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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한 초콜릿 Dec 19. 2022

대량 생산 카카오, 양날의 검

CCN-51

사실 초콜릿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산자와 판매자의 엄청난 격차에서 오는 부당함이다.

처음 초콜릿과 카카오에 대해 진지하게 빠져들었을 때는 초콜릿과 카카오 열매 그 자체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조금씩 더 공부하고 알아가다 보면 카카오는 어떻게 생산, 수확되고 초콜릿으로 만들어져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되는지를 알아보게 된다.

왜 다른 농작물들에 비해서 카카오는 유독 생산자와 판매자 사이의 격차가 클까.

왜 그래야 할까. 

이 부분은 정말 초콜릿 업계에 일하고 초콜릿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마음이 아픈 부분이다.

요즘에는 공정무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카카오 농장에의 부당함과 아동 노동 착취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좋은 카카오를 생각하는 사람들과 업장들은 모두 그 부분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

다른 작물들과도 마찬가지로 카카오 또한 어떤 품종이 어떤 방식과 어떤 토양, 기후 등에서 생산되느냐에 따라서 그 성질(맛과 향/풍미, 섬세함 등)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지난번 글에서 소개했듯이 섬세하고도 우아한, 고급진 카카오 품종의 대표로는 나씨오날, 크리오요 등이 있고, 그들은 고급진 맛을 내는 만큼 연약하고 번식력이 약해서 병충해에 약하고 키우기가 까다롭다.

이러한 품종이 있는 반면, 당연히 농산업의 지속성(?)을 위해 병충해에 강하고 키우기가 수월한 품종도 개발되기 마련이다. 카카오 품종에서 그것의 대표주자는 CCN-51이다. 

제목에서 표현한 것처럼 '양날의 검'이라는 것은, 생산은 수월한 반면 절대적으로 맛과 향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제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초콜릿은 고급 식품에서 싸구려 간식으로 전략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카카오에 따른 특징적인 풍미와 효능은 나몰라라 하고 설탕과 대체 유지(코코아 버터 대신 사용되는 식물성 유지)를 잔뜩 넣고 카카오 성분은 살짝 넣어 그 맛을 흉내 내버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전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예를 들어, 와인이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아주 고급진 품종들만 이용해 와인 애호가들만 즐길 수 있는 주류에만 머무른다면, 절대 마트에 파는 와인 같은 것은 존재하기도 않고 저렴한 값 또는 적당한 값에 와인을 즐길 수 없다면 과연 그것이 좋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런 맥락에서 초콜릿의 대중화도 당연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초콜릿이라는 제품 자체가 심각하게 '가공품' 수준으로 타락한 것과 카카오 생산자와 초콜릿 판매자 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져 버린 것이 굉장히 안타까울 뿐이다.





CCN-51


이제 CCN-51이라는 품종에 대해서 알아보자.

초콜릿 업계에서 진정 카카오와 초콜릿의 섬세한 맛에 대해 신경을 쓰는 생산자/판매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의 대다수는 대량생산을 원한다. 고~급진 맛 따위는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중요하지 않다. 

생산성! 생산성!!!!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카카오 품종이 바로 CCN-51이다.

CCN-51은 개발된 품종으로, 1997~1998년 에콰도르에 엘니뇨가 덮친 이후 '나씨오날' 품종의 생산에 어려움을 겪던 많은 카카오 생산자들이 CCN-51 생산으로 전환하였다.


카카오 열매는 원래 그늘에서 자라고 병충해에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CCN-51 품종은 태양 아래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한, 생산성에는 아주 폭격기 같은 녀석이다. (섬세하고 병충해에 약한 고급 카카오 품종의 약 4배 정도의 생산성을 가지고 있다고 함.)

생산성에서는 아주 훌륭한 성과를 보여주지만, 이 품종의 단점은 바로 '풍미'에서 잡힌다. 일부 전문가들은 끔찍한 맛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보통은 아주 평범하거나 보잘것없는 맛이라고 표현된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카카오 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아주 많이 나왔고, 실제로 그렇게 될 위기에 처해있다. 그렇다면 카카오 농장주들은, 생산자들은 어떡하지? CCN-51처럼 생산성이 높은 품종은 그들에게는 희망적인 부분이다. 생산을 더욱 많이 하고 판매를 많이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수입과 직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급 카카오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대량생산으로 초콜릿 과자를 만들어 판매해야 하는 판매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CCN-51의 가격과 고급 카카오의 가격은 차이가 나지만, 카카오 농부들에게는 엄청 고생해서 고급 카카오를 소량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손쉽게 대량으로 CCN-51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이 더 나은 선택지라고 한다. 


게다가 완전히 초콜릿에만 100% 전념하는 것이 아닌, 적당히 좋은 초콜릿을 사용해도 되는 경우 (디저트에 사용하는 경우 등)에는 CCN-51 품종에 고급 품종을 섞어 타협을 본 초콜릿을 사용해도 무난하다는 것이다.


1997~1998년에 엘니뇨가 에콰도르를 덮쳐서 많은 농작물의 피해를 입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카오 농업자들에게 카카오 생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준 품종이 바로 CCN-51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에콰도르와 페루 지역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Arriba Nacional나씨오날 품종의 생산이 확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완전 순수 혈통의 나씨오날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라고 한다(대부분이 다른 품종과 섞여 버려서). 이 두 가지 선택사항에서 한쪽으로 기울지 말고 양쪽의 장점을 모두 살리기 위해, 나씨오날 품종을 지키는 카카오 생산자, CCN-51 생산을 통해 카카오 산업을 꺼뜨리지 않을 생산자가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결국 둘 중 어느 것에 더 기우느냐는 '소비자'에게 달려있는 문제라고 한다. 생산자들은 '수요'가 있는 쪽으로 생산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초콜릿이야 말로 구하려면 정말 낮은 품질의 싸구려 제품도 구할 수 있지만, 진정한 고급 식품으로 분류되는 존재이다. 성공한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의 식습관에는 항상 '질 좋은 초콜릿'이 포함되어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올바른 소비자로서 어떤 선택을 할 지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마트에서 파는 저품질의 초콜릿 제품들은 '초콜릿 가공품'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간식용으로 소비하고, '초콜릿'이라는 그 자체는 좋은 초콜릿을 즐기면서 그 가치를 느끼면 좋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소비자의 선택은 공정무역과 아동노동착취 반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며 그것들을 촉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을 즐기기 위해 좋은 선택을 하길 바라면서.




이 글의 CCN-51 품종에 관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를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https://www.thechocolatejournalist.com/blog/good-bad-ugly-cacao-ccn-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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