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다리를 건너며 6화

굿모닝 샌디에이고

by 무똥

※ 알림: 이 글은 허구이며, 등장인물과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백발의 젊은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벽면을 따라붙어 앉아있는 학생들 모두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남자가 손을 내밀고 모두에게 파도 타듯 하이파이브를 할 때 나도 수줍게 오른손을 내밀어 부딪혔다. 흘끗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그의 시선은 학생들의 손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굿모닝 샌디에이고! 샌디에이고 이곳저곳에서 재밌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나요? 저는 액티비티 담당자입니다. 매주 여러분이 참여할 재미있는 액티비티를 로비 게시판에 알려줄 거예요. 참여할 사람은 밑에 이름란에 이름을 쓰면 됩니다. 이번 주 액티비티는 샌디에이고 동물원 방문입니다.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기다리니까 저 브라이언이랑 같이 인사하러 가요!”


어학원에서 브라이언이 진행하는 액티비티에 흥미가 생겼지만, 나는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됐을 때 이미 동물원을 간 상태였다. ‘이번 건 패스하고 다음에 뭘 하는지 보고 한 번 참여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게시판을 보다가 뒤를 도는데 로비에 앉아있는 브라이언이 눈에 들어왔다. 로비에는 리셉션 데스크가 있었다. 굉장한 미인인 아프리카계로 보이는 직원과 핑크색 머리가 눈에 띄는 직원 그리고 브라이언 셋이 앉아있었다. 천장이 높고 전면 유리창에서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로비는 늘 밝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로비에는 빵 따위의 간식을 먹거나 서성거리며 친구와 대화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로비와 연결된 발코니에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프랑스 친구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개강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벌써 어느 정도 무리가 지어지기 시작했다. 남미인들은 남미 친구들끼리, 아랍인들은 아랍 친구들끼리, 한국인들은 한국 친구들끼리 뭉치는 게 대반사였다. 나는 같이 정부인턴십프로그램으로 온 한국 친구 민아와 친해졌고, 어쩌다 보니 마드리드 출신의 훌리오랑도 같이 다니게 되었다.


똑똑똑-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인데 누군가 문에 노크를 했다. 열고 들어온 건 브라이언이었다. “미스 신예지? 잠깐 나와볼래요?”

“왜 그러시는데요? 저 뭐 잘못한 건가요?” 갑작스러운 호출에 당황한 내가 물었다.

“네, 맞아요! 아주 큰 일 났으니까 당장 나와요.”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척 브라이언이 대답했다.

“정말요? 무슨 일인데요?” 나는 놀라 물었다.

“하하. 농담이에요. 일단 나와요.”


브라이언과 나는 같이 로비에 있는 테이블로 갔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겁을 먹고 물었다.

“아, 어제 지각했죠? 우리 웰컴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데 예지만 안 돼 있어서 지금 하게 나오라고 한 거예요.” 브라이언은 걱정 말라는 듯이 대답했다.

“맞아요. 알람이 안 울리는 바람에 늦게 일어났거든요. 잠을 조금 설쳤어요.”

“왜요? 고민이라도 있어요?”

“미국에 온 지도 벌써 몇 주가 됐는데, 제 친구들은 다 외국인이고 미국인 친구는 한 명도 사귀지 못했어요.” 나는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브라이언은 짧게 대답했다.


설문조사 문항에 대답하며 계속해서 브라이언과 나는 대화를 나누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조금 무서워요.” 내가 덤덤하게 말했다.

“왜 무서운데요?” 브라이언은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으며 물었다.

“거절당하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요.” 내가 이야기했다.

“받아들여지는 건 무섭지 않아요?” 브라이언이 뜻밖의 질문을 했다.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받아들여지는 게 왜 무섭다는 거예요?” 난 물었다.

“누군가, 혹은 어딘가의 일부가 돼서 특정한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기를 기대받는 게 무섭지 않냐는 의미예요.” 브라이언이 설명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항상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었다. 내 자유는 조금 잃더라도 괜찮았다. 진정으로 연결될 수만 있다면 그런 건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니요. 그런 건 무섭지 않아요.” 나는 대답했다.

설문조사는 진작에 끝났지만 브라이언과 나는 잡담을 하느라 어느새 10분 넘게 로비에 나와 있었다. 이제 슬슬 교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싶을 때쯤 브라이언이 내게 물었다.


“휴대폰 번호… 알려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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