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그 이후
그래서, 다녀와서 뭐가 달라졌어?
그래서, 다녀와서 뭐가 달라졌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바로 이거다.
그 고생을 사서 했으니 득도를 하진 못해도 니 인생에 뭔가 달라진 게 있을게 아니냐는 질문.
그다음으로 비등하게 많은 질문은,
그래서, 살 얼마나 빠졌어?
안타깝게도 첫 번째 질문에는 간단하게 대답하지 못해 입을 다물어 버린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까지 생각하면 한 가지 답으로 대답할 수 있다. 가장 확실한 변화를 말하자면 체중과 체력이 가장 실제에 가까운 대답일 테니까.
순례길을 끝내고 첫 번째 여행지였던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놀랍게 향상된 체력을 실감했었다. 하루 종일 도시를 여행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물론 발은 늘 아팠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최소 3개월 동안 발바닥 통증은 지속되었다. 이를 제외하고 체력적인 면만 본다면, 몸의 전체적인 근육 밸런스가 맞는 느낌이었고 뭘 해도 피곤하지 않으니 지구력도 높아져 있었다.
예전에 갔던 인왕산, 관악산도 다시 가보았다. 어쩜 그렇게 하나도 안 힘들 수가 없다. 근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 체력 상태나 호흡, 페이스를 몸이 알고 있으니,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가다 보면 예전처럼 심장이 터지거나 다리근육이 아프거나 무릎이 아픈 일은 없었다.
가장 걱정했던 무릎 또한 반전이었다. 간혹 무릎이 망가져 온다고들 하던데, 나의 경우는 이전보다 무릎이 더 건강해졌다. 무릎이 아프면 다른 근육을 강화시켜 걸어야 하는데 그게 훈련이 되었던 모양이다.
생활 자체에도 변화가 왔다. 모든 건 정신력이 아니라 근력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일도, 일상생활도, 기분도, 감정도, 태도도 모두가 말이다.
힘들면 정신력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근력으로 버티는 게 승산이 있다.
주말엔 쉬어야지 하던 카우치 포테이토 만성피로에서, 누가 불러도 엉덩이가 가벼워지고 늦게까지 놀아도 피곤할 줄 몰랐다.
뭐 할래? 어디 갈래?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해도 귀찮지가 않았다.
마치 20대의 나처럼.
정말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부른다고 다 쫓아다니던 20대처럼 살 수는 없지. 체력을 어디에 쓸지 누구를, 무엇을 위해 쓸지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체력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부실했던 체력과는 달리 은근 이것저것 다하고 싶고 다 재밌었던 나는, 순례길 이후 이 중 대부분에 흥미를 잃었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오지랖과 문어발은 욕심이고 불안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랬다. 매정한 일일지 모르나, 내 삶에 군더더기 일과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미련도 버리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서로 응원하고 아끼는 사람들 몇 명이면 충분하다.
오히려 삶이 간소해졌다. 친구도 간소해지고, 소비도 간소해지고 생활 패턴도 간소해졌다.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간소해졌다. 집중하고 싶은 것 외에는 관심이 줄었다.
변화의 시작은 이미
그래서, 다녀와서 뭐가 달라졌어?
그래서, 순례길이 너를 얼마나 변화시켰어?
그럼에도 아직도 이런 질문에 명료하게 대답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정말 나를 변화시켰는가? 나는 변했는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가장 많이 변한 건 '체력'이라고 대답하고 입을 다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에게 변화는 까미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루먼의 변화는 벽 너머 세상을 건너가고 난 이후가 아니라
변하고 싶다고 생각한 그 순간 이미 시작되었듯이
퇴사를 하던 그때, 인생 2막을 준비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그때,
까미노를 결심하고 준비하던 그때,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이 뭔가를 변화시킨다는 기대는 당연하다. 특히나 한 달이 넘도록 매일 걷는 순례길 여정은 어떤 계기나 결심이 아니고는 시작하기 힘든 길이니 그만큼의 효과를 바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여행은 무효하고 무익한 것일까?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 새로운 걸 찾기 위해? 아니면 잃어버린 걸 찾기 위해? 무얼 발견하기 위해?
이런 질문은,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혹은 어차피 제자리로 내려가게 될 산을 왜 오르는가?라는 질문과 비슷하다. 던지는 질문 자체에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굳이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질문 말이다.
