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훈 Oct 30. 2022

낭만의 파고를 타는 방법

그저 순간에 머문다

 밤사이 내린 눈이 상당한 탓인지 마을은 여전히 눈으로 덮여있었고 그 두께는 당장 뛰어들어도 아픔 없이 묻힐 듯했다.

 마음은 몹시 평화로웠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떠난 날로부터 7일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가 트이고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날것에 노출됐을 때 튀어나오는 투박한 감정선은 이제 없다.

 '대체 이곳은 뭔가' 싶었던 감정들도 '이곳은 이런 곳이지'라는 인식으로 스며든다.

 사람도 그렇다.

 낯설게 느껴지는 누군가의 말, 행동, 생각도 한 달 두 달이 지나 이 사람은 원래 이렇다는 것이 마음에 자리하게 되면 무덤덤해졌다.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 다는 것은 익숙해짐과 연속선상에 있나 보다.

 계속해서 더 날것으로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받고 싶기에 이 여행 동안 아이슬란드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혹은 익숙해지지 않도록 새롭고 감탄과 경이를 불러오는 것이 이 땅에 있길 바란다.


 93번 국도를 따라 곧장 산을 오르며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폭설로 인해 넘어가지 못했던 산길은 밤사이 제설 작업으로 차가 지나갈 도로만을 겨우 드러냈다.

 전날 강행하여 이 산으로 올라왔다면 오르막과 내리막의 비탈에서 공포와 싸워야 했을 것이다.

 차가 계속해서 고지대를 향해 올라가는 동안 왼쪽 차창 밖으로 눈 덮인 대지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끝없는 대지가 내려다 보였다.

 일 년 내 추운 나라, 눈과 얼음의 나라에 부는 삭풍은 매서웠을 것이고 화산재와 바위로 된 땅은 척박했을 것이나 기어이 그곳에 뿌리를 내린 상록의 나무들이 한대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룬 채 눈을 덮고 서있다.

 7월 한낮 15도에 육박하는 선선한 여름 날씨를 틈타 자라나 이 겨울을 버티는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 동부의 모습은 어떤 대 서사시가 시작될 것처럼 드넓고 투박하지만 저 나무들처럼 단단하다.


 일행들은 여행 중에 계속 언급하고 있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이하 월터 미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가는 곳이 영화의 배경 장소라고 했고, 산을 넘어 내려가는 길조차 그 영화의 일부라고 했다.

 나만이 그때까지도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그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무엇 하나라도 우리와 연관이 있는 장소가 반가웠고 일행들의 즐거움이 내게 기꺼웠다.

 가파른 내리막 굽이치는 도로 한편에 차를 세운 둘째는 영화의 스케이트 보드 타는 장면이 아마 이곳일 거란 말을 했다.

 나는 달음박질 한 추진력으로 비탈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눈과 얕은 서리 혹은 얼음으로 덮인 길에서 몸은 유연하게 미끄러졌다.

 일행들도 저마다 보드가 없이 미끄러지다가 다 함께 그런 비탈에 서서 저 밑을 내려다봤다.

 사방이 눈으로 덮인 지형은 협곡을 이루고 도로는 굽이굽이 밑을 향하고 있었다.

 시선의 끝은 물에 닿아있었는데 동쪽 끄트머리기 때문에 아마도 바다일 것이다.

 동쪽이 아니더라도 피오르드는 빙하가 녹은 골짜기에 바닷물이 차오른 것이기 때문에 합당한 추측이었다.

 눈이 완전히 잦아든 건 아니어서 하늘은 희뿌옇고 부는 바람에 바닥의 눈송이가 공중으로 떠 날아다녔다.


 피오르드 지형을 따라 바닷물이 들어온 가장 깊숙한 곳에 새하얀 눈으로 덮인 마을 '세이디스피외르뒤르'가 있다.

 이제 막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온 우리는 마을 초입부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봤다.

 마을은 눈 덮인 풍경 속에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깎아 내려지는 암벽을 등 뒤로 한채 물길을 따라 V자 작은 반경 안에 모여있는 마을은 건물 사이 간격이 넓어 여유 있고 눈으로 뒤덮여 그 자체로 동화와 같았다.

 특히 목조로 지은 오래된 건물들이 파랗고 빨갛게 선명한 색을 둘러있고, 불이 켜진 집 굴뚝엔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와 더욱 그러했다.


 지난밤 눈이 온 탓인지 여행자도 주민들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무대 위 빈 세트장 같은 적막이 감돌았다.

 어쩌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가장 먼 곳(반대편)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뜸한지도 모른다.

