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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잔향 15화

땅을 일구는 일

by 이제이

내가 땅을 일구겠다고 마음먹고

곡괭이를 손에 쥐면,

그날부터 나는

비옥한 땅이 될 때까지

고랑을 파고, 또 판다.


땀이 밴 흙 위에

곧고 깊게 고랑을 내고,

그제야 조심스레

씨앗 하나, 심는다.


농사가 잘되든 안 되든

햇살이 따갑든 비가 오든

나는 그 땅을 떠나지 않는다.


수확이 올 때까지,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익을 때까지

나는 그저 묵묵히,

또 하고, 또 한다.


나는 안다.

땅은 쉽게 열리지 않지만

한 번 마음을 주면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나는,

내 손에 쥔 곡괭이 하나로

오늘도 다시

고랑을 판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 손이 파낸 고랑마다

어딘가에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고된 날이 쌓일수록

흙 속의 뿌리는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나는 계속 판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곧 무엇인가 솟아오르리라.


나는 곡괭이를 놓지 않는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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