여행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지나가는 여정 자체일 뿐이다.
여행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주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뿐이다.
여행이 일상이 된 사람은 여행이 삶이자 철학이자 예술이 될 것이고
여행이 특별한 사람은 잃어버린 혹은 새로운 감각의 깨달음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나아지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뿐이다.
이 시대 새로운 중년 40대, 그대에게
순례길 여정을 글로 되살리던 매 순간, 지금 이 순간에도
까미노에 있는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나의 이야기는 단순한 순례길 여행기가 아닙니다. 이 글은 두 번째 스무 살, 길에서 모든 감정이 뒤섞여 버린 한 사람의 로드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커리어의 정점이라는 가장 바쁠 나이 40대. 평범하고 영광 없이 퇴사하고 떠난 순례길에서, 사회인이 될지언정 회사인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글 속에 볼품없고 혼란스러운 '나'는 당신의 현재, 과거 혹은 미래일지도 모르는
이 시대 또 다른 중년, 40대의 탄생 같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지나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세번째 스무살, 혹은 두번째 마흔살이 오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우리는 작은 원이 되어 큰 원을 따라 걷고 있네요.
그래요. 까미노 레온쯤 온 줄 알았지만 실은 어쩌면 까미노 부르고스쯤 왔을지도. :)
최근에 영화 <오마주>를 보다가 알게 된 시가 있습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내가 잠든 사이에>라는 시인데요, 까미노에서 매일 보았던 "해 뜨는 시간"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 중 하나였는데, 빛과 어둠이 만나면서 만물의 형태만이 남는 것이 마치 해 질 녘이라 불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과 비슷하다 생각했어요.
붉음과 푸름 그리고 어두운 실루엣만 존재하는 그때, 개인지 늑대인지 알기 어려운 애매모호한 시간 속에 서 있으면 왠지 모르게 편안했습니다. 아군(개)과 적군(늑대)을 구별하지 못해 불안하다기보다, 그것이 모호해져 버리는 것 말이에요. 여행과 일상, 꿈과 현실, 불안과 안도, 죽음과 삶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시간. 빛과 어둠의 경계가 모호함을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함이 오히려 저에겐 현실적이었어요.
나의 세상에 와준 사람들, 이 글에 초대된 모든 사람에게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을 표합니다. 덕분에 나의 세상이 더 너그럽고 커졌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친구들과 작은 원이 되고, 새벽의 노래가 되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혼자 떠났지만 혼자가 아닌 채로 길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에 섰던 이야기.
그러나 종국엔 다시 혼자가 되어,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온 이야기.
돌아와 일상을 마주했을 때
나는 달라졌을까요? 아니면 여전할까요?
당신은 어떨 것 같나요?
궁금하다면 한번 떠나보세요.
이 글을 읽는 그대, 조용한 혁명은 이미 당신 안에서 시작되었을 테니까요.
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 어딘가에 숨겨 놓았거나 잃어버린 뭔가를.
침대 밑에서, 계단 아래에서
오래된 주소에서.
무의미한 것들, 터무니없는 것들로 가득 찬
장롱 속을, 상자 속을, 서랍 속을 샅샅이 뒤졌다.
여행 가방 속에서 끄집어냈다.
내가 선택했던 시간들과 여행들을.
주머니를 털어 비워냈다.
시들어 말라버린 편지들과 내게 발송된 것이 아닌 나뭇잎들을.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녔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들, 불안과 안도 사이를.
눈(雪)의 터널 속에서
망각 속에서 가라앉아 버렸다.
가시덤불 속에서,
추측 속에서 갇혀버렸다.
공기 속에서,
어린 시절의 잔디밭에서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끝장을 내보려고 몸부림쳤다.
구시대의 땅거미가 내려앉기 전에,
막이 내리기 전에, 정적(靜寂)이 찾아오기 전에.
결국 알아내길 포기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나는 과연 무얼 찾고 있었는지.
깨어났다.
시계를 본다.
꿈을 꾼 시간은 불과 두 시간 삼십 분 남짓.
이것은 시간에게 강요된 일종의 속임수다.
졸음에 짓눌린 머리들이
시간 앞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부터.
<내가 잠든 사이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함께 살아 걸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