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훈 Oct 30. 2022

그래도 계속 보고 더듬어 쓴다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할 뿐만 아니라 붙잡아 건네주려 함이다

 고래라는 생물은 크다는 것에서부터 경이롭다.

 바다는 물론이고 육지에서도 움직이는 생명체 중 사람보다 크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감을 발산하는데, 고래는 단순히 크다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서는 것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경이의 대상이었다.

 증기와 산업, 과학이 발전한 세상에서 크고 견고하고 위협적인 운송수단을 만들게 됐음에도 여전하다.

 어릴 때 고래는 신비의 동물이어서 움직이는 섬과 같고 세상을 삼키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말하길 큰 고래는 길이가 31m나 된다고 했고, 향고래라는 종은 최대 2시간까지도 잠수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긴 잠수를 마치고 수면으로 올라오면 공중으로 물을 내뿜으며 호흡하는데 그때 물기둥이 8m 높이까지 솟구친다고 했다.

 어릴 때 상상하던 것이 어른이 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고래가 입을 벌리고 헤엄치면 그 경로에 떠있는 모든 것이 다 그 입안으로 들어갈 듯하다.

 그래서 고래 투어를 하는 동안에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큰 고래를 볼 수 있길 갈망하고 있다.


 짙은 파란색 점프 슈트를 입고 배의 가장 앞부분 갑판대에 팔을 걸친 채 기대어 섰다.

 튀어 오르는 바닷물에 젖는 것을 막아주고 찬 바람으로 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이 옷은 위아래가 연결되어 활동성이 좋고 그 자체로 폼이 좋아서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사진 찍기 바쁘다.

 갑판 뒤로 아이슬란드 바다와 설산의 배경이 더해지면서 진정 북극을 탐험하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

 실제 아이슬란드는 북극권 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북쪽 달비크에서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북극을 탐험하기 위한 출정과도 같다.


 바다는 짙게 푸르러 시린 빛이고 푸른 하늘은 지면에 가까울수록 희게 빛났다.

 그런 바다와 하늘 사이에 높고 낮은 산이 섬처럼 저 멀리 떠서 회색의 음영에 흰색 눈을 덮고 수려하다.

 이따금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서 공중으로 물을 뿜어대니 이토록 시리고 깊은 바다에 사는 고래가 여전히 경이롭다.

 압도적인 크기로 인해 바다에서 자유로운 고래의 유일한 천적은 사람이고 이 사람의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수명을 다할 때까지 산다.

 고래를 보기 위해 바다를 찾는 것도 사람이 유일하다.

 고래뿐만이 아니라 각종 생명체와 자연을 단순히 보기 위해 세상을 헤매는 것은 사람이 유일하다.

 보는 것으로도 즐거워하는 내가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달비크에서 본 고래들은 상상보다는 작고 소박한 숨을 쉬었지만 그럼에도 그 크기에 압도되고 공중에 흩뿌려진 물을 보는 것이 기꺼웠다.


 투어를 마무리하고 육지를 돌아온 뒤엔 차 열쇠를 분실하여 한차례 소동이 있었고, 돌아온 길과 반납한 슈트를 뒤지는 동안 고래 탐사대 사무실에 조금 더 머물면서 투어 중에 잡은 고기를 그릴에 구워 먹는 행운도 있었다.

 안쪽까지 잘 익도록 칼집을 낸 뒤 촉촉함을 살려 구운 토실한 생선살에 후추와 레몬즙을 뿌렸다.

 별미였다.




 달비크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미바튼 호수 쪽에 예약한 숙소로 이동하는 길에 슬며시 어둠이 내려앉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겨울 아이슬란드의 하루는 짧고, 그래서 여행의 밀도가 높다.

 빛이 저무는 아름다운 길에서 우리는 많은 음악을 들었다.

 Snow patrol의 음악을 들으며 콘서트와 페스티벌 등의 이야기를 했고, Foo fighters, Red Hot Chili Peppers의 록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흔들고 떠들썩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록이란 장르는 감정을 여한 없이 다 토해내는 맛이 있어서 듣는 내내 유쾌하고 개운하다.

