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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케빈 Feb 22. 2021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400 유로를 챙겨 주신 부장님

 딸아이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딸아이 두 돌 때 처음 해외 현장에 가서 근무를 시작했고, 벌써 3개 나라를 돌았다. 첫 근무 당시 아이는 어린이집을 막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커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휴가 때마다 잘해주려고는 하지만 부족한 게 사실이니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다. 


 사실 해외 건설 업무를 하면 이게 가장 큰 흠이다. 일 자체는 재밌게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생각보다 타격이 크고, 더 슬픈 건 언제 가족과 같이 살지 기약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는 건 같이 일하는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아직까지는 계속 해외 근무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핑계로 부서 리더로 나와계신 부장님께 한국에 들어가야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당연히 들어가야 된다며 허락을 해 주셨고, 들어가기 전날 같이 밥이라도 한 끼 하자며 집으로 초대를 해주셨다. 내가 음식을 미리 시켜야 되나 걱정하며 부장님 숙소로 갔는데, 웬걸 김치찌개에 여러 밑반찬, 그리고 갓 지은 흰쌀밥을 준비 해 놓으셨었다. 거기다 유럽인만큼 레드와인 한 병과 딸기까지! 


 솔직히 이런 집밥을 대접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떠나는 부하직원을 위해 손수 밥을 차려주는 부장님이 몇이나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하니 부장님께서 흰 봉투 하나를 쥐어주셨다.


 "아이 초등학교 간다고 했으니 가서 책가방이라도 사줘"


 한사코 거절을 했지만 예의상 받아 들고 집으로 들어왔고, 두툼한 봉투를 열어보니 50유로짜리가 8장... 아니 난 진짜 부하직원 자녀 초등학교 입학 선물을 준다는 상사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데, 거기다 이렇게나 많이 넣어주셔서 진짜 너무나 깜짝 놀랐었다. 


 사실 이 부장님은 평소에도 주변 분들과 잘 지내시고 평판이 아주 좋았다. 첫 현장에서 만났을 때는 아침마다 "커피 한잔 하자"라고 직원들을 부르셔서 보통 30~40분 정도 잔소리+꾸중+질책+.....으로 하루를 시작할 때는 힘들긴 했었다. 그래도 항상 문제 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주셨고,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일을 끝낼 수 있을지 항상 가이드를 해주셨었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기계나 전기, 건축 공정과 상관없이 밤늦게까지 항상 남아서 사고 원인 파악이나 보고서 작성을 도와주셨다. 여태 만난 리더는 자기 일 아니라고 팽개치거나 "네가 알아서 보고해"라고 외면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부장님은 항상 자기일 하듯 부서원 모두를 챙기셨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협력 업체 분들뿐만 아니라 부서원들, 그리고 타 부서 분들까지 존경하는 우리 부장님. 앞으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부장님이 보여주신 모습을 기억하고 나도 후배 직원들을 챙겨주는 그런 선배가 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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