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미워하는 내담자가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괜히 엄마가 하는 말, 표정, 뉘앙스 행동 모두가 얄밉게 느껴진다고 했다. 엄마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괴롭힘 당했던 기억도 없다고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엄마가 밉다고 했다.
상담사로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유 없이 엄마를 미워하는 저 마음 뒤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정신분석은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처럼 천천히 한 겹 한 겹 무의식을 벗겨 나가야 한다는 프로이트의 말처럼 천천히 접근했다.
엄마를 미워하는 딸의 뒤에 웅크리고 있던 것은 어린 시절 엄마를 오해했던 5살 배기 소녀였다.
웅크린 소녀가 해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곤히 자고 있는 5살 딸아이와 함께 있던 어머니는 저녁을 생각하다가 장을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칭얼대던 아이는 조금 늦은 낮잠을 자고 있었고 집 앞 시장에 금방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설사 중간에 깨더라도 잠깐이니까 괜찮겠지. 그렇게 엄마는 시장에 갔고 아이는 곧 잠에서 깼다. 해가 낮아져 가는 시간이라 불 꺼진 거실은 아이에게 제법 어두웠고 적막한 거실에 혼자 남은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내담자가 기억하는 객관적인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이다음부터가 중요하다.
비의식 속에 있던 사건들을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기억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 5살 소녀는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고 믿었던 것이다. 엄마가 장을 보러 간 잠깐의 시간 동안 홀로 남은 아이는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공포에 잠겨 울다가, 이내 나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 대해 원망하고 분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이들은 인지가 발달하는 과정에 놓여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과 달리 주관적인 느낌으로 왜곡을 만들어낸다. 성인들도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실수를 자주 한다. 불안은 의심을, 의심은 왜곡을, 왜곡은 망상을 만들어낸다.
핵심은 20대 중반의 여성이, 5살 때 경험했던 사건은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느낌과 감정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아 평생을 괴롭혔다는 점이다. 이유도 모른 채 엄마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사례를 직접 경험하거나 무의식에 대해서 이해하다 보면 한 개인의 기억이 얼마나 왜곡되기 쉬운지 알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왜곡된 기억들에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야 하는가?
해결할 방법은 있다. 바로 프로이트가 얘기한 비의식을 의식화시키고 현재의 시점에서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앞의 사례를 들어 쉽게 이야기하면, 20대 중반의 여성은 상담자와 함께 비의식 속에 묻혀 있던 느낌은 현재가 아닌 5살 소녀의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면서 소녀가 느꼈던 원망, 슬픔, 분노를 다양하고 충분하게 표현하면서 놓아주었다. 이후 엄마는 나를 버리고 갔던 사람이 아니라 항상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임을 이야기하며 5살 소녀가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해소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재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여성은 상담 후에 엄마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평생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느낌들이 해결되자 너무나 신기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엄마와 그 어떤 마찰도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최소한 영문도 모르고 올라오던 부정적인 느낌과 감정들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과거와는 달리 인식할 수 있게 되었으며,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트라우마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해결되지 못한 감정들은 늦어도 좋으니 안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만 한다.
사건은 잊혀져도 감정은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