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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z 오즈 Aug 24. 2023

땅의 끝 바다가 시작되는 곳

Cee - Fisterra

씨 - 피스테라



아플 땐 얼만큼 아픈 건지 잘 모르는가 보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싶었던 날들이 사실 괜찮지 않는 거였어.

몸이 가볍다. 확실히 지난 3일과는 다르다.  

컨디션이 돌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이게 정상 컨디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피스테라로 향한다. 땅끝, 세상의 끝이라서 피니스 테라(Finish Terra)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13km를 걸으면 피스테라 마을에 다다를 것이고, 바다가 시작하는 곳 피스테라 등대(파로 데 피스테라 Faro de Fisterra)까지는 3km를 더 걸어가야 한다.


해변을 걷는다. 태풍은 잘 모르겠고 이슬비 정도 가끔 내리고 있다. 매우 흐린 날이지만 오히려 걷기 적당하고 좋다. 30일 넘게 원 없이 뜨거운 날들을 걸어왔으니 오늘 화창하지 않다고 실망스러울 건 없었다.





아침 먹을 곳을 찾았지만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배낭에 언제나 비상식량이 있으니 걱정은 없다. 다만 따듯한 차와 화장실이 필요할 뿐. 아까부터 계속 같은 바에서 허탕을 치는 순례자가 있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 피스테라-무시아 길에서는 아는 얼굴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다. 다정하게 인사만 주고받고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길의 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어딘지 고요하다.


우리는 거의 피스테라까지 와서야 바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도 나는 따듯한 차를 마신다. 메그는 오늘부터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다. 카페에서 기다려도 소은은 오지 않았다. 발목 때문에 느리고 천천히 오는 중인듯싶다.


알베르게에 배낭을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피스테라 0포인트 지점으로 향한다. 소은에게 피스테라 등대에서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땅의 끝이자 바다가 시작되는 곳

피스테라 등대 주변은 바람이 몹시 불었다. 더 이상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곳. 땅의 끝이자 바다가 시작하는 그곳까지 갔을 때 나는 실감했다.

아 이제 진짜 우리의 까미노가 끝나가는구나.


그곳에는 길을 걸어온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미 지워지고 또 쓰이고 또 지워지고 그 위에 또 쓰인 사람들의 소망과 기도들을 나는 보았다.


세찬 바람은 이제 나를 돌아가라고 재촉한다. 알았어.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 오늘 여기가 끝은 아니니까. 내일 비가 많이 온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날씨가 좋아지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개인실을 예약했다. 도미토리와 개인실은 1~2분 거리에 건물이 따로 있었다. 도미토리에 부산 쌤들이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를 하러 갔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아니 오선생 같은 강골이 아프다니 무슨 일이에요!"

"이제 다 나았어요. 오늘부터 다행히 컨디션 좋아졌어요. 헤헤."


쌤들 목소리만 들어도 코끝이 찡했다. 가까이 가면 혹시 폐가 될까 싶어 멀리서 인사만 하고 후다닥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갈리시아로 들어오면 반드시 먹겠다고 노래를 불렀던 문어요리, 뽈뽀는 오늘 저녁에야 드디어 먹을 수 있었다. 숙소 근처 식당을 찾아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모였다. 샐러드와 뽈뽀 그리고 오징어튀김. 다 맛있었지만 특히나 오징어튀김이 바삭하니 식감도 맛도 좋았다. 얼마 만의 와인이냐. 화이트 와인도 시키고 짠- 하며 잔을 부딪친다.





숙소에 돌아와 쉬는데 소은이 창문을 두드린다.

"언니 잠깐 나와봐요. 부산 선생님들이 언니 이거 주라고-"


아팠다고 하니 마음이 쓰이셨는지 부산쌤들이 소은 편에 약과 국거리를 전해 주셨다. 그동안 이유 없이 나를 좋게 봐주시고 지지해 주신 분들, 내가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지만 늘 내가 의지하게 되던 분들이다.

한국에서 따로 지어오신 것 같은 약은 진짜 타지에서 귀한 약일 텐데 이렇게 받아도 되나요. 하니, 선생님들은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가니 걱정 말고 받으라고 하신다.

사양도 못 하고 염치도 없이 나는 그저 받았다.


나를 만날 때마다 두 손을 번쩍 들던 선생님. 첫사랑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시며 분위기를 훈훈하게 이끄시던 분들. 조건 없이 응원 주신 분들. 조용히 지켜볼 줄 아는 분들. 따듯하고 유쾌한 어른들.

여기서 정말 멋진 어른들을 만났구나. 나는 참 운도 좋으다.


고맙습니다. 선생님들 만났던 매 순간 기억해요. 보고 싶어요.


날은 흐리지만 멋진 일몰을 볼 수 있는 스팟이 있다고 해서 메그와 저녁에 접선했다. 숙소 주인이 지도에 몇 군데 스팟을 표시해 주었는데 결국 찾지 못하고 해변가 한 카페로 들어왔다. 비는 내리다 그쳤지만 이미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아마 가도 일몰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카페에서 오랜만에 메그와 수다를 떨었다. 산티아고를 떠나온 이후에 감기 때문에 줄곧 누구와도 긴 대화를 하지 않았으니 4일 만의 수다였다.

내가 비행기를 왜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그런 이야기를 그녀에게 처음 했던 것 같다. 대중교통을 타기 어려워진 이야기. 이후에 숙명처럼 걷기 시작했고 결국 여기까지 와서 걷게 되었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억에 오래 남을 참 좋은 대화였다. 까미노 이야기를 주로 하다가 이제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꺼내게 되던 날이다. 서로의 일상이던 시간들에 대해.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길의 끝을 준비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은 또 다른 0포인트 무시아로 간다. 그리고는

..


정말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bonus!

+ 피스테라 알베르게 : Fisterra Pilgrims Hos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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