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가 되는 말

상처를 주고 받는 다는 것

by 클로이


어느 날, 상대방이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 마음 속에 확 꽂힐때가 있다

그때가 그랬던 것 같다. 상대방은 나와는 완전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는데(자유분방하고 친근하고 제멋대로다)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 같다(순화한 표현)'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왜 세상은 서로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게 해서 기어코, 듣기 싫은 말을 듣게 하는지.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순간의 배움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그 말은 내 마음속에 계속 남아서 맴돌았다. 왜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까? 언제부터였을까? 원래 그랬던 걸까? 알 수 없는 내 자신에 관한 질문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껴지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사람에 관한 깊은 불신과 실망, 원망이었다. 그것만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순간 내 치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다. 항상 느끼지만, 내가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은 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쉽게 속일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 자신이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도움이 되고 싶어하고, 친근하게 대하는 내 모습 속에 숨겨진 깊은 불신과 실망감. 몇 십년 동안이나 묵혀져 있던 세상에 대한 미움과 슬픔, 공감 받지 못한 슬픈 어린아이의 모습….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내가 도리어 비수가 되는 말을 하게 된 것은. 대상은 우리 반의 한 학생이었다. 학기초부터 도무지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거의 10시간쯤) 잠만 자는 그 학생에게 좋게 좋게 타일러 보려다가, 결국엔 내 본심이 나왔다.


'너는 밝은 척 하지만 우울해 보인다.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 보인다'


그 학생은 그 날 양호실에서 하루종일 누워서 울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비수같은 말의 칼날에 찔려 자신의 숨겨왔던 모습을 들킨 기분이었을 것이다. 상처줄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처를 주게 되어버렸다. 상처를 받았던 것이, 상처를 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다시 한번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쩌면, 밝은 척 하지만 우울해 보이고,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 보이는 것도 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일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에, 그 학생에겐 진심으로 사과를 했고(여전히 계속 잠만 자기는 하고 우리는 가까워지진 못할것이다..), 나에게 비수를 꽂았던 그 사람과도 앞으로 친해지진 을것 같다(성격이 너무 달라서 불편하고 나는 그 사람이 재밌긴 하지만...).



그러나 일주일 사이에 겪었던 이 경험이 나에게 시사하는 바는 이것이다. 우리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만나고, 좋은 말만 주고 받기를 원한다면 절대로 내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은 알 수가 없다. 때로는 너무 좋은 말만 주고받는 것은 가식적이고 의미가 없지 않은가. 내가 겪는 모든 '불쾌한' 경험이나 순간순간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일깨워주는 (상처 받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부르는) 귀중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모든 만남과, 순간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와 정반대의 불편한 사람들이 그것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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