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르쯔 Feb 12. 2022

자존감과 가스라이팅

 솔직히 가스라이팅의 유행이 금방 식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가만히 있어도 가스라이팅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패턴도 다양하다. 가족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 연인 관계에서, 친구 관계에서 등.. 사람들은 자신이 가스라이팅의 억울한 피해자임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대부분은 모순이 있었다. 많은 가스라이팅에 대한 영상과 글들이 가스라이팅의 가해자가 모든 원인이라 말하고 있다. 피해자도 언제든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가스라이팅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정서와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 같다. 당연히 가스라이팅을 당해서도 안되고 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나의 자아가 조금 위협받아,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스라이팅으로 돌려 타인을 비난하는 것은 적응적인 성격은 아니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개념은 우선 정식 심리학 용어가 아니다. '가스라이팅'의 유래는 1994년 가스등(Gaslight)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소개되어 만들어진 용어다. 영화에서 가해자인 남편은 끊임없이 주인공인 아내를 스스로 미쳤다는 의심이 들도록 말하면서 아내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고 남편에게 통제당한다.


 다시 말해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와 상황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의심하도록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교묘하게 타인을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간다는 얘기다. 상담일을 하다보니 이런 가스라이팅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침착하게 듣다 보니 몇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1. 가스라이팅의 경계가 모호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통점은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주로 행동보다는 말로 이루어지는데, 이 언어라는 것이 참 모호하다. 어떤 단어와 문장을 정확히 가스라이팅으로 간주할 것인가? 특정 단어들로 가스라이팅을 정의하게 되면 어디까지 그 단어들을 나눌 것인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고 우리는 서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언어는 맥락에 따라서도 다르다. 심지어 같은 맥락, 같은 언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아강도 수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한 사람의 조언과 충고도 누군가에게는 꼰대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멘토가 된다. 


다시 한번 물어보겠다. 어디까지 가스라이팅이라고 할 것인가?  



2. 가스라이팅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의 형태를 보면 주로 조언과 충고가 많았다. '너는 왜 그런식으로 생각해?' '너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는 왜 말을 그렇게 해?' 이 문장들의 핵심은 가스라이팅의 가해자 역시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상대를 원인으로 몰아간다는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답정너' 스타일이다. 


 사실은 가스라이팅의 가해자 역시도 성장해온 환경에서 가스라이팅식 대화를 하는 사람들과 자주 접촉했을 확률이 높다. 언어와 정서, 인지 패턴은 주로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학습되기 때문에 가해자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 역시 언제든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가해자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식함으로써 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피해자는? 피해자 역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 오해를 해서는 안된다. 피해자의 잘못이라는 식의 단순한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 


 많은 가스라이팅에 대한 사례들을 유심히 들어보면, 대부분 피해자들의 자아강도가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아강도가 낮다는 것은 외부 자극에 민감하며 쉽게 상처받고 의지하며, 흔들린다는 말이다. 모두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은 같은 상황과 말, 행동, 표정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이 실제로 상처받고 괴로워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상처들을 일으키는 상황, 관계, 말 등을 파고 들어가면 수치심, 열등감, 죄책감, 분노 등의 정서들이 존재한다.


 쉽게 말해, 내가 기분이 나쁘면 가스라이팅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3.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데?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는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상처를 주는 말, 행동, 표정, 상황 등을 인식하고 그 기원을  찾으며 새로운 의미로 전환함으써 우리는 외부 자극에 둔감해져야 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흔히 자존감이 높다고 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가스라이팅에 당할 빈도수도 줄어든다. 왜냐고? 욕설과 같은 명백하게 모욕적인 말 같은 것들이 아니라면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에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들을 피하며 살 수는 없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삶의 고통에 두들겨 맞다가 정신과 몸이 지친 사람들이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상담은 항상 how to가 중요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삶을 살아가며 만나는 외부 자극들에 대항할 수 있는 마음의 갑옷을 만드는 것이다. 회피적인 방식이 아닌, 건설적인 방식의 갑옷은 내 마음을 보호할 수 있다. 보호받은 마음은 여유를 만들어내고 그 여유를 기반으로 세상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볼 수 있다. 내 마음의 고통은 회피하고 타인을 돌보는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상처가 터진다.


 가스라이팅을 경험하고 있는 환경이 가정, 학교, 직장, 관계처럼 변화를 주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과감한 선택도 필요하다. 가정이라면 독립을, 학교라면 전학을, 직장이라면 이직을. 지독한 인간이라면 관계를 끊어내라. 자신을 돌아보기도 전에 환경에서 지속적인 고통을 받고 있다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작전상 후퇴도 필요하다.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도저히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스라이팅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친구, 취미, 상담 등, 무엇이라도 좋다. 당신의 마음을 학대하지 말아라. 갑옷이 없는 당신의 마음은 생각 이상으로 부드럽고 약하다.


 당신의 가스등이 자꾸만 깜빡이는 것은, 어쩌면 당신이 원인을 깜빡 잊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전 03화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