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가 치과에 가는 길은 늘 전쟁터로 향하는 마음이다. 입을 벌리기 전부터 머릿속에서는 각종 상상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이 치아는 살릴 수 있을까요?', '마취는 제대로 될까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마나 나올까…?'라는 물음표가 대기 중이다. 그러다 의사가 입을 열어 “겁주는 건 아니고요”라고 말하는 순간, 그 모든 상상은 '이건 뭘 겁준다는 거지?'로 귀결된다. 이제는 겁을 먹어야 할지, 안심해야 할지조차 헷갈린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증상이 지속되거나 심해질 경우 바로 발치하셔야 됩니다.”
처음부터 위와 같이 엄중한 경고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만의 하나의 상황에 대비해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정도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일부러 겁주는 거는 아니에요
라는 말을 의무사항처럼 붙여 설명하게 된다. ‘아니 뺄 수도 있다고 하면 치료를 하란 말이야 말란 말이야.’ 환자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나름의 공감 능력으로 상상해 본다. “그래서 치아를 뺄 수도 있다는 거네요?” 내가 치료받기 무서울 정도로 이야기했나 싶은 날은 두 번 세 번, 겁 주는 게 아니라고 도돌이표처럼 반복해서 전달하곤 한다. 100프로 성공하는 치료라는 것은 없기에 최대한 주의사항을 많이 알려주려고 하지만 어쩌겠나. 나의 손은 인간의 범위에서 최대한 노력하고, 나머지는 신에게 맡길 수밖에.
때때로 이런 솔직함은 환자에게는 책임 회피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 사람은 나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라는 의심을 품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조금 다르다. 의사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단순히 위로가 아니다. 이는 내가 가진 모든 지식과 기술을 동원해 최적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런 굳은 다짐에도 과학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품고 있고, 인체의 신비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가진다.
근관치료의 성공률은 질병 관리청에 따르면 60~90%, 10년 성공률은 약 70~80%로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다. 치아나 치근 주위의 환경에 따라 그 변동의 폭은 커진다. 의약품도, 어떤 치료나 진료도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치료를 진행하지 않았을 때보다 하였을 때, 부작용에 비해 이점이 크다고 판단되면 그 어떤 치료든 시도해보려고 한다. 의사마다 진료 스타일이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의료진들은 환자에게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알려주고, 선택의 주도권을 주려고 노력한다. 치료라는 것은 의사와 환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환자는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고, 의사는 그 결정을 돕기 위해 충분히 설명하는 단계를 거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다.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도록 안내해야 한다. 이 미묘한 균형이 어렵지만, 바로 그 점에서 전문기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치료라는 것은 사실 예측 불가능한 확률 싸움입니다. 하지만 환자분의 신체 상태와 치료 계획을 바탕으로, 최선의 길을 찾겠습니다."
이 한 마디에 담긴 무게와 진정성을 함께 느껴주길. 그리고 그 무게가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전달되길 기대한다. 힘없이 주저앉아 포기하는 것보다 다가오는 불확실함을 안고도 다음 스텝으로 용기 있게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걸어가야 될 길이다. 환자와 의료진, 서로를 믿고 의지할 확률에 오늘도 배팅을 건다. 나의 확률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