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죽을 거야

내가 죽고 싶었을 때

by 클로이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누군가의 죽음에 마음 아픈 이들이 눈에 자꾸 밟힌다..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브런치 이웃님들, 그리고 학교에서도.


특히 학교에서는 특히 삶의 의지가 없고, 자살시도를 하는 학생들은 항상 있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했다.


나에게는 죽음, 을 생각하면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당연히 자동적으로..


59년생 우리 엄마는 48살에 돌아가셨다.

죽기에는 젊은 나이다.

그것도 갑자기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엄마가 죽은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잠들어있는 엄마의 모습과, 화장하는 장면과 유골함도.


그리고 14살의 나는 그때부터 철저히 혼자서 살아왔다. 엄마가 갑자기 죽은 후, 아버지도 동생도 모두 소통하지 못한 채 멍하니 살았다.


특히 아버지와 나의 갈등은 심각했다. 엄마가 없다고 엄마가 하던 일을 나한테 떠맡기려는 아버지, 거기에 반항하던 나.

나는 엄마 잃은 아이로 위로받고 싶었고 아버지는 원래도 방황하던 사람인데, 엄마의 죽음 이후로는 더 방황했다. 아마 나와 동생을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런 날을 보내던 중,

나에게 잔소리를 하던 아버지에게 말했다.


한 번만 더 이래라저래라 하면,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죽을 거라고. 닥치라고.


아버지는 그 후에, 충격으로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


사실, 그전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왜 안 했겠는가. 나는 이미 정상적인 삶에서 많이 멀어져 있었다. 또래 소녀가 겪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이 겪어서 삶이 고통이자 고문이었다.


그런데도, 정말로 뛰어내려 죽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에 왜 삶의 의지가 차올랐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엄마가 죽은 이후부터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내 팔자에 죽게 되는 날 전까지는 엄마 몫까지 살아내겠다고.


베란다 밑의 풍경을 수시로 내려다보면서도 사실 정말 죽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에 나는 본능적으로 삶의 이유를 찾았다. 그게 나의 버팀목이었다.


엄마의 죽음.


엄마 몫까진 살아보겠다고.다른 이유는 없었다.



작년에, 죽고 싶다는 한 아이를 여러 번 마음 쓰며 상담했었는데, 올해는, 그 아이에게서 학교 다니는 것이 즐겁다는 편지를 받았다.


순간 눈물이 펑펑 났다.


그래, 나는 오기로라도 살아있길 잘했구나.

이거면 됐다.


왠지 그동안 죽지 않고 버틴 선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릴까 했던 그때의 그 소녀와 지금의 나는 그렇게 크게 다르진 않다.


죽고 싶을 때, 힘들 때, 뭐 같을 때 나의 결심을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간다.

삶은 지리멸렬하지만 살아볼 가치는 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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