 일행들은 전날부터 영화 '월터 미티(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저마다 이곳이다 저곳이다 하는 통에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나도 흥미를 갖고 그들이 가리키는 풍경을 봤다.

 영화의 내용, 영상미만큼 노래가 좋다는 말에 OST 전체를 연달아 들었는데 음악이란 기묘해서 아이슬란드에 있는 사실이 이미 분명한데도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분명히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어스름한 도로 양 옆으로 눈 덮인 길과 언덕 기묘한 지형이 스쳐 지나가고 우리는 저마다 기타와 드럼, 신디사이저를 치고 노래하는 밴드가 되어 흥얼거렸다.


 하늘엔 구름이 띠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직 완전히 해가 저물지 않아 어딘가 밝은 어둠 위에, 기묘하게 선명한 구름의 띠를 보며 '저게 우리가 찾던 오로라 아니야?'라는 말을 장난스레 던졌다.

 다 같이 웃으며 그 구름을 올려다보다가 몇 초 후에 정말 오로라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지며 차를 도로 한편에 세우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런 것 같았다.

 긴 나선형의 유려한 띠는 해가 저무는 것에 따라 점차 선명해지고 연둣빛 희뿌연 형태가 됐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형태의 자연에 손가락 한마디만큼 넋을 놓고 바라봤다.

 흥분이 차올랐다. 

 더 형태가 선명해지기 전에 다음 목적지 미바튼 호수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미바튼은 온천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오로라 관측에 용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은 희뿌연 채 하늘에 떠있는 오로라는 밤이 될수록, 주변에 빛이 없을수록 신비한 형체를 우리에게 드러낼 것이 분명했기에 우리는 서로 신이 나 방방 뛰며 차에 올라탔다.

 차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 동안 노래를 틀어야 했다. Rock, Rock이었다.


 도시와 멀고 산등성이가 둘러싸고 있는 미바튼의 호수에 가까워지는 동안 짙고 어두운 밤이 왔고, 오로라는 하나의 띠가 아니라 부채를 펼친 듯 커튼을 내린 듯 하늘을 뒤덮었다.

 검은 줄만 알았던 하늘에 흰 구름과 반짝이는 별 말고도 색칠되는 것이 있다.

 보는 게 그저 좋아서 우리는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봤고, 정신을 차린 후 앞다퉈 온천으로 들어갔다.

 노천 온천에서 몸을 풀며 오로라를 올려다보는 황홀한 순간에 맏형은 요지부동으로 온천에 들어오지 않고 삼각대를 세운채 원 없이 사진을 찍었다.

 아이슬란드 여행 동안 오로라를 보는 게 유일한 소망이었던 그가 하늘을 가득 뒤덮은 신비를 보고 얼마나 감격에 겨웠을지 짐작하기 힘들지만 그가 아름답다 여기는 것을 가장 잘 경험하고 간직하는 방법이 사진이기에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을 수 있길 바랬다.

 오로라를 찍기 위해선 노출과 밝기 등 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카메라와 핸드폰으로는 원하는 사진을 찍기 힘들다.

 DSLR을 손에 들고도 자동모드로만 사진을 찍어온 나로선 왜 하늘의 오로라가 내 사진에 담기지 않는지, 왜 어두운지, 왜 흔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맏형 카메라와 동일한 설정값을 맞추고 삼각대를 세우고서야 간신히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사진은 때때로 눈의 인지를 넘어서는 것이 있어서 보는 것보다 선명한 오로라와 수없이 많은 별들이 사진 속에 담겼다.

 3차원의 형태로 하늘에 드려진 장막 같고, 드넓게 펼쳐진 장판 같은 오로라는 짙고 야광에 가까운 초록빛을 띠다가 점차 사라졌다.


 미바튼에 예약한 숙소는 다른 여행자들도 함께 이용하는 형태여서 이전처럼 시끄럽게 굴지 못하고 조용히 부엌 탁자에 모여 앉았다.

