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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순간을 붙잡고 쓴다.

by 우수진

가수 윤종신이 노래 [이별택시]에서 가사를 써내려 간 방식도 과연 그렇지 않은가. 만약에 한 번도 노래 가사를 써 본 적 없는 내가 이별에 대해서 썼더라면, 연애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두 사람의 대서사를 모두 어떻게 그려낼까 고민했을 테다. 그런데 이 [이별택시]는 단 하나의 장면만을 꽉 붙든다. 헤어지자는 말을 한 날은 비가 내렸다. 이제 남이 되어 버린 여자 친구는 택시를 타고 황급히 가버렸고 나는 다른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에 우두커니 앉아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눈물만 흘러나온다. 급기야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이렇게 우는 손님 처음이신가요?' 묻는다. 듣는 사람으로선 이 사람아, 목적지는 당신이 알고 택시를 타야지 하는 말이 막 목구멍까지 나오려다가, 막 이별하고 경황도 없는 데다가 가슴은 총 맞은 것처럼 뻥 뚫려 버린 그런 심정이니 오죽하겠나 싶어 말하려던 입을 닫는다. [이별택시] 노래를 들으면서 이렇게 한 장면을 붙들고, 전체 노래를 이끌어 갈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이렇듯 좋은 글이 되려면 반드시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다 상세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에세이는 순간의 생각을 붙들어 그것을 써내는 데 묘미가 있다.


잠깐 방심하면 알아차리지 못할 만한 작은 느낌, 얼핏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들고 쓴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을 붙잡고 에세이를 쓴다. 매일 일어나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에 영감을 받는다. 길을 걷다가 운전을 하다가 수업을 듣는 중에도 한 문장씩 툭툭 생각이 나면 어디에라도 메모한다.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놓기도 하고, 연습장을 꺼내서 볼펜으로 나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글씨체로 휘리릭 휘갈겨 놓았다가 집에 와서 글로 쓴다.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를 볼 때, 피아노 선생님이 왼손은 작은 소리가 나게 쳐야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이 운전하다 말고 목을 까딱 까닥거려서 혹시 저 인간 잠들었나 싶어서 깜짝 놀랐을 때 같이 전부 일상적인 순간들에서 내가 나름대로 깨달은 바를 글로 써낸다. 한 가지 예를 들어서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이렇다.

차를 몰아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 차에 치여 죽은 강아지를 봤다. 너무나 가엽고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얼른 시청에 전화를 해서 사체가 다시 다른 차로 훼손되지 않도록 해 주시라고 민원을 넣었다. 그리고 같은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햇빛에 딱딱하게 말라붙은 검은 형체를 보았다. 이번에는 고양인지 개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이미 마를 대로 마르고 훼손될 대로 훼손되어 이제 자연에 가깝다고 봐야 할. 나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가여움도 느끼지 않고 그 위를 밟고 지나갔다. 과연 불교사상에서 배운 대로 나는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감정이라는 걸 불러내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몸체가 되어 하나의 글이 되었고, 내 첫 에세이집에 고스란히 실렸다.


지금 휴대폰 메모장을 쭉 내려 보니 여러 개의 특이한 메모가 많다.

-구두 뒷굽에서 살짝 삐쳐 나온 대일밴드. 둥글게 빨간 피가 제법 부피감 있게 올라와서 두둑해져 있었다.

-저 여자분은 왜 불편한 구두를 신게 됐을까?

-엄마, 아빠 얼굴을 다 보고 나면 잘생긴 사람이 덜 잘생겨 보이는 거, 그거 나만 특이한 건가?

-제 손가락은 무시 손입니다. 무시는 무의 사투리예요.

-정신의 자유: 충고를 내가 부탁해서 실컷 잘 들었어도 결국 충고대로 안 할 자유가 있다.

-그럼 반려동물이 아니고 반려 보호자나 반려 집사라고 하면 되겠네.

-웃는다는 건 내가 기분 좋은 상태라는 신호가 아니라 당신은 나한테 괜찮은 사람입니다, 라는 의미로 더 중요한 것 같다. 당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같은 거. 그러니까 그만 경계를 푸시고 저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계획대로 일은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늘 있다. 그러면 당연히 실망은 계획의 짝꿍이다.

-오랜만에 책을 꺼내서 한 시간쯤 붙들고 있었더니, 글밭에 눈알을 구른 듯이 몹시 눈알이 뻑뻑해졌다.

-머리를 보라색 반, 흰색 반으로 염색한 사람.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가 있나? 아니, 뭔가 대단하고 큰 뜻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보라색도 하고 싶고, 흰색도 하고 싶어서다. 짜장면 반, 짬뽕 반 : 짬짜면

-스팸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을 찾아가서 죽이는 건 어렵다. 차단은 쉽다.

-자기애가 높을수록 외모 치장 ; 언제는 낮을수록 꾸민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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