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럽다 라는 말의 뜻을 사전에서 살펴보면 '언행이나 상태가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다'라고 나와있다. 유난스럽다는 말은 보통 부정적인 표현을 할 때 많이 쓰이지만 나는 특별한 데가 있다 쪽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스스로 생각해도 복돌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유난스럽다. 하지만 나는 나의 그 유난스러움이 좋다.
나의 유난스러움을 나열해보자면, 복돌이의 생활 루틴은 규칙적이지 않고 보통 낮에 자고 오후쯤 깨어 밤과 새벽에 돌아다닌다. 하루에 밥을 두 번 먹는데 그래서 두 번째 밥은 새벽 2,3시쯤일 때가 많다. 그럼 나는 자다 일어나 꾸벅꾸벅 졸면서 먹이기도 하고 그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가 먹이기도 한다. 스무살을 넘기고 부터 고개를 숙여 스스로 밥먹는 것을 잘 하지 못해 사료를 한알한알 입에 넣어줘야 한다. 우리는 밥먹는 포즈가 있는데 벽에 기대 다리를 벌리고 앉은 다음 그 사이로 복돌이를 앉히고 사료를 한알 한알 넣어주면 오도독 오도독 맛있는 소리를 내며 씹어먹는다. 새벽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생활을 하면 피로 곰이 어깨에 백만 마리 붙어있는 것처럼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복돌이 배가 빵빵해져 있으면 참으로 행복하다. '힘들지만 좋다'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복돌이는 내 방에서 자고 있었고 나랑 엄마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복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나 후다닥 방으로 뛰어갔다.
"복돌이 일어난 거 같아"
"엄마는 아무소리도 못 들었는데?"
방에 들어가보니 일어나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복돌이를 앉고 거실로 나오며 의기양양하게 엄마에게 말했다.
"복돌이 깻어 엄마"
미세한 소리도 천둥처럼 들린다. 노견과 살다보면 언젠가부터라는 단어가 생기게 된다. 언젠가부터 누워있다가 일어나려면 많은 버둥거림을 해야한다. 그래서 체력을 빼앗기지 않게 하려면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한다.
엉덩이를 똥그랗게 말면 응가하려는 신호고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꼬리가 하늘로 솟으면 쉬하겠다는 자세다. 큰 누나의 발견으로 응가하거나 쉬하려는 신호를 포착하면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영상으로 남기고 싶어 졸졸 따라다녔다. 카메라만 들이데면 신기하게 다른 포즈로 바꾸거나 도망가서 그 순간을 포착하기 어려운데 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를 들이데면 응가를 하려다가 안하고 쉬를 하려다가 안한다. 그러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얄밉게도 그 때 응가를 하거나 쉬를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누나가 아니다. 파파라치 처럼 딴 청 피우는 척 하다가 몰래 그 모습을 찍었다. 너무 좋아서 엄마랑 언니 단톡방에 공유했는데 복돌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라는 꾸지람을 들었지만 너무 귀여운걸 어떻해.
평상시에는 초코알 박아논 것 처럼 눈이 동그란데 졸리면 눈이 반쯤 감겨 여우 눈이 되어 맴맴맴 돌거나 식탁의자 다리에 기대어 존다. 어릴 때는 졸리면 자기 집에 들어가 벌러덩 누워 잤는데 요즘은 졸리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안아다 눕혀주면 안잔다고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또 여우눈이 되어 돌아다닌다. 그래서 나도 낮잠 잘 겸 배 위에 눕혀 토닥토닥 해줬더니 누나의 폭신한 배가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 때부터 엄마도 복돌이가 여우 눈이 되면 나에게 데려오신다.
"복돌이 졸리데."
밥도 잘 먹고 잘 놀다가 갑자기 힝힝거리면서 거실을 돌아다녔다. 귀를 만져보니 미열이 나고 코도 미지근해 있었다. 그래서 언니에게 SOS를 했다. 언니 직업이 한약사라서 우리집에 아픈증상이 생기면 언니가 그에 맞게 약을 준다. 전문가는 역시 달랐다. 나는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는데 언니는 대번에 이것 부터 물었다.
"오늘 응가했어?"
"아니 안 했어."
"응가하게 배 문질문질 해줘. 응가하는 약 지어갈게."
난 몰랐는데 응가는 정말 중요한 거였다. 응가를 못해 큰일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하면 응급실을 가기도 한단다. 복돌이 배를 문질 문질 하고 응가하는 약을 먹이고 수시로 복돌이를 따라다녔다. '응가를 언제 하려나.' 신기하게 응가를 하니 미열도 사라지고 힝힝거리던 것도 사라졌다.
손가락 하나 까닥이고 싶지 않은 날, 씻지 않아 꼬죄죄한 모습일 때 산책 한 번 빼먹을까 고민한다. '복돌이 누나 너 나중에 후회 안하겠어?' 내 안의 자아가 나를 다그치면 번뜩 정신을 차리고 산책 준비를 한다. 스카프에 벌레 퇴치제를 뿌려 목에 둘러주고 복돌이 몸통에 하네스를 채운다. 나는 모자 푹 눌러쓰고 대변봉투와 휴지를 주머니에 넣고 복돌이를 안아 집 밖으로 나오면 산책시작이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날이면 나는 복돌이랑 그림자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런저런 쓸떼없는 이야기를 하며 동네를 어슬렁 걸어다닌다. 오늘도 복돌이 다리 근육 유지와 비타민 D흡수를 했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밥도 나랑 먹고 잠도 나랑 자고 산책도 나랑 하는 복돌이와 나는 짝꿍이다. 나는 복돌이 누나인 게 좋다. 언제나 유난스럽고 싶고 그래서 나와 더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 각자 갖고 태어나는 수명이 다르다는 것이 속상하지만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리고 건강하게 있다가 보내주고 싶다. 부디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건강하기를 매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