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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ROOM

둥지 틀기 Outside-R

by CHRIS Jan 27. 2024

새들은 둥지를 틀기 위해 수만 키로를 비행한다고 한다. 머나먼 길을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의 회귀는 동물적 감각을 지닌 생명체라면 거역할 수 없는 귀소본능인가. 한 바퀴 돌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몇 번이고 굴러도 쉽게 깨지지 않을 돌뭉치 같은 결심을 필요로 한다. 어떤 연고도 없는 압구정 로데오 2층에다 쇼룸을 연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다들 우려가 많았다.


"그곳을 어떻게 보여줄 건데? 누굴 대상으로?"

"압구정이 우리가 알던 그 화려한 압구정이 아니야. 너 아는 사람은 있어?"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사람들이 오지 않겠니?"

"판매는 어떻게 할 거야?"

"돈은 어떻게 벌 건데? 유지는 할 수 있겠어?"

"그 먼 길을 돌아 한국에 와서 이렇게 꾹꾹 박힌 채 어떻게 알리려 그래?"


- 안다고!

- 안다고.

- '안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어디부터 펜을 굴려야 할지 모르는 팍팍한 현실이 부서진 크래커처럼 목 안에서 버석거렸다. 할 수밖에 없으면 어떻게든 움직이게 될 거라는 그런 막연한 믿음 한 조각이 그 당시 내가 가진 전부였다. 그리고 그 기저엔 둥지를 트는 쇼룸이 엄청난 비밀을 품은 화원이 되기를 원하는 몽상가적 바람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심술궂은 팥쥐 엄마의 집안일을 도맡은 콩쥐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없어서 넋 놓고 울고 있을 때 신비한 떡두꺼비가 갑자기 나타나서 깨진 장독에 단단한 등짝과 불퉁한 엉덩이를 살포시 대줄 거라는 전래동화 같은 상상이 단전에 가득했다.


평범한 모습의 직사각형 장롱 속을 열어보면 그 안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별스러운 시간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기대감만이 아무것도 없는 현실을 보상하는 위안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항상 저 밋밋한 장롱 문을 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루하고 평범하게 보였던 문 속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사람들은 용기 있게 문 안으로 머리를 넣고 신나는 모험을 하지 않던가!


- 긴 동굴의 시간을 접고 비상을 해보련다. 이야기를 짓고 뚝딱뚝딱 없던 것에서 빛나는 생각의 비늘을 털어보련다. 단지 신체에 맞는 패션이 아닌 삶을 제조하는 패션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파생이 파생을 낳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지어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는 강남구 신사동 654번지에서 2개월의 공사를 마치고 2013년 3월 CAZA 쇼룸을 열었다.




[CAZA DESIGN SHOWROOM] 2019. Wacom Drawing Sketch by CHRIS[CAZA DESIGN SHOWROOM] 2019. Wacom Drawing Sketch by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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