 마을은 관광을 위해 꾸며지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형태가 예쁜 탓에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간직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누군가 그려둔 건물 외벽의 그라피티와 빨간색의 문, 코발트블루색의 집 등을 배경으로 둔 채 서서 양껏 사진을 찍고, 마을 초입으로 돌아가 카페로 들어갔다.

 넓은 홀에 종업원 한 명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게 영업을 하는지 정중히 묻고선 따뜻한 차를 한잔씩 시키고 앉았는데 그 카페마저도 영화 장소의 일부였는지 여행자들의 사진과 리뷰가 남아있었다.

 나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난로와 라디에이터가 데워둔 공기 속에 몸을 녹이며 창밖으로 마을 풍경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참으로 좋아서 그런 감정을 일행들과 나눴다.

 술이 들어가지 않은 맨 정신에 어떠한 감정을 풍부하게 교류하는 것은 사내들끼리 좀처럼 되지 않는 일인 듯했으나 그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나는 나의 감정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었다.

 여행 중 감정을 꺼내는 것에 꽤나 익숙해져 있다.

 나는 본디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높고 내재된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어서 스스로 많은 표현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세계여행을 시작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가 만든 투명한 껍질로 나를 감싸고 감정을 억제하고 조절하고 있었다.

 날것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며 천진난만한 웃음 짓는 이들이 부러웠고, 어느 것이든 풍부하게 표현하는 여행자들이 부러웠다.

 나 역시 그들과 같아지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아주 어린아이들과 같이 티끌 없이 드러내고 나타내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후로 감정이 내 안에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꺼내어 내뱉을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감정을 기어이 입 밖으로 꺼냄으로 인해 여행의 일상이 얼마나 풍부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감정에도 보이지 않는 껍질이 있어서 이것이 깨지고 벗겨질 때 나 자신과 세상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었다.


 마을을 삼면으로 둘러싼 피오르드의 절벽(혹은 산)은 수직이 아닌 사선으로 비탈지고 암벽은 층이 졌다.

 그 층이 나뉘는 부분마다 눈이 쌓여 그 자체로 절경이다.

 마을이 이런 자연의 일부와도 같아서 이곳에서도 아이슬란드 여행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음이 기꺼웠고, 할 수만 있다면 하루를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혼자 여행 중이었다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나 너무도 소박하고 정적인 이곳엔 일행들을 즐겁게 할 기타 요소나 빼어난 관광지는 없었기 때문에 그저 눈과 마음으로 정경을 소중히 담았다.


 마을을 떠나 여정을 진행하면서 차는 좌측 편에 바다를 두고 달리기 시작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를 여행하면서 해안가 도로를 즐거워하며 여행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피오르드의 암벽을 배경으로 한채 짙고 새파란 바닷물이 출렁이는 것과 그 위에 배 한 척 떠다니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내뱉기 일수였고, 동에서 남으로 차가 움직이는 동안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해가 황금빛 햇살로 세상을 환히 비춰 온통 시야가 금빛으로 물들었을 때는 탄성을 나지막이 내뱉고선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었다.

 출렁이는 바다는 햇살에 반짝이며 보석처럼 빛났고 남해안으로 경사를 내린 피오르드 끝자락엔 갈대와 비슷한 무언가가 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그 끝에 매달린 솜털들이 빛에 산란되어 탐스럽게 빛났다.

 이 모든 풍경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워 사진으로 담아보려 애쓰는 동안 맏형은 그런 나를 자신의 앵글에 담아서 선물했다.

 마을에서처럼 이 길 위에서도, 할 수만 있다면 긴 시간 머물며 감동과 여운을 음미하고 싶었다.

 차로 내달릴 것이 아니라 걷고 앉아서 마음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일행들은 이곳이 영화에서 어떤 장면에 나온 곳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떠오른 지 얼마 안 된듯했던 해는 어느새 서로 지고 있었다.




 잘 닦인 링로드(1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것은 제주도를 크게 한 바퀴 도는 것과 흡사해서 동에서 남이나 남에서 서로 움직이는 것에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이슬란드의 면적이 남한과 흡사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대각선 방향으로 고속도로를 내달리면 네 시간 반 남짓이면 갈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에서야 도착한 숙소는 오두막이라기엔 꽤나 큰 목조형 펜션 건물이었다.

 전체를 우리가 쓴다는 것은 황송할 노릇이었으나 정작 중요한 방은 작고 거실과 주방, 테라스가 큰 형태여서 등산을 앞둔 여행자들의 숙소 혹은 산장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 밤에도 오로라가 떴다.

