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는 방법
기술적으로 계산을 하고 쓰는 방법이 있다.
이 시는 각 음보가 3음절 3음절 4음절로 구성되어서 3.3.4 조입니다와 같은 것들.
하지만 이런 기술은 시대상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 철학자 ‘데카르트’
데카르트가 남긴 명언이 있다.
“진정 진리를 추구하려면 최소한 인생에 한 번은 가능한 한 모든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어봐야 한다.”
그런데 그런 그도 동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그 기나긴 인생에 단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동물은 영혼이 없는 기계였다.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어떤 마취도 없이 산 채로 해부했다. 개가 고통으로 비명을 내질러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시계의 태엽이나 톱니바퀴가 분해될 때 나는 기계적인 소리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라고 해도 시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글씨 기도 기승전결을 지키고 시작과 끝은 어떻게 해라 같은 방법은 유행을 탄다.
예전에는 이렇게 말했다면 지금은 저렇게 말하는 식으로 아주 인위적이다.
동시에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사실주의 미술, 인상주의 미술, 추상미술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사실주의 화풍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누가 가장 실물에 가깝게 인물과 자연을 잘 그리느냐로 화가의 능력을 평가했다. 하지만 사진이 발명되고 나서는 제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사진처럼 똑같이 찍어내는 일은 어려웠고 그게 가능하더라도 하루 종일 그림을 붙들고 있느니 한 장 뚝딱 찍어버리면 되니까 사실적으로 그리는 일이 시시해졌다.
인상주의 시대에는 화가가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과 인상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화풍이 유행했다. 그 화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격과 개성, 아주 사적인 영감과 자신만의 생각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야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좋은 작품이라고 불렀다.
인상주의 화가 고흐와 고갱.
고흐는 프랑스 근교에 자리를 잡고 여러 화가 친구들을 자기 화실로 초대해 함께 그림을 그리며 교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고흐의 동생 테오의 후원을 받고 있던 고갱은 고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동생의 얼굴을 봐서 고흐와 함께 지내게 된다. 고흐보다 나이도 많고 그림으로 먼저 인정받았던 고갱은 고흐에게 여러 가지 간섭을 한다. 고흐가 그리는 작품에 대해서 평가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도 충고를 했다. 고갱은 고흐에게 실제 풍경을 보고 그리지 말고 상상력으로 마음속에 떠오른 풍경을 그리는 게 맞는 방식이라고 강요했다. 화실에서 그리지 않고 하루 종일 밀밭에 나가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고흐가 매우 한심하게 느껴졌다. 또 시대가 바뀌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고갱보다는 고흐 아닌가.
추상미술에 접어들면서는 화가가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언뜻 보아서는 잘 알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런데 나도 가끔씩 그럴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텔레파시로 하고 싶다 싶은 때. 내 감정 상태가 어떤지 내 생각이 뭔지 그냥 키워드만 하나 내려놓고 싶고, 나머지 말들은 다 거추장스럽게 느끼질 때가 있다. 키워드 뒤에 가져다 붙이는 말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곧장 나를 데려다주지 않고 계속 쓸데없이 이곳 저것을 거쳐 가게 하니까.
나는 사실주의 미술이 좋았다가도 인상주의 미술이 좋고, 인상주의 미술이 좋았다가도 추상화에 꽂히기도 한다. 글쓰기도 그림 그리기와 같아요. 화가가 종이에 물감으로 자신을 드러낸다면 작가는 종이에 글자로 자신을 드러냅니다. 참 어떻게 말로 표현할지 모르겠네 하는 걸 화가는 그림으로 작가는 글로 형상화합니다.
시대나 유행을 초월한 아주 사적인 영감, 자신만의 생각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