록하지 않으면 흩어져버릴 뿐이었다.
덜어내 지지 않는 욕심을 굳이 밀어내지 않고 일행들을 다시 만날 때까지 기록을 반복했다.
북유럽의 바닷가 도시들은 피시 앤 칩스가 명물인 듯했다.
제법 잘 튀긴 대구살에 맥주를 곁들여서 우린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대부분의 가게가 일찍 닫는 탓에 소박한 주전부리를 사서 집으로 들어왔고, 작은 테이블에 한대 모여 그간의 사진과 영상을 구경하고 피곤에 절어 넋두리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다가 하나 둘 잠들었다.
우리가 링로드 위에서 보낸 그 많은 날들보다 마지막은 다소 심심하고 여물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의 부름에 눈을 떠보니 공항에 갈 준비를 마친 형들이 서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서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섰다.
나는 아직 이곳에 남아 여행을 끝내지 못했음에도 그들의 떠남이 마치 내 여행을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
공항 입구에서 포옹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동안 맏형은 '네 덕분에 낭만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고맙다.'라고 했다.
막내와 차를 반납하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남은 핫도그와 음료수로 늦은 아침을 해결했다.
날씨는 맑았고 햇볕이 몹시 따사로웠다.
각자 다음 여행지 숙소를 알아보는 동안 몸이 늘어졌다.
나는 런던으로 막내는 파리로 여행을 이어간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비슷하기에 걷기로 했다.
막내의 캐리어 손잡이가 부러져서 줄을 감아서 힘들게 걷는 동안 낄낄대며 웃던 것이 우리 여행의 마지막이었다.
터미널에서 마지막 일행과도 작별하며 여행은 마무리됐다.
막내와 헤어지고서 비로소 혼자가 됐다.
공항에서 이른 시간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을 떠난 이후 줄곳 혼자 여행해왔지만 동행을 하다가 다시 혼자가 되니 외로움을 느낀다.
연착으로 인해 지연된 비행기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꽤 늦은 시간이었고, 진땀을 흘리며 입국 심사장을 통과하고 나니 그제야 런던 시내로 돌아갈 방법이 막막하다는 걸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탑승한 야간 버스로 전역을 뱅뱅 돌아 도착한 숙소는 런던 남쪽 외진 곳의 작고 허름한 민박이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력 없이 곧장 옷만 벗고서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런던에서의 하루가 시작됐다.
도시의 분주함과 현란함 속에서 나는 그동안 눈이 편안한 나라, 자극이 없는 세상에서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곳의 땅은 대체로 화산재와 자갈, 모래, 눈, 돌 등으로 검거나 회색 또는 흰색이었고, 드넓은 하늘과 바다, 호수, 빙하 등은 푸르거나 그마저도 눈으로 덮여 희거나 밝았다.
무채색으로 이뤄진 세상은 도화지와 같아서 해가 뜨고 질 때마다 온통 노랗게 붉게 푸르게 물들었다.
피오르드와 중심부의 산을 제외하면 대부분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어서 평지에 가깝고 땅 위에 건물이 없거나 층이 낮기 때문에 늘 하늘이 높고 넓었다.
그 많은 여백의 공간에 소리마저 웅성임이 없어서 적막했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과 높은 건물, 수많은 차 옆을 지나가야 하는 도시 여행과 다르게 그 속성이 유일한 땅이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이 세계여행에 대한 첫 동경이었고 인식이었다.
그때 내가 대단하게 생각했던 것이 80일이란 시간 안에 일주한 것이었는지, 그가 세계를 일주한 것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둘 모두였을 것이다.
한국을 벗어나 보지 않은 나에게 세계는 굉장히 추상적인 것이었기에 80일 동안 세계일주에 의구심은 일말 없었다.
오히려 세계여행을 하는데 80일이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마음에 기준이 세워졌다.
비행기란 운송수단이 대중화되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지구촌이란 말이 등장했지만 그때는 전 세계를 묶어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가 없었고, 다른 나라나 그 나라 사람들이란 그저 멀고 허구적인 존재였다.
이제는 아이슬란드라는 한 국가를 11일간 여행하는 것조차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시간을 겨뤘던 80일의 여행자도 세계를 여행하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여행이 아닌 일주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물론 일주라는 말에 여행이 포함되지 않으면 비행기로 세계를 한 바퀴 도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그곳을 11일간 여행했고 그것만큼만 안다.
한정된 시간에 높은 밀도를 갖기 위해 데생의 깊은 시선을 가지려 노력했고 동행을 택했다.
보는 것 다음은 안다는 것이다.
여행의 대부분은 보는 것으로 이뤄지고 보는 것의 끝이 아는 것에 닿아 있기에 보는 것에도 방법이 중요하다.
데생의 깊은 시선은 느리고 깊은 호흡과 같다.
사물의 형태와 색상, 질감, 빛의 방향과 음영진 부분 등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 위해 들여다본다.
아주 작은 틈과 주름진 어느 일부분 까지도.
일견 하여 전체의 인상을 간직하는 것도 보는 것의 일부이지만 데생의 시선은 더 많은 것을 의식하고 이해하여 끝내 알게 한다.
아는 것은 소유에 조금 더 가깝다.
유형의 것은 깊은 시선으로 그 끝 일부를 붙잡을 수 있는 반면, 무형의 요소는 오감에 마음까지 더해야 간신히 다가선다.
여행에 일행이 있다면 일행조차 여행의 일부이기에 더욱 그렇다.
알게 되는 것은 기쁘고 한편으로 무섭다.
때론 내 삶을 타인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고 반면 몰랐으면 하는 것이 있다.
안다는 것은 그렇게 선별적으로 되지 않는다.
이미 알게 된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이 끝날 때쯤 나는 함께 하는 이들과 이 땅에 대해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