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인 광신도는 존재하는가
재회 상담은 10년째 국내 1위를 하고 있다.
앞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기묘한 사례, 어긋나는 디테일, 근거 없는 주장은 2장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재회상담업의 순위는 누가 정해주는 것이며 1등인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이것들을 하나씩 지적하고 있으면 끝이 없을 거 같아 바로 자의식 해체를 하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의식이 인간을 망치는 이유
송명진은 소제목으로 자의식은 인간을 망친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따져보자 자의식(Self-awareness)은 무엇이며 그것은 왜 인간을 망치며 그 주장은 합당한가에 대해서다. 송명진은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며 설명하는데 그것의 바탕이 되는 내용은 진화심리학(Evolutionary-psychology)을 근거로 한다. 그렇다면 사례를 따져보기 전에 진화심리학을 키워드로 잡고 나가면 된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클루지나 역행자라는 것도 진화에 따른 사람의 인지적인 능력 기본값이 있는데 이를 인지하고 반대로 행동하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하게 써먹고 있다.
진화심리학은 사람의 심리를 진화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극단적으로 설명하면 지금의 인간은 현대인의 탈을 쓴 선사시대 원시인이나 다를 바가 없는 존재다. 여러분은 이 명제에 동의하는가? 만약 동의한다면 어떤 근거로 동의한다고 할 수 있는가? 사실 그럴듯하게 설명이 된다보다 나은 근거를 찾기 힘들다. 애초에 진화심리학은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과학은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한 가설을 세우며 변인통제, 통제된 환경, 엄격한 실험을 통해 하나의 이론/입증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은 태생적으로 관찰-가설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진화심리학은 증명할 수도 과학이 될 수도 없다. 그저 관찰할 것에 대해서 설명(가설)을 하니 그럴듯해 보인다는 점이 전부인 상황이다. 물론 과학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무조건 진화심리학을 거부하고 나가버릴 필요 없다. 진화심리학을 통해서 현상을 잘 설명해 내는 것도 대단한 성과이며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관찰 결과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수백 년이 지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송명진은 진화심리학과 자의식해체를 어떻게 엮었는지 보는 것이다.
자의식은 여러 감정과 지식을 엮어서 잘 반응하여 살아남도록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역행자에서 진화심리학을 소개를 하고 자의식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큰 결함이 있는데 이는 "왜" 이유의 부존재이다. 아무리 책을 찾아봐도 자의식은 그렇게 진화되었다 할 뿐 그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짝사랑하던 여자를 친구한테 빼앗겨도, 전 재산을 코인 투자로 날려도 한 달 후에는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게 자아를 보살펴주는 게 바로 자의식이다.
자의식은 어떻다는 빌드업, 전개방식이 전혀 없다. 그냥 자의식은 이렇다는 선언만 남아 있다. 실연을 당하거나 충격을 당해서 폐인이 되는 사람도 많다. 극단적이거나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 역시 부지기수다. 이들은 모두 자의식이 해체되었는가? 송명진은 많은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의 장점을 보기보다 깎아내리고 비판하며 좋은 점조차 알기를 거부하려고 든다. 이는 자의식의 방어기제라고 설명한다. 그냥 이런 것은 자의식의 방어기제라는 선언만 있을 뿐 왜 방어기제인지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그저 진화심리학에 따라 자의식이 그렇게 진화되었다고 퉁치고 넘어간다.
자의식의 방어기제는 우리를 망친다.
왜 우리를 망치는가?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의 자의식은 그렇게 진화되었다.
왜 그렇게 진화되었는가? 자의식의 방어기제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아 여러 번 살펴보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 순환논리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 아가기 어려웠지만 좋게 봐서 역행자 책은 진화심리학을 근거로 하지만 심리학 그 자체가 주제인 책이 아니기에 엄격한 논증은 필요 없다고 넘어가는 걸로 하자.
2장의 메인이 되는 자의식 해체에 들어왔다. 그리고 해체를 하기 위한 3단계를 두고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누군가를 보고 불쾌함이 든다면 이는 자의식이 올바로 보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니 그 감정을 탐색하고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전환)해보자는 것이다.
악플러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인생을 바쳐 자료 조사를 하고 퍼 나른다. 자의식 투영의 극단적인 예다.
위의 내용을 끝으로 별다른 내용은 없다. 바로 내 소감을 말해보자면 왜 역행자가 되기 위한 7단계에 가장 첫 부분에 자의식해체를 두었는가? 솔직한 내 감상은 책의 시작부터 반박 자체를 막아 자신의 주장을 선제적으로 변호하려는 원천봉쇄의 오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는 송명진의 악플과 반박을 받고 싶지 않아 하는 자의식 방어기제가 발동했다고 본다. 혹시라도 모를 긍정적인 요소를 놓치기 두려워서 비판적 사고를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을 반박하면 그건 네가 배울 준비도 안 돼있고 잘난 사람을 보고 시기하는 열등감 덩어리라서 그런 거다. 지금 눈앞에서 가스등 들고 쥐불놀이 하는 느낌이 든다. 보면서 사실 어지러웠다.
우리가 흔히 팔랑귀라고 하거나 호구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자의식의 방어기제가 잘 작동되어서 발생한 일인가? 이 사람들은 왜 방어기제가 동작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못하였는가?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의견에 경청하며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일부 필요한 부분은 흔쾌하게 수용하는 사람은 자의식 해체가 잘된 사람인가? 나는 2장 자의식 해체 부분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지만 그 문맥과 근거의 빈약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三人行, 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선한 사람을 가려서 그를 따르고 선하지 못한 사람을 가려서는 나의 잘못을 고쳐라 - 논어
나는 자의식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 재정의를 하고 싶다. 그리고 분명 살다 보면 나만 옳다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모든 정보는 튕겨내는 고집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먼지로 오물로 뒤덮여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내가 그렇지 않을까 겁먹으며 섣불리 자의식해체부터 할 것이 아니다. 창을 부수고 프레임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 현상과 사실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프레임을 튼튼하게 만들고 창을 깨끗하게 닦아 나가는 것이 먼저 아닐까. 이런 세상 상황일수록 나를 지키고 발전할 수 있는 건강한 자의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부자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기를 당하지 않는 것도, 잘못된 투자를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