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시간

by 클로이

처음으로 고백하기를, 나는 항상 불안하고 공허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밝고 의욕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겠지만, 단언컨대 나의 내면은 한 번도 밝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웅크리고 겁을 먹은 작은 동물처럼, ‘불안함’이 나의 주된 정서였다. 안정적이면서 티가 나지 않는 불안함, 초조함, 불만족을 가진 사람. 지금에 와서야 들여다본 나의 진짜 내면은 나 자산이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나의 모습과는 꽤나 달랐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해온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마주 본다는 것은 나 자신의 좋은 점만을 보고 타인의 안 좋은 점만을 보려는 마음의 습관을 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마음이 행복하지 않아, 이리저리 상처 입고 긁히고 피가 나던 시간들 덕분이다.


‘행복하지 않다’라는 감각이 익숙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비참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불안함 – 후에 나의 주된 정서가 될 그것-을 물려주었고 끊임없는 부부싸움과 경제적이나 정서적으로나 풍족하지 않은 집안 분위기는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은 그런 것이다. 마치 크레파스 통에 빨주노초파남보의 예쁜 색깔들이 많은데 나 혼자서 검은 크레파스를 들고 예쁜 색깔의 크레파스는 주눅이 늘어 흘긋흘긋 쳐다보는 것. 하지만 집어 들 엄두조차 못 내는 것. 그런 억울하고 원통한 것이다. 불행히도, 이때의 크레파스는 교환 및 재구매가 불가능해서 훗날 누구에게나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런 어린 시절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감정적으로 부모님과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사실상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일들이 빨리 지나가버리도록 마음을 쓰지 않으려 했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악착같이 기를 쓰고 모든 감정을 차단했다. 조금만 손을 대도 터질 것만 같은 물풍선 같은 마음을 안고 바득바득 살아나갔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집중할 것이 필요했다. 정신을 딴 데로 돌릴 데가, 절실했다.


내가 몰두한 것은 공부였다. 나는 공부가 좋았다. 일정한 노력을 투자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의 것.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나에게도 검은색으로 칠해진 나의 어린 시절을 벗어날 기회가 올 것 같아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던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취업을 앞두고 시험공부를 준비할 때도, 나는 늘 그랬듯이 무엇이든지 열심히 했다. 하지만 몰랐다. 그러한 태도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내가 열심히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우물을 메우기 위해서 자신에게 엄격하게 행동하며 나의 모든 행동을 목표 달성을 위한 것으로 설정해 버린 것이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 돌아갈 보금자리,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따뜻한 장소, 그리고 그 비슷한 어떤 가슴 뭉클한 것을 위해서 늘 노력해왔던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겉으로는 남들보다 빨리, 더 잘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나면 밀려드는 허무함에 어쩔 줄 몰랐다. 그래서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연애를 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늦게 시작한 연애라 남들보다 환상도, 기대도 두 배로 컸으며 사람 보는 안목도 형편없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지나치게 거리를 두는 것에 익숙하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자에 대한 불신감이 지나치게 높아 연애가 잘될 리가 없었다. 처음 맛본 연애는 짜릿하고 달콤하다가도 그만큼 뒤죽박죽이었다. 만나는 남자마다 ‘나와 같이’ 큰 감정적 결핍이 있는 것은 물론이었고 (귀신같이 그런 사람들에게만 끌렸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에 진절머리가 났다. 연애가 끝나고 다시 시작될 때마다 자존감이 한없이 치솟았다가 다시 낭떠러지로 나려갔다가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남자가 나에게 잘해줄 때는 마음의 공허감이 일순간 메워지는 것 같다가도 의심스러운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이 이토록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애초에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만난 것은 나인데, 그들을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나의 만족만을 생각했던 나에게 더 큰 문제가 있음을 모른 채 그들을 미워하고 오랫동안 원망했다. 나의 결핍을 메워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한없이 비난했다. 나는 그 누구도 전혀 사랑하지 않았으면서.