 꽤 오랜 시간 오로라를 본 흥분을 저마다 분출하다가 오로라 지수가 계속 높으니 새벽에도 일어나서 오로라를 볼 거라며 잠들었지만 누구도 일어나지 못했다.

 자는 동안 오로라 투어를 나서는 여행자들의 발소리가 어렴풋이 달그락거렸다.



 

 고다 포스(Goðafoss : 폭포) 아래 등목을 하며 누운 고래 꿈을 꿨다.

 온통 새하얀 눈으로 뒤 덮이고 폭포로부터 사방으로 날아간 물방울이 얼어붙은 세상이 그곳에 있었고,  시간마저 멈춘 듯한 겨울의 세상에서 혼자 흐르고 낙하하는 폭포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폭은 30m로 끝에서 갈라진 강의 폭만큼 넓었고 낙차는 12m로 컸지만, 꿈속에서 31m 흰긴수염고래가 누워서 공중으로 물을 뿜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다 포스는 그저 모든 것이 희고 부드러워서 눈이 녹아 푸릇한 날에 와도 그 자태가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 탓일까 꿈은 이내 봄날의 아이슬란드로 바뀌었다.

 잠에서 깨고도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달비크의 고래 투어를 가기 전 아침에 들린 고다 폭포는 내 상상 속에만 있다.

 맏형은 이때 카메라를 갖고 나가기 귀찮다며 챙기지 않았고, 빼어난 아름다움을 열심히 담은 내 카메라의 SD카드는 망가졌다.

 앵글의 안과 밖으로 더듬은 풍경도 꽤나 깊은 시선이었을까 고운 자태를 매우 구체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상상이 때론 현실보다 아름다워서 굳이 사진을 찾아보지 않고도 기억만으로 만족스럽다. 




 데생하듯 말로써 아이슬란드 여행을 그려보겠답시고 희다 곱다 가파르다 하고 있는 내 언어는 빈곤하고 그동안 하지 않았던 표현은 경직되고 메말라서 찍어둔 사진과 영상 속 풍경이 나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가진 바 글재주와 표현력이 부족하지 않았더라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책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 선생님이 말하길 (사진 속에 풍경과 시간을 담으려 애쓰는 지인 강운구를 보며) ‘영원성을 잡기 위한 카메라는 안쓰럽고, 언어 또한 그와 같아서 가을의 태백산맥이 입을 열어서 말을 주절거리려는 인간을 향하여 입 닥쳐라 입 닥쳐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사진과 글로 지분덕 거리며 찰나와 영원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그저 존재하는 자연을 넘어설 수 없는 것만 느낀다.

 그래도 계속 보고 더듬어 쓴다.


 나의 고집은 때때로 굳건해서 기억과 사진을 끝없이 더듬어 살피는데 이번 고집은 어딘가 절박한 구석이 있어 애잔하다.

 엄마의 망막에 물이 차서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시신경에도 위험이 미처 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을 광주의 안과병원에서 들은 뒤, 부랴부랴 예약한 서울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물을 제거했지만 망막의 훼손된 부분은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내 글이 간신히 아이슬란드의 일부라도 잡을 수 있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쉬이 보지 못하는 엄마의 눈에게 언어의 풍경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할 뿐만 아니라 붙잡아 다른 이에게 건네주려 함이다.


 이따금 여행과 이국을 다룬 책을 볼 때면 단 몇 줄의 글귀에서도 특정 장소를 상상할 수 있었고 때로는 내가 그곳에 다녀온 것으로 착각할 만큼 선명한 인상을 받았다. 

 그림과 달리 글은 그 무엇 하나 실제와 동일한 형태를 머리에 그리기 힘들지만 앞선 글에서 말한 것처럼 상상이란 때론 현실보다 대단해서 저마다 구체적이고 또렷하다.

