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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르벌 Sep 13. 2023

독립을 위한 작은 발걸음

(1) 잠시 쉬어 가 보기

 시즌방 없이 보드를 타는 건 거의 5년 만이었다. 잠시 쉬어 가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시즌방을 안 했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우선 스키장 보관함과 시즌방에 두고 다니던 온갖 보드 장비들을 매번 들고 가야 해서 몸이 힘든 건 기본이었다.


 생각보다 숙박 예약도 쉽지 않았다. 주말의 스키장 리조트는 항상 예약이 꽉 차 있었고, 주변 펜션들도 편히 누워 쉴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한 달 전에 알아봐야 겨우 예약할 수 있었고, 스키장 주변의 렌탈샵에서 선점해 놓은 콘도 예약을 양도받아 가기도 했다.


 콘도를 예약해서 가더라도 체크인·체크아웃 시간을 꼭 지켜야 하는 것도 시즌방 생활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불편했다. 시즌방은 아무 때나 들어갔다 나올 수 있었으니까….


 시즌방이 없어 여러모로 힘들긴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 꼭 필요한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시즌방에 있다 보면 너무 편하다 보니 게을러지는데, 몸을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잡생각이 안 나고 오롯이 보드를 타는 즐거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2) 잘 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기

 카빙턴을 하고 싶은데 왜 안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시즌방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다.


 (다이애나) “겁이 나서 그렇지, 뭐. 속도도 조금 더 빨라야 될 거 같고, 턴할 때 더 누워야 해! 각도가 아직 좀 부족해.”

 (방울) “난 구르벌이 카빙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내가 보기엔 조금씩 늘고 있어.”

 (나무) “조금씩 되기는 해. 지금 카빙턴 문고리 딱 잡고 있는데, 뭔가 그 문을 넘지 못하고 있달까?”


 생각해 보면, 처음 보드를 배우고 나서 낙엽타기만 계속하다가 남들은 금방 하는 S자 턴에 성공하기까지, 나는 정말 오랜 기간이 걸렸다.


 그래, 나는 원래 느리게 나아가는 사람인 걸 잊고 있었다. 조급하게 하려고 해 봤자 어차피 나는 남들보다 천천히 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걸 자꾸 잊어버리고 ‘빨리’, ‘잘’하고 싶어 한다.


 '왜 잘해야 하는 건데? 즐겁게 타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대충 타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도 편해졌다.




(3) 보드 장비 직접 관리해 보기

 2022년 겨울, 나를 돌아보며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적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언가 할 줄 모르는 채로 계속 도움을 받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구나. 그럼 직접 해 보면 되겠네! 내가 할 줄 알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좀 더 편하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시즌 시작 전에 스크래퍼, 나일론 브러시 등을 구매해서 지난 겨울에 왁싱*해 놨던 데크 스크래핑을 시도해 봤다. 완벽히 왁스를 벗겨내진 못했지만 처음 치고는 잘한 것 같았다. 이틀 정도 손목이 욱신거리긴 했지만….


 ※ 데크에 왁싱을 하는 이유
건조한 피부에 로션을 바르는 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왁스를 발라 주면 습기에 의한 데크 변형을 막아 주고, 베이스를 보호해 활주력도 좋아진다. (얼마전에 안 사실인데, 스키장 근처의 수리샵에서 5천 원을 지불하면 스크래핑을 해 준다. 하하하, 난 왜 스크래핑 도구를 산 거야?)


 며칠 전에는 스노우보드용 드라이버를 사서 데크와 바인딩을 분리*했다. 스크래핑도 하고 바인딩도 직접 분리해 보니, 나도 이제 장비를 직접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비시즌에 바인딩을 분리해서 데크를 보관하는 이유
바인딩 나사(볼트)를 풀지 않으면 데크에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져 데크에 변형이 생길 수 있다.


 “난 이제 스크래핑도 할 줄 알고, 바인딩도 직접 풀 수 있는 멋진 여성이야!”




(4) 사람은 도움을 주고 받는 존재임을 인정하기

 이것저것 직접 해 보니 참 별것 아닌데도 나는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사나 싶다. 이런 거 몇 개 할 줄 안다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고, 무엇 하나 완벽하게 해내질 못하는 사람인데.


 이런 생각이 거듭되다 보니, 앞으로는 남들에게 도움을 받더라도 자존심 상한다 생각하지 않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나도 독립적인 주체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마찬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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