 오로라 지수가 꽤나 높은 하늘에 희뿌연 오로라가 떴다 사라지길 반복했고, 길게 노출된 카메라에만 형태를 보일 정도로 희미했다.


 저녁은 카레였다.

 이틀 만에 먹는 카레인데도 그리움과 반가움이 왈칵 일었다.

 여행 중 이용할 수 있는 식재료와 맛을 내는 방법에 익숙해진 둘째의 솜씨는 날로 진보했고 이젠 깊은 맛뿐만 아니라 감칠맛과 농도까지 챙기게 됐다.

 달달 볶아 갈변한 양파와 볶아낸 야채들의 풍미는 원하는 만큼 배어 나와 육수에 녹아들었고 카레 안의 고기 살이 씹히는 즐거움까지도 입안에서 함께 어우러져 여행지의 밤을 풍부하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둘째가 전화를 하는 동안 막내는 다음날 예정된 빙하 동굴 체험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먼저 자겠다고 했고 맏형은 오로라 지수를 확인하며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하늘의 오로라뿐만 아니라 멋진 장소를 배경으로 찍고 싶다고 했고, 앞선 경험을 통해 카메라 설정값을 파악했으니 더 잘 찍을 수 있다고도 했다.

 나 역시 세계여행 동안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여행의 목적에 두거나 큰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았던 터라 이런 욕구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글을 쓰는 나의 욕구는 소유와 전달,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도구 정도에 그친 반면, 형의 욕구는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와 이전보다 더 잘 찍고자 하는 향상심에 도달해있었기 때문에 나의 것보다 더 고귀한 것으로 느껴졌다.


 오로라 촬영을 위한 형의 욕구는 자연스럽게 주변 지형 등 정보 탐색으로 이어졌고, 숙소에서 가까운 장소에 다이아몬드 비치와 요쿨살론 빙하가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는 운전을 하지 못하지만 그곳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오로라를 볼 수 있길 원하는 눈치였다.

 여행이 풍부해질 수 있다면 어느 것이든 좋았기에 함께 가보자고 했다.

 이것을 사진을 찍는 이들은 '출사', 아이슬란드 여행자들은 '오로라 헌터' (오로라를 현 장소에서 수동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탐험을 나서는 것)라고 한다.

 자 이제 오로라 헌터가 될 시간이다.


 잠에 들려던 막내와 통화를 마무리하던 둘째도 오로라를 찾아 나선다는 말을 듣고선 차에 올라탔다.

 해가 저물며 끝나는가 싶었던 하루의 여정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고 한밤중에 떠나는 것은 왠지 모를 설렘이 있어서 왁자지껄했다.

 Foo Fighters와 Red Hot Chili Peppers의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헤드라이트로 불을 밝힌 차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숙소에서 고작 십오 분 남짓 거리에 있는 해안가로 갔다.

 움직이는 불빛은 우리뿐이었고 그러한 불빛마저도 삼킬듯한 어둠이 그곳에 존재했다.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으나 어디에서도 해안가 특유의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명도 달빛도 가로등 하나도 없는 곳에서 자칫 실수하면 차에 이상이 생길까 싶어서 그 자리에 주차하고 모두 차에서 내렸다.

 차 시동마저 꺼진 곳엔 어둠과 바람소리만 가득했다.

 아이슬란드라는 대 자연의 나라에 오면서 누구 하나 렌턴과 같은 도구를 챙기지 않았기에 나약한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으나 이내 멀리 가지 못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동서남북조차 구분할 수 없는 어둠이었다.

 당장이라도 발이 어딘가의 구멍으로 빠질 듯한 착각이 들었고 느닷없는 파도가 덮칠 것만 같았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란 이토록 사람을 두렵게 한다는 것을 절절히 느낄 무렵 둘째와 막내가 위험하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차에 돌아와서 맏형은 이곳에 남겠다고 했다.

 바다와 칠흑 같은 어둠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 오로라가 뜨면 환상적인 밤이 될 것은 분명했으나 형을 혼자 두고 갈 순 없는 노릇이다.

 한국에서도 백패킹을 하며 침낭 하나 텐트 하나 만으로 별자리를 헤아리던 맏형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새벽이라도 오로라가 뜨면 형을 태우고 다시 이곳에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지리 정보를 더 찾아보고 렌턴과 보온 장비도 챙겨야 할 듯했다.


 여느 때와 같이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은 밤이 됐을 때 맏형과 나는 오로라 헌터가 되어 다시 숙소를 나섰다.