 끝내 우리가 남은 시간 동안 이러한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하더라도 언어는 살아서 마음에 풍경을 그려줄 테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북반구 상단 북극과 인접한 위치가 주는 기후적 특성과 피오르드, 지각 판의 경계, 화산지대, 장엄한 폭포, 나무 없이 벌거벗은 땅의 적나라한 형태가 지평선을 이루며 뻗은 그 모든 것이 이 땅에 있어 경이와 탄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단지 지형을 언어로 풀어내는 노력은 한강 물이 흐르는 것과 북한산이 높게 서있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ㄱㄴ아야어여 국어의 자음과 모음에 불과하다.

 그곳을 여행한 내 이야기가 포개져야 비로소 온전히 의미 있는 하나의 문장이 될 것이다.  




 작은 눈송이가 하늘하늘 내려오는 길을 가로질렀다.

 새로운 날의 여행을 시작하고도 차 안은 고요하고 차분했다.

 밤사이 새하얗게 변한 세상도 마찬가지로 고요했다.

 눈 덮인 미바튼 호수를 빙 둘러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도 그랬다.

 오로라가 드리운 밤이 지나고 일행들은 많은 부분에서 이 여행이 만족돼버린 듯했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약간의 공허한 감정과 비슷했다.

 남한 면적과 비슷한 아이슬란드의 서쪽과 북쪽 일부를 봤을 뿐인데도 그랬다.

 하늘이 초록으로 물든 밤이 한번 있었을 뿐이다.


 눈 구름이 걷혀 하늘이 푸르고 맑을 무렵, 흐베리르 '끓는 땅'에 도착했다.

 웅덩이에 고인 물은 물론이고 진흙이 돼버린 흙마저 끓는 화산지대 곳곳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유황 냄새가 연기만큼 자욱했다.

 지대를 덮은 황토 속에서도 용암이 끓여냈을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땅 자체가 잘 구워진 도자기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이용해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즐겼고, 옆으로 길게 뿜어지는 연기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

 서있는 곳이 마치 잡지 화보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 속이었기 때문에 몇몇은 멋진 포즈를 취하며 모델 화보 촬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실제 모든 사진이 화보 같았고, 이 모든 풍경이 새파란 하늘 아래 있어 사람이 무엇을 하건 전체의 일부로 아름다웠다.

 박동하며 하늘 위로 물줄기를 쏘아 올리던 게이시르와 더불어 이곳 흐베리르에서 지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다.

 가히 뜨거운 심장을 가진 행성이다.


 흐베리르를 지나 산을 넘는 길에 지열 발전소가 있었고, 어느샌가 올라온 높은 산등성이에서부턴 세상이 희거나 푸르름으로 양분됐다. 

 어디를 둘러보나 그랬다.

 끓는 땅을 지나왔더니 어느새 설산 위에 올라온 것이다.

 산 위로 하늘은 여전히 푸르러 맑았고 사방의 눈 덮인 곳엔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었다.

 나무나 암석의 거친 지형이 없기 때문에 그저 눈뿐이었고, 새하얀 설원 속에 우리가 아주 작은 존재로써 파묻혀 나 역시 깨끗하고 순수해지는 것 같았다.

 크라플라 산 정상 분화구엔 물이 고여 얼어붙었고, 이 푸른 화구를 보기 위해 여행자들이 찾아온다.

 몇몇 여행자들이 분화구를 향해 먼 걸음을 하는 동안 나의 일행들은 이 새하얀 공간 위에 서서 드론을 날려 우리란 존재를 찍고 싶어 했다.

 바람이 불어 불안정한 비행으로 올라가는 드론의 눈에 우리는 하얀 설원 위의 티끌 같다가 이내 높은 고도에서 풍경의 하나로 스며들었다.

 우리가 순수하다 예쁘다 티끌 없다 하는 곳은 불과 300년 전까지 스무 번이 넘게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흐르고 땅이 그을렸다.

 그 모든 것이 겨울의 눈 아래 감추었다.


 날이 흐려 곧 비나 눈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가 됐을 땐 데티포스에 도착했다.

 영혼이 녹아있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잿빛으로 어두운 강물이 그 끝에서 완전히 생을 마감하고 곧장 떨어져 내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듯 부서지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폭포라는 정보를 보지 않았더래도 눈앞의 폭포는 그러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그 넓은 강으로부터 낙하하는데 유량이 초당 50만 리터다.

