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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치고는 이라는 말

by 우수진

어느 독자 : 첫 책 치고는 구성도 좋고 잘 만들었어요. 하나 아쉬운 거는 작가 성격이 너무 강한 거 같고 조금만 유도리 있게 풀어나가면 더 발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내 기분이 왜 이럴까? 나는 불현듯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집어 들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내 책을 보고 세다, 융통성이 없다고 말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의 인상착의와 사회적 지위를 그려보았다. 나이가 좀 있는 남성. 직급이 높은 사람. 여성의 성역할이 고정되어 있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기득권자인 사람. 운 좋게도 나의 예상이 맞았다.


도시 사람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농담에 시골사람은 웃을지 몰라도 도시 사람은 웃지 못한다. 시골사람을 웃음거리고 만드는 농담에 도시 사람은 웃을지 몰라도 시골사람은 웃지 않는다.


나는 “첫 책 치고는 잘 썼네”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첫’ 에세이라고 썼던 출판사의 소개글이 싫었던 것 같다. 그런 말을 막상 듣고 보니 든 생각이다. 굳이 첫 책이라고 적어서 독자의 기대치를 확 낮추어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기성작가는 자신이 썼던 책의 제목을 나열해서 독자에게 신뢰를 주지만 첫 책이라고 적은 소개글에는 어쩐지 초보 작가니까 알아서 잘 봐주세요라는 말이 안 보이지만 적혀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건 나만의 문제인가? 나에게는 이런 뉘앙스로 들린다. 누군가 일상생활에서 여성을 향해서 무신경하게 내뱉는 말.


“여자치고는 -”


처음이니까 하고 봐주는 마음으로 읽지 말고 그냥 차라리 신랄하게 비난해주면 좋겠다. 좋은 점과 싫은 점을 가감 없이 말해주면 더 좋겠다. A4 100장을 채우는데 는 굉장한 끈기가 요구된다. 아무리 쉽게 쓰고 마음속에서 쓰고 싶은 게 아무리 흘러넘쳤다고 하더라도, 책이 나올만한 분량을 채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작은 희망이 있었다. 무인도에서 호리병에 글을 써서 망망대해에 띄워 보내듯이 내 주위에선 내 생각에 딱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전국적으로 찾아보면 그렇게 해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처음 치고는 잘 적었다는 말이 어쩌면 나에게 불안감을 주기 때문에 그냥 선선히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 치고를 빼면 잘 썼다는 말을 또 들을 수 있을까? 두 번째 책이 있긴 할까? 또 한편으로는 아무 책도 안 낸 거치곤 잘 썼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돈을 투자해서 책으로 만들진 않았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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