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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르쯔 Feb 06. 2021

"아니, 누가 해달라고 했냐고"

 과거에 나는 착한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착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착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대부분은 착하기 때문에 상담을 받는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에 있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 등을 억압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의미한다.


 착한 사람은 사회에서 불리한 경우가 많다. 오해는 하지 마라. 착한 사람 출신으로서 전국에 있는 착한 사람들을 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착한 사람'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 재미는 없지만 그냥 착한 사람? 개인마다 착한 사람의 다양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착한 사람은 '눈치 보는 사람' 이다. 예전에 스승님과 대화를 하다가 내가 인간관계에서 겪은 불만을 꺼냈다. 스승님은 차분히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뜬금없이 말하셨다.


"너한테 원인이 있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온갖 배려를 해주는데 상대방은 몰라주는 게 아쉽다는 이야기였던 거 같다. 나를 위로하고 상대를 같이 비난해줄 거라 생각했던 스승님은 오히려 내가 문제라고 단언하신 것이다. 순간 뇌 정지가 와서 내가 어버버하고 있자 말을 이으셨다.


"사람은 항상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기대를 해. 그 기대가 사람을 괴롭히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상대에게 선의를 베풀었고 적당한 배려를 해줬음에도 상대가 늘 이기적으로 구는 게 내 잘못인가? 그 사람의 인성문제 아닌가?


"제가 그 사람한테 남들이 감탄할 정도로 잘해줬는데 사소하게라도 보답하지 않는 그 사람의 문제 아닌가요?"

 

 그래. 내가 큰 걸 기대한 게 아니다. 내가 항상 100을 줬다면 10이라도 상대가 돌려줘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언제부터 한국인의 정이 이렇게도 메말랐단 말인가. 스승님은 늘 그렇듯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셨다.


"그래서, 상대가 언제 해달라고   있냐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억울하고 화가 나면서도 한 번에 납득이 갔다. 맞다. 상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배려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내가 그 사람의 눈치를 보고 내가 잘해주고 싶어서, 막연하게 나의 행동과 말이 기분 좋게 해 줄 것 같아서, 고맙다는 말, 좋은 말을 듣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던 보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상처 받고, 서운하고, 미워했다. 상대를 위한다는 그럴듯한 마음 안에 내 진짜 욕심을 숨기고 있었다.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사랑을 받고 싶어 사랑을 주는 척한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마음이 비겁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봉사하는 마음 안에는 봉사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스승님의 말처럼, 우리의 마음은 항상 양가적이다. 오히려 이런 양가적인 마음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일 때 '나'를 조절할 수 있다. 내 행동과 말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지 않을 때, 상대를 위한 순수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이  이후로  삶은 너무 편해졌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과거보다는 적게 기대하고, 상처 받고, 미워한다. 관계에서 눈치 보지 않는 것은 이기적으로 굴라는  아니다. 관계 속에서 사람에게 질질 끌려다니지 말고  의지로 걸으라는 의미다. 삶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관계에서 상처 받지 않는 방법' 들을  쇼핑하듯 찾아다니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러고 나서 상처 받지 않는 기술들을 배워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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