 긴 기다림을 대비해서 영화 <월터 미티>를 받아둔 노트북을 챙겼고 껴입을 수 있는 옷도 모조리 꺼내 껴입은 상태였다.

 부스럭거림 탓이었을까 잠에 든 줄 알았던 둘째도 부은 얼굴로 일어나서 뒷좌석에 올라탔다.

 땅과 바다의 경계 확인이 힘든 다이아몬드 비치보다는 상대적으로 위치 확인과 접근이 용이한 요쿨살론(해변의 바로 반대편)에 차를 세웠다.

 요쿨살론에는 여행 사무소와 가로등이 비추는 불빛이 있어서 지형을 확인하며 접근할 수 있었다.

 거대한 빙하와 바다 사이에 있는 빙하호 요쿨살론(Jökulsárlón)은 가로등의 불빛과 별 빛, 이제 막 떠오른 달빛만이 비추고 있었고 거대한 빙하 조각들이 희거나 시리도록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직 오로라가 뜨지 않은 밤인데도 그 풍경의 신비로움은 잠시 말을 잃게 했고 누군가 내뱉은 나지막한 탄성만 허공에 맴돌았다.


 바다와 가깝기 때문인지 찬바람이 불었기에 차 안에서 오로라를 기다렸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기다림 동안 일행들의 동의를 구하고 노트북으로 영화 <월터 미티>를 실행했다.

 2시간 남짓의 영화가 끝나기 전에 둘째는 잠들었고 나는 그동안 아이슬란드 여행과 우리가 들었던 음악이 영화를 통해 통합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영화의 OST와 더불어 대사와 장면이 마음에 알알이 박혀 들어와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새벽에 그 여운이 다 가시기도 전에 맏형이 밖에 오로라가 떴다며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요쿨살론의 푸른 빙하 조각들 위로 초록색 오로라 장막이 드리워졌다.

 나 역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졸음을 참고 추위를 견디며 긴 시간 기다린 그 보람 때문일까 보물을 찾았을 때와 같은 기쁨이 마음에 있어 고함을 지르며 형을 안았다.

 그래 해냈다는 기분이었다.

 자연을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순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가 직접 길을 나서 원하는 장소에서 오로라를 기다리고 순간을 쟁취한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형 또한 그 순간의 감정이 나와 동일했던 것인지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맏형이 삼각대를 세우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진을 찍는 동안 나도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내 카메라를 조준했다.


 영화는 전체 중 일부만을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촬영했으나 아이슬란드 여행 중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LIFE 잡지사 현상실에 근무하는 주인공 월터는 사라진 필름을 찾기 위해 사진작가 숀 오코넬의 위치를 수소문 하지만 그를 찾을 수 없다.

 작가가 자신의 정수를 담았다는 25번째 필름은 잡지의 표지로 사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 그린란드에 있었다는 단서 하나 만으로 사무실을 박차고 일어나 그곳으로 향한다.

 우여곡절 끝에 또 다른 단서를 찾은 그는 헬기에서 뛰어내려 아이슬란드로 가는 배에 올라탄다.


 삼각대가 없는 나는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배를 깔고 엎드려서 풍경을 조준했다. 

 눈앞에는 제각각으로 쪼개진 빙하 조각이 떠다니고 여기저기 가로등의 환한 불빛이 빙하를 비추고 있었다.

 멀리엔 정체모를 산이 검은색으로 형태만 드러낸 채 서있고 그 위 하늘에 별과 달과 오로라가 떴다.

 카메라를 바위틈에 끼워 고정시켜보기도 했지만 어떻게 해도 셔터가 눌리는 순간에 흔들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부는 바람에 손과 몸이 떨렸지만 프레임에 모든 게 담기지 않아도 내 눈이 그 풍경을 계속 바라보고 있기에 상관없었다.

 영화에서 월터는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마침내 작가 숀 오코넬을 만난다.

 눈표범을 촬영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린 숀 오코넬이 셔터를 누르지 않고 대상을 지켜보며 말하길 'stay in it' 때로는 어떤 순간을 카메라에 담지 않고 그저 순간에 머문다고 했다.


 세상에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지만 그 밤에 '월터 미티'를 본 것이 우리로 하여금 낭만의 파고를 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했다. 

 마치 행운처럼.

 영하의 온도와 부는 바람에 카메라 프레임은 극도로 차가워졌고 손이 아파서 더 찍기 힘들 때쯤엔 맏형 삼각대를 세워둔 채 우리끼리 추억을 남겼다.

이전 27화 그래도 계속 보고 더듬어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