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찍은 사진을 구경하다 먼지털이 닮은 장발 복돌이 사진을 발견했다. 잠시 미용을 할 수 없던 때가 있었는데 그 쯤 찍은 사진이었다. 왕자님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에 익숙해 털복숭이 때의 모습을 잊고 있었다.
그 당신엔 복슬복슬 털 자란 모습도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모습과 대비되서 보니 흑역사 사진을 찾은 것처럼 빵 터졌다. 혼자 깔깔 거리며 웃다가 엄마랑 언니가 있는 단톡방에 사진을 전송했다.
"복돌이 봐봐. 아 웃겨."
"ㅋㅋ 우리 이 누더기를 어찌하누. 내가 복돌이 털 자르고 얼마나 속 시원했던지."
이때 언니는 복돌이 털을 다듬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고 나랑 엄마는 이대로도 예쁘니 괜찮다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엄마는 이쁘기만 한데." 역시 내리사랑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고 휴대폰 배경화면 사진을 이걸로 당장 바꾸셨다. 존재자체가 귀여운 녀석이니깐 이 모습도 귀엽고 예쁘긴하지만 사람이나 개나 털발이 중요하다는 걸 새감 깨달았다.
하지만 복돌이가 잠시 장발로 지낼 수 밖에 없었던 건 슬픈사연이 있다.
항상 털이 길기 전 애견 샾에 가서 짧게 다듬어 주었는데 그날은 애견 샾 사장님이 그러셨다.
"노견은 미용하다 놀라 심정지가 올 수도 있어요."
그것을 감수하고도 미용을 하겠냐는 물음에 내가 놀라 심정지가 올뻔했다. 곧 여름이라 털이 길면 더울 것이 걱정되긴 했지만 목숨을 담보로 털을 자를 순 없었다. 얼음손수건도 올려주고 돌아다니는 길목에 미니 선풍기도 틀어주며 우리는 여름을 보냈다. 털찌니깐 점점 웰시코기를 닮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애견용 미용가위를 손에 들었다. 가위 소리가 무서웠는지 털 자르는 걸 안 좋아해서 한 번에 다 자를 수 없어서 잘 때 등 한 줌, 또 잘 때 얼굴 한 줌, 또 잘 때 다리 한 줌씩 여러 날에 걸쳐 털을 조금씩 다듬었다. 처음엔 복돌이가 싫어하니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점점 미모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유심히 언니 가위질을 지켜봤다.
집에 언니는 없었고 복돌이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복돌이 털을 예쁘게 다듬어 줄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에 휩싸여 비장한 눈빛으로 미용가위를 집어 들었다. 마음과는 달리 내가 털 자른 곳은 쥐 파먹은 곳처럼 털이 쑥 들어가 수습불가 상황이 됐다. 엄마들이 집에서 아이 앞머리를 잘라주려고 도전했다가 너무 짧아지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 미용은 쉬워보이지만 엄청 어려운 영역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언니에게 딱 걸려 한참 잔소리를 들은 후 다시는 가위를 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날부터 미용은 언니와 엄마의 담당이 되었다. 요즘은 신뢰가 생겨 엄마가 바리깡으로 털을 밀어주어도 편안하게 맡겨준다. 예뻐지는 중이라는 걸 복돌이도 아나보다. 복돌이는 홈케어를 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