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온 몇 군데의 출판사와 모두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때였다. 글을 쓸 때의 ‘나’와 이 원고를 책으로 내주십사 하는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다. 이건 결혼을 준비할 때와 흡사 비슷한 기분이다.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 입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입장하는 신랑과 신부는 확실히 그 날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 결혼식장에 서기까지 예식장을 알아보고, 각종 계약을 진행하는 일도 신랑 신부의 몫이다. 해야 할 일이 그것뿐인가? 양가 부모의 의견을 탁구 치듯이 핑퐁핑퐁 전달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하다못해 예식홀을 장식할 웨딩사진도 주문해서 갖다 놓아야 한다. 요즘은 주례 없는 결혼식이 보통이라 혼인선언문도 작성해서 관계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결혼식장에 서기까지는 예식장의 시녀처럼 일하지만 식 당일에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변신해서 선다. 식 당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헤어와 메이컵을 받고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나. 두 사람이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지만, 결혼식을 위한 과정에 너무나 지쳐버린다.
이런 기분이 들자 이쯤에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굳이 책으로 나오지 않아도 좋다. 나오면 좋겠지만,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의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고 글로 정돈했다는 데 의미를 두자. 그러던 차에 내 원고를 책으로 내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났다. 하지만 과연 이 독특한 원고가 대중에게 먹힐 까 혹은 투자금이라도 회수할 수 있을까 출판사는 고민이 많은 모양이었다. 나의 투자요청서(출간 기획서)에 응답하였지만 그 이후 한 달 동안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결국 출판사 근처의 카페에서 나는 대표를 마주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조건은 1년 뒤 정산, 인세는 8%. 그리고 두 달쯤 뒤에 책의 모양을 갖춘 디자인에 얹힌 내 글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첫 번 째 편집 절차였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다. 조용하게 뭉클하고 감동적이고 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나 혼자 한글 파일에 마구 적었던 글이 책처럼 보이는 디자인에 얹어져 있으니까 이걸 내가 썼어? 정말 이걸 내가 쓴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내 원고를 책으로 내준다고 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진짜 가슴이 벅차고 모든 시간이 순간적으로 멈추고 이 세상에 깨어있는 건 나 밖에 없는 기분. 누군가 내 글에 격식을 갖추고 정성을 다해 과분하게 좋은 대우를 해주어서 눈물 나게 고맙고 벅찼다. 원고를 정말 열심히 잘 고쳐서 끝까지 완성도 높은 글을 내놓자고 다짐하고 그 다짐은 채 일주일을 가지 않았다.