 폭포의 끝은 감히 내려다볼 수 없었고 부서지고 튀어 오르는 물방울과 포말로 인해 보이지도 않았다.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드리운 먹구름만 아니라 협곡의 바위와 강 옆의 크고 작은 돌, 강물까지 모든 것이 회색으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굴포스부터 고다 포스, 데티포스까지 각기 다른 형태로 폭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은 떨어져 내리는 물의 형태뿐만 아니라 주변의 지형이 만드는 전체적인 모습이 제각각으로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협곡에서 흘러온 잿빛 강물이 100m 강폭의 넓은 하류에서 회색 돌멩이들과 수면의 높이를 같이 하다가 일제히 45m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그 폭포의 높이만큼 협곡이 이어진다.


 SF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촬영지란 정보를 봤기 때문인지 당장이라도 UFO가 상공에 머물러 무언가를 내려보낼 듯했다.

 우리가 있는 위치 건너편에서 주변 지형과 폭포를 담은 앵글이 영화의 장면이다.

 폭포와 강 바로 옆까지 다가가서 폭포를 즐기고 사진을 찍고 물을 직접 만져보기 좋은 위치는 저곳이지만 폭포로 오던 갈림길에서 적어온 국도 정보와 무관하게 길을 꺾어 들어온 탓에 우리는 반대편에서 그곳을 본다.

 아쉽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움직임의 반경이 크고 지난한 일이며 어느 쪽에서든 못 본 것이 아쉽기 때문에 이 자체로 만족했다.

 강 상류로 걸어가면 강물이 협곡 사이를 흘러오는 것과 셀포스라는 폭포를 볼 수 있다기에 걸어가 보다가 이내 일행들의 피로도를 감안하여 몸을 돌렸다.


 하루의 풍경이 이전처럼 이색적이고 신비로웠으나 왠지 차분하게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끓는 땅과 설산, 잿빛의 폭포까지 기이함으로 가득한데도 일행들의 여행에 이전과 같은 뜨거움이 없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불타오를 것은 없지만 내일을 기대하고 오늘을 즐거워하며 함께 여행하길 바라는 마음은 있다.

 어쩌면 전체적인 일정을 내가 설계하고 있기 때문에 일행들보다 조금 더 여행에 집중하고 몰입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난밤 마음에 드리운 오로라의 장막이 아직 걷히지 않았거나.


 이젠 오로라에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고 오로라를 당연히 볼 수 있는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했던 나만이 지속해서 다음을 궁금해하고 여행 계획을 점검한다.

 함께 설계하고 모두가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여행을 꾸려간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모두 계획에서 한발 떨어져 있고 나는 한 발 나서 있다.

 하루에 본 것들 중 데티포스는 대단했다.

 화산재가 섞여 잿빛으로 탁한 물이 흘러와 그대로 떨어지는데 세상의 끝을 보는 것 같았다.

 



 데티포스를 뒤로 하고 800번대 도로를 벗어나 다시 1번 링로드 위에 안착했을 땐 하얀 눈송이가 내려앉기 시작했고 하늘은 금세 어두워졌다.

 눈처럼 차분히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마치 오늘 여정을 시작할 때와 흡사했고 일행들의 말소리마저 잦아들며 와이퍼의 움직임이 만드는 소리만 들려왔다.


 캄캄해진 도로에 새하얀 눈이 흩날리는 것은 대단히 몽환적이었으나 와이퍼가 바삐 움직이면서부터 차 내부에 긴장과 적막이 흘렀다.

 고요함에도 팽팽함과 느슨함이 있었고, 가로등이 없어 어두운 도로에 하이빔을 쏘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차 안의 기류가 기민하게 다가왔다.

 느슨했던 일행들의 호흡마저 가쁘거나 멈춘 듯했다.


 며칠 전 눈 덮인 도로를 위태롭게 전진하다 돌아선 기억을 저마다 떠올렸을 것이다.

