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잘 사는 방법은 없다

by 클로이

아무래도 하루 종일 학교에 있다 보니,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글쓰기의 소재를 찾게 된다.


특히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이들의 질문보다는 그 질문에 대한 나 스스로의 대답에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그렇게 대답을 해도 괜찮은가?, 교육적인가?'보다는, 나의 대답에서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관념을 생각하는 것을 즐긴다. 그래서 상담을 하거나, 문제에 대해 대답할 때는 내가 우연히 내뱉은 말을 내내 곱씹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답이 보여주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닫게 되고 가끔씩의 유레카 모멘트가 있다. (드디어 머리가 돈 것일까?ㅎㅎ)


9반의 학생이 며칠 전에 질문을 했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 사실 이 질문은 일 년에 한 30번쯤 받는 '단골 질문'이다. 영어 공부를 다른 것으로 치환해도 마찬가지다. 수학 공부, 국어공부, 전반적인 수능 공부 등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의 '방법론'에 관한 질문들. 학생들한테는 더 날카롭게 대답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정신 차리라고), 그날따라 말이 그냥 입에서 툭, 내뱉듯이 이렇게 나왔다.


방법에 대해 묻는 것은 결국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야.

다이어트로 치면, 안 먹어야 살이 빠지는데, 안 먹을 마음은 없고, 먹고 싶은 걸 다 먹으면서 살을 빼는 방법을 찾는 건데, 그게 되겠니?

대답을 하고 나서 아, 너무 팩트 폭력을 했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질문을 한 학생은 바로 수긍했다. 애초부터 공부 방법에 대해 '막연하게' 묻는 이유는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투자한 시간 자체가 없기 때문에 방법에 대해서도 모를 수밖에 없었고, 자신의 공부 스타일도 스스로 모르고 질문의 의미가 없었다. 일단은 공부를 해나가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공부한 것을 가지고 물어보러 오라고, 마무리를 하였다.


왠지 모르게 그날의 대화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방법에 대해 묻는 것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다'.


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의 마음공부 채널의 영상을 보다가 튜버와 한 작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마음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방법을, 물어보는 유튜버에게 나이가 지긋한 노작가는


'현재를 살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세요, 과거를 반성하지 말고, 언어에 사로잡히지 말고, 다만 순간순간 변하고 있는 지금을 사세요.'라고 직언을 던졌다.




그 순간, 내가 9반 아이에게 했던 말을 돌려받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 마음이 힘들어서 마음을 공부하고, 감정을 탐구하고, 그러다가 여러 실수를 하고, 별 짓을 다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게 없어서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책을 읽고, 또 읽고, 멘토를 찾아 나서고 혹하는 구절이나 개념이 있으면 빠져들었다.


이런저런 지식이 쌓이고 내 감정이나 타인의 감정에도 정통하게 되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있는 그대로의 '힘든 나, 서툰 나'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쓸 때는 자신을 마주하게 되지만 그 순간뿐이다.)


나는 잘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고, 그러려면 일단 지금 내 레벨에 충실해야 하는 건데, 레벨 업하는 방법을 찾고 또 찾았구나. 지금을 피하기 위해서.


아, 그냥 살면 되는 거구나. 방법을 찾지 말고.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노작가의 따뜻한 눈빛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 있는 그대로 살아보자. 내 삶의 방법은 내가 찾아보자. 치트키 같은 건 원래 없구나, 지금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는 싫고, 빨리 마음은 편해지고 싶고, 그래서 방법을 공부했구나. 애들하고 다를 게 없구나.


자존심이 강하고 직선적인 성격이니 뭐든지 앞서고 싶고, 급하고, 알려고 하고, 그러니 더 모를 수밖에.... 나는 애매한걸 못 견딘다.


나의 뿌리 깊은 강한 에고가 새삼 느껴졌다.


평범한 학생과의 짧은 대화가 여유를 가지고, 지금의 나를 살아보자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내일은 9반 아이에게 공부가 잘되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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