몇 번의 짧은 연애가 끝나고 내 마음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다른 사람으로 나의 결핍을 채운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미성숙한 인간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그, 불쌍한 예쁜 크레파스를 갖지 못한 그 소녀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안정적이고 행복한 가족에 대한 결핍.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한 노력, 성취, 다시 노력.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이 나의 ‘패턴’ 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대로라면 나는 평생 불행할 거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일을 왈칵 시작했다. 각종 심리학 관련 서적 읽기부터 명상, 요가, 운동, 춤, 외국어 공부에 이르기까지 나 자신을 다듬고 계발시킬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습관을 버리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법도 연습했다. ‘불행’도 나 자신의 ‘성향’ 임을 깨닫고 ‘행복’한 ‘성향’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항상 제자리였다. 모든 행동이 결국에는 어떤 목표(마음의 충족)를 의식하고 하다 보니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결국에는 그날 계획한 일을 하지 못하면 스스로 질책하는 성향이 덤으로 따라왔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행복하지 않아서 행복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 노력이 버거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력을 그만둬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 속에 내 마음은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 단계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답답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변화는 조금씩 일어났다. 사실 변화는 느리지만 서서히 내 마음속으로 퍼져가던 중이었다. 나는 항상 이것저것 바쁘게 ‘행복해야 한다’라는 일념 하에 살던 중이었는데 문득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왜 이것을 하는지 모를 만큼 몰두하게 되는 것들, 예를 들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리기 하기, 집중하여 공부하고 뿌듯함 느끼기, 매일 먹는 밥이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감사하기, 자기 전 일기 쓰며 내일을 기대하기 등. 일상의 특별할 것이 없는 행동인데도 특별한 것처럼 하게 되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생긴 것이다. 그 순간에만 온전히 집중하여 마음을 텅 비우는 것. 그 순간만큼은 결핍도, 성취도, 불안도, 불행도, 또한 행복도 없었다. ‘아, 행복 역시 행복을 의식하지 않아야 오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결국 행복이라는 것은 행복하다고 특별하게 느끼지 않을 만큼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순간들이 지속될 때 오는 것이다. 별일은 없지만 안정되고 평화로운 일상, 나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토록 흔들렸던 지난 시간들이, 결국에는 평화로운 일상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허무했다. 항상 옆에 있었는데. 왜 보지 못했을까? 그런 나의 어리석음조차 반갑게 느껴졌다.


새로운 평화와 함께 나는 다음의 원칙을 세웠다. 지나간 일에 마음 쓰지 않고 앞으로의 일에도 마음 쓰지 않기. 모든 일에 기대하지 않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그 순간에 집중하기. 스스로 결핍되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래서 채워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러한 삶의 태도를 가지니 지난 20년 하고도 몇 년 동안 가졌던 나의 오래 묵은 자아가 고개를 쳐드는 것이 느껴졌다. ‘난 너무 불쌍해, 나는 이런 불공평한 세상에서 인정받고 보란 듯이 잘 살 거야, 두고 봐!’. 이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다시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늘 그랬듯이 오늘도 어제처럼 살 거고, 내일도 오늘처럼 살 거야, 그게 다야!’. 사실은 내 마음가짐만 바꾸면 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이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 인생이 항상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다. 손에 쥔 검은 크레파스를 예쁜 원색으로 바꾸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몰랐던 것이다. 검은색 크레파스도 마음가짐만 다르게 하면 더없이 멋진 색깔이 되는 것이고, 크레파스가 싫으면 위에 물감을 칠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도 싫으면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 인생에서 나는 항상 자유로웠으며 선택권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자유롭다.



물론 앞으로도 내 인생에 시련은 많을 것이다. 어쩌면 크레파스로도, 물감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안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또 곤두박질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런 일들을 또 흘러가게 두면 되는 것이라는 이상한 배짱이 생겨버렸다.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던 성향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초연한 긍정’이라고 해두자. ‘행복도 좋고 불행도 좋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평화로운 일상은 항상 내 곁에 있다.’라는 내 마음속의 작은 소리, 이제 이리저리 흔들렸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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