 긴장을 풀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옆에 앉은 맏형이 경직된 웃음과 반응을 하는 동안 바퀴가 불규칙적인 곳을 밟으며 핸들이 틀어지고 바퀴가 헛돌아 잠겼지만 어느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전진했다.

 어찌 됐건 이번엔 '앞으로 가는 것' 그 수밖에 없었다.

 핸들을 붙잡은 두 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큰 차가 앞에 있으면 눈보라와 더불어 바닥에서 훑어 올린 눈마저 날려와 앞이 보이지 않기 일수였고 주변에 차량이 없을 땐 헤드라이트를 위로 들어 하이빔을 쏘며 도로를 구분했다.


 다행히 1번 도로에 올라와있기 때문에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차들이 있었고, 긴급 제설 차량이 눈을 한쪽으로 밀기 위해 천천히 도로에 진입하고 있다는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날 경험을 통해 정보의 필요성을 깨닫고 실시간으로 도로 상황과 복구 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를 알아뒀던 것이다.

 세이디스피외르뒤르까지 가서 숙박하려던 일정을 변경해서 그 직전의 도시 에이일스타디르에 숙소를 잡았다.

 끝없이 쏟아지는 함박눈과 두텁게 덮인 눈을 헤치며 지나온 길 끝에 에이일스타디르에 도시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저마다 말이 많아진다.


 숙소로 가는 길에 본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는 동안 맏형이 오늘은 외식을 하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많은 것을 억눌러왔다가 뱉은 듯한 그 말에 일행들은 단숨에 순응했다.

 긴장에 마음 졸이기도 했고, 저녁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도 했다.


 그때쯤, 하나의 순간을 맞이하면 그것을 충분히 가슴에 받아들이며 음미하길 원하는 내 여행 방법과 장소를 확인하고 인증 사진을 찍으면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려는 둘째의 여행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게 충돌하고 있었고, 대부분 사진을 담당해서 찍어주고 있는 맏형이 소진되고 있었다.

 데티포스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니 직후 곧장 차로 돌아가버리는 둘째의 등 뒤로 한숨과 함께 뱉어낸 맏형의 중얼거림에 예민함이 묻어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한번 풀어내고 털어낼 때가 됐다.


 숙소에 짐을 두고 걸어서 식당을 찾아가는 동안 작은 눈송이가 몹시 아름답게 하늘하늘 내려왔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 눈송이는 그 작고 여린 형태를 선명하게 보였고 나와 일행들은 하늘을 보며 두 팔 벌려 빙빙 돌아 그 순간의 행복을 누렸다.

 곳곳에 수북이 쌓인 눈 위로 풀쩍 뛰어 대자로 드러눕기도 했는데 이런 겨울의 즐거움을 티끌 없이 맛본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이다.


 인구가 많지 않은 도시의 밤엔 영업 중인 식당이 한정적이어서 큰 선택권이 없었다.

 바비큐를 파는 식당의 넓은 홀에 우리만이 앉아 재잘대며 스테이크와 피자 감자튀김 등을 시켰고, 각자 마실 맥주와 음료를 연달아 주문하며 이 밤에 녹아들었다.

 맏형은 이왕이면 2차를 즐기며 외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긴장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누리고 싶었던 것 같지만 식당을 나왔을 땐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식사량이란 너무도 소박해서 크게 충족되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눈이 흩날리는 즐거움을 느끼며 빙빙 돌았다.

 뜨거운 숙소에서 남자 넷이 크게 발 벌려 앉아 재잘거리며 술을 따르고 안주를 먹었다.


 함께하는 여행이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여행이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받는다.

 별것 아닌 것도 누군가의 감탄에 다시 한번 들여다보며 아름답다 느끼고, 시야와 보폭을 맞추게 된다.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지나도 여행이란 어떤 것인지 하나의 말로써 명확히 정의하긴 힘든 일이지만 이전까지 해오던 혼자만의 배낭여행과 동행을 구해 함께하는 여행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나에겐 그 대척점이 노르웨이 여행이다.

이전 26화 의식적인 이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