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로봇 장난감을 고르고
구체적인 모델명까지 적었지만
양말 속엔
모나미 색연필 한 세트가 들어 있었다
그다음 해엔
소풍날 비가 와서
엄마가 싸준 김밥을
교실 책상 위에서 먹었다
마시는 우유까지 따뜻해서
그날의 즐거움도 눅눅하게 젖었다
첫 시험에서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막상 받아 든 성적표엔
빨간 줄 하나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생일엔 친구들이
온다고 해놓고 안 왔고
좋아하던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전근을 가셨다.
친해진 아이는
또 다른 친구와도 금세 친구가 되어버렸다.
실망은
큰 사건이 아니었다
늘 기대했던 만큼,
혹은
기대하지 않아도 조용히
찾아오는 일상의 기척이었다
그 실망들이 모여
나를 무디게도 만들었지만
가끔은 어렴풋이
단단하게도 만들었다
그때 그 색연필로
처음으로 편지를 썼고
비 오는 소풍날
창밖을 보며 시를 적기 시작했으며
빨간 줄 옆에는
"다음엔 꼭 웃자"라고 써두었고
그리고 어느 해 생일,
초는 켜졌지만
박수는 없던 그 조용한 방에서
나는
촛불 대신 마음을 불었다
작지만 꺼지지 않는 내 쪽불 하나가
그때부터 나를 비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