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샌디에이고
※ 알림: 이 글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끼리끼리 로비에서 모이더니 이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와 몇몇 한국 학생들은 게시판에서 그날의 액티비티를 확인했다.
‘하드락 카페와 하드락 호텔! 샌디에이고에서 락스피릿을 즐기세요!’
나는 매일 퀸의 Don’t stop me now를 들어댔기 때문에 동공이 커졌다. 손가락으로 앞턱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안내문을 들여다보는데 앤워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예지! 너 오늘 이 액티비티 가는 거야?”
“어, 안녕 앤워! 나 이거 가려고. 넌 오늘 뭐 해?”
“나도 할 거 없는데 너랑 같이 가야겠다.”
앤워가 방긋 웃었고 하얀 이 위에서 늘 그렇듯 교정기가 빛났다.
“여러분! 오늘 액티비티 참여할 준비됐나요?” 리셉션에서 나오며 브라이언이 활기차게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다른 톤으로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드락 카페와 하드락 호텔은 어학원에서 해변가로 몇 블록 걸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먼저 하드락 카페에 도착했다.
브라이언이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는 하드락 카페예요.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중에 하나죠. 저기 벽에 붙어 있는 드럼이 보이죠? 락 음악을 콘셉트로 하고 있어서 음악도 전설적인 락밴드들의 음악을 틀어준답니다.”
나는 옆 테이블에서 버거 세트를 먹는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미국의 버거는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거의 두 배 크기였다. 버거 안에 들어있는 패티는 어떻게 요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육즙이 가득하고 스모키 한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브라이언이 우리를 하드락 호텔로 안내했다. 하드락 호텔에서는 직원이 다가와 설명을 해주었다. “이곳의 기타는 정말 락스타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기타를 경매에 참여해서 입찰받은 것입니다. 아, 그리고 이 편지는 에릭 클랩튼이 실제로 아내에게 쓴 편지고요. 진품입니다.”
편지 내용을 읽어보려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데 앤워가 계속해서 내 주위를 맴도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한국 친구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앤워와 브라이언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루프탑으로 올라가서 바다도 보고 좀 쉴까요?” 브라이언의 안내를 따라 우리는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루프탑에는 푹신한 옅은 회색 소파들이 쭉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뒤로는 난간이 있었고 거기에 손을 잡고 서면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간단한 바도 있었는데 직원이 없어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앤워와 한국 친구들이 난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브라이언이 소파에 앉아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Yes예요, no예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의아해져 되물었다.
“내가 보낸 문자 못 봤어요?” 살짝 굳은 어색한 입꼬리로 미소를 지으며 브라이언이 물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과연 브라이언이 보낸 문자가 수신되어 있었다.
‘나랑 오늘 저녁 5시에 커피 한 잔 할래요?’
나는 중립적인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휴대폰에서 시선을 거두어 브라이언을 다시 쳐다보았다. 3년의 연애가 끝난 지 두세 달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별하던 날 들이마신 소주의 씁쓸한 향이 아직도 혀끝에 생생하게 감도는 것 같았다. 휴대폰을 쥐고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고민하다 결국에는 짧은 답장을 써서 전송했다.
“지금 봤어요. 답장했어요.”
“나 휴대폰 어학원에 두고 왔어요. Yes인지 no인지 너무 궁금하네요.”
“어학원에 돌아가서 직접 확인해요.”
“그 말은 no라는 거죠?” 브라이언이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Yes일 수도 있죠.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나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을 조금 더 이으려는데 앤워가 나에게 다가왔다.
“둘이 무슨 이야기하는 중이야?” 앤워의 눈이 반짝였다.
“아, 여기 정말 좋다는 이야기하고 있었어. 나 락음악 좋아하거든. 너는 바다 구경 실컷 했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응. 너도 같이 구경하지 그랬어.”
“좀 피곤해서 앉아있고 싶었어. 바람이 조금 불어와서 시원하다.” 나는 괜히 말을 돌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다 되어 브라이언은 다시 어학원으로 돌아갔다. 백발의 뒷모습을 보니 뒤에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앤워가 나와 더 놀고 싶어 하는 기색을 비쳤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 그럼 오늘은 말고 다음 주에 수업 끝나고 같이 놀자!” 앤워가 특유의 방실 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나는 알겠다고 약속한 뒤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브라이언이었다.
‘Yes일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5시에 올드 타운에 있는 카사 데 호세 앞에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